머니 머니해도 게으름
최소 백만원은 내 돈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자취 물품들을 저렴하게 마련하는 게 생각보다 고되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싸게 사보겠다며 구매를 미뤘다. 입주 날이 왔다. 결국 침대, 냉장고, 인터넷 등의 필수 요소들을 준비하지 못했다. 오늘의 입주는 팥 없는 붕어빵이 되어버렸다.
내 생에 첫 자취, 첫 독립. 처음이니만큼 신중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문구를 내 독립활동의 슬로건으로 삼았다. 처음부터 이모저모 열심히 따진 건 아니었다. 애초에 평수에 대한 공간감부터도 없었으니까. 내가 원한 건 그저 싱크대와 각방 쓰기, 월세 50 넘기지 말기. 이 정도만 지켜지면 아무 데서나 살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대책 없는 기준으로 만난 방들은 체감상 너무 좁았다. 발 한 번 잘못 뻗었다가는 호빗의 집에 간 간달프처럼 어딘가에 쿵 하고 찍힐 것 같았다. 살만하면 원룸 주제에 월세가 상당했다. 그때 생각했다. 이 평수에 이 값이라면 차라리 투 룸으로 가자!
다시 시작된 다방 탐색. 직장에서 멀어질수록 방값은 빳빳하게 세웠던 꼬리를 내렸다. 투 룸도 예산 내에 구할 수 있었다. 문제는 옵션. 이쁜데 착하기까지 한 사람은 만나기 힘들다. 방도 그렇다. 원룸은 보통 세탁기, 냉장고, 침대 등이 기본적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투 룸은 방이 두 개라는 스펙 하나로 그 모든 옵션을 퉁쳤다. 한 번은 풀옵션 투 룸도 발견하긴 했다. 방을 보러 가기 전날 전화가 왔다. 그 방 오늘 계약이 됐어요. 가슴이 쿵쾅거렸다. 내가 짝사랑하던 그녀가 과 선배랑 사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이랬던가.
좋은 방을 얻기엔 내가 너무 안일했다며 반성했다. 겨우겨우 에어컨 옵션이라도 건져서 지금의 방을 찾았다. 망설이면 다른 사람이 바로 채간다. 경험이 준 가르침에 따라 덜컥 계약했다. 사소한 불편함은 감수하기로 했다. 가구니 가전이니 사는 비용은 매달 월세 5만원 더 내는 셈 쳤다. 기적의 할부 계산법으로 가난뱅이 오세훈을 설득했다.
옵션 비용은 사실 최약체 빌런이었다. 냉장고든 침대든 얼마가 됐던 결제 버튼을 누르는 일은 간단하니까. 최종 빌런은 게으름이었다. 어차피 아직 공실도 아니고 천천히 알아보자고 뭉그적거리다가 오늘에 이르렀다.
혼자 산다는 것은 돈과의 끝 없는 협상, 게으름과의 전쟁이다. 슬프게도 두 개 다 내 약점이다. 특히 게으름과의 싸움은 험난한 여정이 될 것 같다. 게으름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수많은 자취생의 역사는 심심찮게 들어왔다. 산더미처럼 쌓인 빨래 고지, 치우다 포기한 쓰레기 장벽, 맛과 영양은 포기한 전투식량 급 식사. 뒤늦게 이 자취 전에 참전한 나는 어떤 발자취를 남길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