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묻는다. "너는 젊은데 왜 그렇게까지 악착같이 수급자 자격을 유지하려고 해? 나가서 돈을 벌면 되잖아."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피를 토하듯 소리친다. 니들이 내 현실을 아냐고.
월 800만 원. 만약 내가 기초생활수급자(의료급여) 자격을 박탈당하면, 매달 내야 하는 아픈 아버지와 정신질환을 앓는 누나의 병원비와 약값이다. 생활비 빼고, 숨만 쉬고 치료받는 데 드는 돈만 그 정도다.
1,300만 원. 얼마 전 아버지가 쓰러져 수술을 받으셨다. 수급자가 아니었다면 청구되었을 금액이다.
7,400만 원. 돌아가신 어머니의 마지막 수술비였다. 만약 의료급여가 없었다면, 우리 가족은 그때 이미 길거리에 나앉았거나 동반 자살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이게 내 현실이다. 내가 알바를 해서 몇 푼 더 벌어 소득 기준을 넘기는 순간, 국가의 보호막은 사라지고 저 천문학적인 병원비 청구서가 쓰나미처럼 우리 집을 덮친다. 그래서 나는 가난해야 한다. 살기 위해서,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 나는 필사적으로 가난을 증명해야 한다.
23년도에 이 책을 접하고 어려워서 계속 덮어놨던 이 책의 말을 빌리고자 한다. 예전에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조문영 교수님의 <빈곤 과정>을 읽다가, 도서관 구석에서 입을 틀어막고 오열했다. 책에 적힌 그 건조한 학술 용어들이, 내 징글징글한 딜레마를 너무나 정확하게 찌르고 있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어찌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살려달라고 비는 곳, 주민센터라는 '심판대'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내 이름보다 '수급자'라는 꼬리표가 더 익숙했다. 책에서는 주민센터에서 수급 신청을 하고 심사를 받는 그 과정을 '관료-기계'라고 부른다. 내 사정이 얼마나 딱한지, 어머니 수술비 명세서를 받아들고 어린 내가 얼마나 떨었는지는 기계(시스템에 적응된 공무원)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 기계는 오직 서류 쪼가리 몇 장으로 내 삶을 분쇄하고 걸러낸다.
나는 아직도 그 공기가 끔찍하다. 담당 공무원 앞에서 나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멀쩡해 보이거나, 돈을 벌 수 있을 것처럼 보이면 그 1,300만 원, 7,400만 원의 청구서가 날아올 테니까. "제발 저를 믿어주세요. 저 진짜 돈 없어요."라고 읍소해야만 아버지가 수술을 받을 수 있는 현실. 내 불행을 전시하고 인증받아야만 숨을 쉴 수 있다는 그 치욕을 니들은 모른다.
"독립 그건 나한테 사치였어"
세상은 청년에게 "어서 자립하라"고, "부모에게서 독립하라"고 다그친다. 책에서도 말한다. "추울 때 옷을 입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행동이 바로 의존"인데, 왜 가난한 우리가 서로 기대는 건 '도덕적 해이' 취급을 받냐고.
나라고 독립하고 싶지 않겠나. 나라고 멋지게 취업해서 돈 벌고 싶지 않겠나. 하지만 내가 취업해서 200만 원, 300만 원을 버는 순간, 우리 가족은 의료급여를 잃고 매달 800만 원의 병원비를 감당해야 한다. 계산이 안 선다. 나가는 순간 죽음이다.
그래서 나는 갇혀 있다. 책에 나오는 '자활'이니 '자립'이니 하는 말들이 나에겐 희망이 아니라 공포다. 나는 늪에 빠진 채로, 가족들의 손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을 뿐이다. 그게 남들 눈에는 무능력한 의존으로 보일지라도, 나에겐 그게 유일한 생존 방식이다.
너희들이 흉내 내는 가난, 나는 목숨을 걸거든
책에서는 요즘 부자들은 가난마저 훔쳐 간다고 한다. 박완서 작가님의 소설 '도둑맞은 가난' 이야기처럼,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나 거지야"라고 웃는 대학 동기들을 보면 씁쓸함이 느껴진다.
동기들의 가난은 스타벅스 대신 편의점 커피를 마시는 거겠지만, 나의 가난은 아버지가 쓰러졌을 때 119를 부르기 전에 지갑 속 잔고와 수급자 카드를 먼저 확인하는 공포이기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그 순간에도 병원비를 계산하며 가슴을 졸여야 했던 그 끔찍한 기억이다. 제발 나의 가난을 흉내 내지 않기를 바래. 그리고 가난을 낭만적인 에피소드로 포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러한 행동은 내 마음을 찢어놓기도 한다. 밤에 불 끄고, 잠에 들기 전에 생각을 정리할 때, 현실이라는 벽에 눈물흘리게 되기도 해. 억울해서. "나는 왜 이렇게 힘든 삶을 살아야 할까?"라고도 생각도 해. 죽고 싶다는 생각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얼마나 많이 했는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정신 병원에서 상담 받으며, 우울증, 공황장애 약을 복용한 적도 있지만 부작용이 너무 심해 복용을 중단했다. 가난이라는 현실을 버텨내는 내 삶에서 동기들의 장난으로 인해 무너지기도 했다.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나 같은 놈이 또 있겠지. 병원비 폭탄이 무서워서 아픈 몸을 이끌고 주민센터로 기어가 "저 아직 가난해요"라고 증명해야 하는 청춘이 나만 있는 건 아니겠지.
누군가는 청춘이 봄이라고 하던데, 나에게 청춘은 그냥 '다음 달 병원비 걱정 없이 하루만 자보는 것'이다. 1,300만 원, 7,400만 원... 이 숫자들이 내 목을 조여오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살아계시니까, 누나가 숨 쉬고 있으니까 나는 오늘도 비겁하게 수급자라는 이름 뒤에 숨는다.
혹시 이 글을 보는, 어딘가에서 병원비 고지서를 쥐고 울고 있을 또 다른 청년 가장에게 말해주고 싶다. 우리가 죄지은 거 아니라고. 그냥 세상이 너무 잔인한 거라고. 그러니까... 죽지 말고 버티자. 욕을 먹든 손가락질을 받든, 일단은 살아서 버티자.
책을 집필해주신 교수님께 감사합니다. 책을 읽으며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서적: <빈곤 과정>, 조문영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