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쉴 틈 없이 달려온 너에게

with 빈곤가구 청년의 자립과정과 빈곤을 벗어난 이후의 삶에 관한 사례

by 개천의 용
숨 쉴 틈 없이 달려온 너에게: 가난이 남긴 흉터와, 그럼에도 빛나는 너에 대하여

도서관의 불이 꺼질 때까지 앉아 있다가,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로 향하는 너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어. 남들은 '청춘'이라 부르며 낭만을 이야기할 때, '생존'이라는 두 글자를 가슴에 품고 치열하게 하루를 버티는 너를 보면, 왠지 모를 시린 마음이 듭니다.


오늘은 조금 슬프지만 솔직한 이야기를 해보려 해. 가난했던 가정에서 자라, 맨땅에서 스스로를 일으켜 세워야 했던 청년들의 이야기야. 어쩌면 이건, 나의 이야기이자 너의 이야기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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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꿈꾸는 것조차 사치였던, 우리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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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알 거야. 가난은 단순히 돈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는 과정이라는 걸.

한 연구에서 만난 청년들은 이렇게 고백했어. 그들에게 '노력'은 꿈을 이루기 위한 설렘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인간적인 삶을 살기 위한 유일한 돌파구였다고. 남들이 "너는 꿈이 뭐야?"라고 물을 때, 우리는 "안정적인 직장", "돈 많이 주는 곳"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지. 그게 속물이라서가 아니야. 돈 때문에 비참했던 기억을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가슴 아픈 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조차 너무 좁았다는 거야. 회계사, 변호사, 고시... 준비 기간이 긴 시험들은 우리에겐 너무 큰 도박이었어. 당장 다음 달 생활비를 벌어야 했으니까, 꿈보다는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길, 장학금을 주는 학교를 선택해야만 했지.


그렇게 우리는 꿈을 '접는' 법을 먼저 배웠어.




2. 휴식이 죄가 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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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방학이면 배낭여행을 가고, 주말이면 맛집을 찾아다닐 때, 너는 어땠니? 연구 속의 청년들은 '휴식이 없는 삶'을 살았어. 학교 수업이 끝나면 아르바이트로, 주말엔 인턴으로. 몸이 부서질 것 같아도 쉴 수가 없었지. 쉬는 순간, 당장의 생활비가 구멍 나니까.


가장 슬픈 건, 그렇게 쉼 없이 달렸는데도 늘 제자리걸음 같다는 느낌이야. 남들은 부모님의 지원으로 스펙을 쌓을 때, 우리는 그저 '마이너스'를 '0'으로 만들기 위해 발버둥 쳤던 시간들. 그 고단함이 뼈에 사무쳐, 가끔은 세상이 원망스럽기도 했을 거야.





3. 비교가 만든 마음의 감옥

"가난한 티 내기 싫어." 아마 이 말을 마음속으로 수백 번 되뇌었을 거야. <빈곤 가구 청년의 자립과정과 빈곤을 벗어난 이후의 삶에 관한 사례연구. 한국청소년연구> 연구에 참여한 청년들은 타인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심리적으로 위축되었어. 명품을 두른 친구들, 걱정 없이 웃는 동기들 틈에서 '나만 초라해 보이는' 그 비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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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너도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을 핑계 대며 피한 적 있니? 나의 가난한 사정을 들키는 게 죽기보다 싫어서, 약점을 보이기 싫어서, 점점 마음의 문을 닫고 방어적으로 변해가지는 않았니.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끼리만 어울리며, 그 안에서만 안도감을 느끼는 '유유상종'의 관계가, 때로는 서글픈 위로가 되기도 했지.





4. 사랑하지만 미운 이름,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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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꺼내면 참 많이 아파하더라. 우리에게 가족은 안식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무거운 짐이기도 했으니까. 스스로 밥벌이를 하게 된 후에도, 연구 속 청년들은 가족을 '부양해야 할 대상'으로 느끼며 부담감을 떨치지 못했어.

"다른 애들은 부모님이 집도 해준다는데, 나는 왜 내가 부모님을 챙겨야 할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죄책감이 밀려오고, 동시에 부모님이 원망스러워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돼. 독립된 '나'로 살고 싶은 마음과, 자식 된 도리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우리는 마음 깊은 곳에 멍이 들었을 거야.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선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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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님. 아니,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동료여. 연구의 끝자락에서 청년들은 말해. 비록 내가 원했던 거창한 직업은 아닐지라도, 더 이상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내 힘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벅찬 만족감을 느낀다고.


비록 출발선이 달라 남들보다 더 숨 가쁘게 달려야 했지만, 그 과정에서 너는 남들은 갖지 못한 '단단함'과 '삶의 무게를 견디는 근육'을 얻었어.


가끔은 억울하고, 가끔은 사무치게 외로울 거야.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해?"라고 소리치고 싶은 밤도 있겠지. 하지만 부디 너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지는 마. 너는 지금, 아무런 장비 없이 맨손으로 절벽을 기어오른, 누구보다 강하고 존경스러운 사람이니까.


지금의 씁쓸함이 언젠가 너의 서사(narrative) 속에서 가장 빛나는 훈장이 되길 바라며. 오늘도 버텨내줘서, 정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