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알콜 중독이라고 인정하는 알콜 중독자가 있을까?
더 나아가, 자기가 알콜 중독인걸 알고도 계속 똑같이 술을 마신다는 건 흔한 증상일까?
나는 불안하면 술부터 찾는다. 맥주가, 막걸리가, 소주가, 와인이 생각나는 게 아니고 뇌를 녹여줄 알콜을 찾아 나선다. 머릿속에 연가시가 있는 것처럼. 술을 끊겠다고 다짐했던 나는 정신 아득한 곳에 유배 당했다. 술을 찾는 무언가가 머릿속에서 미꾸라지처럼 꿈틀거린다. 저 깊은 곳에서 날 만류하는 누군가 소리치지만 이미 주류 코너로 미끄러져 간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것이 좋다. 새로운 건 피곤하다. 드라마, 영화, 예능들도 봤던 걸 또 본다. 예상치 못한 무언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귀찮다. 전두엽이 손상되면 나타나는 증상이라는 글을 인터넷에서 우연히 읽었다. 그리고 술이 전두엽을 망친다고 했던가. 굳이 그런 글이 아니더라도 술이 내 정신에 미치는 악영향은 진작 체감해 왔다. 내일이 월요일임에도 진창 마시고 다음날 손끝의 저릿함을 느끼며 헤롱거린다. 일에 어떻게든 집중하려 하지만 망가진 컨디션은 정상적인 두뇌활동을 막아선다. 매주 월요일 다짐한다. 일요일에는 절대 마시지 말자. 창의력이 좋은 건지 매번 새로운 술 핑계가 떠오른다.
지금도 취기 속에서 자정을 기다리고 있다. 더 마시고 싶다. 앞으로의 불안을 맨정신으로 감당할 수 없다. 애초에 불안이 주는 고통에 시작한 술이다. 조금의 불안에도 마셨다. 습관으로 이어졌다. 오늘도 미래의 두려움에 진통제 찾듯 마셨다. 효과는 미비하다. 더 마셔도 나아질 게 없다는 건 경험상 알고 있다. 술보다 더 쌘 무언가 필요했던 찰나 글을 쓰고 싶어졌다. 주저리 주저리 써 내려가면 속이라도 시원할 것 같아서.
술은 삼키는 것이고 글은 뱉는 것이다. 불안을 술로 넘기지 말고 토해내고 싶었다. 토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거 봐라. 여지껏 뭐가 불안한지 한마디도 못쓰고 있다. 나를 아는 누군가가 읽을 것도 아닌데 망설이고 있다. 이상하게 그럼에도 만족스럽다. 단순히 불안하다고 외치는 것만으로도 잠깐 고통이 멈췄다.
사실 무엇이 괴로운지 나도 모르게 슬쩍 적었다. 새로운 것이 싫다고. 다음주부터 새로운 곳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업무를 하게 된다. 미리 고지가 있었다만 지금의 나는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있다. 오히려 불확신만 더 커지고 있다. 정말 내가 이일을 맡아도 되는 걸까. 생각할수록 난 너무 자격 미달인데. 아니 그냥 싫은데.
도망가고 싶다. 다 관두고 싶다. 난 지금 왜 여기에 있지. 내가 뭘할 수 있지. 도대체 왜 내 일상은 평탄하지 않을까. 무기력하다. 무료하고 반복적인 삶을 살고 싶다. 벌써 자정이 넘었고 월요일이다. 이따가 일을 나간다. 잠이라도 일찍 잘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