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왜 비싼 걸까요
아무래도 시즌이 시즌이다 보니 하루에도 적게는 세 번 많게는 다섯 번 정도의 미팅을 한다. 신규 브랜드, 기존에 하던 디자이너 브랜드, 그리고 몇몇 규모가 있는 회사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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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주에 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회사 대표랑 담당자가 미팅을 하자며 나왔던 적이 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번에 신사업부를 시작하며 해외 판매 목적으로 뭐 이상한 거 만든다고 하더라고. 헬스랑 건강기능식품 쪽 분야 회사던데, 회사 내에 디자이너는 따로 없고 예전에 내가 기업들 pb 상품 만든 거 어디서 듣고 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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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신사업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가 대뜸 기획부터 같이 해달라길래 좀 더 말을 나눠보니 말이 기획이고 '오래갈 파트너를 찾는다' '동반성장 하고 싶다' 그러지 딱 봐도 그냥 공짜로 디자이너 쓰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따로 기획이나 디자인 비용에 대해 지불하기는 힘들지만 픽스된 제품에 한해서 생산을 전부 나한테 맡긴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 기획이랑 디자인은 하고, 메인 제품 생산에서 마진 남기라는 뜻이었음. 그래서 나는 생산비 보다 기획 및 디자인 구상하는 게 시간과 비용이 훨씬 많이 든다고 먼저 말하고, 업체에서 제일 고민하고 있는 신규 제품들 디자인이랑 상용화할 수 있는 방법을 간단한 스케치와 함께 즉석에서 말해주고 해결해 줬다. 사실 어느 정도 하면 어렵진 않았던 일들이라. 그걸 보고 대표가 놀라면서 그런 방법이 있었냐며 자기는 생각하지도 못했다고 좋아하더라. 그러고는 내가 제시한 방법들을 좀 더 구체화해줄 수 있냐고 하길래 여기서부터는 돈 줘야 가능하다고 하니까 일단 생각을 하고 연락을 준다고 했었음. 그러면서 어차피 생산을 내쪽에서 할 텐데 그냥 해주면 안 되냐고, 디자이너인데 디자인은 그래도 빠르고 쉽게 되지 않냐고 하더라. 그러길래 내가 한마디 함. 방금 제가 10분도 안돼서 보여드렸던 제품 구상이나 스케치, 몇 년 동안 제가 보고 듣고 만들고 했던 경험에서 나온 거라고. 이래서 디자이너는 돈 주고 써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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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업계 사람들 위주로 미팅을 하다 보니 다들 가격을 아니까 후려치거나 공짜로 쓰려는 그런 사람은 거의 없는데, 기획과 디자인 자체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이다 보니 여전히 외부인의 입장에서는 그게 쉽게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또 느꼈었다. 나는 공짜 파트너십과 동반성장은 관심 없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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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어렵고 힘들겠지만 디자이너들에 대한 처우나 인식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다. 물론 권리는 본인 스스로 챙겨야 하는 거겠지만, 그래도 서로 노력하면 조금이나마 나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 나 스스로도 이런 상황이 올 때마다 더 노력해야겠지. ps. 며칠 전에 써놨던 글인데 오늘 연락이 왔다. 조건 맞춰줄 테니 다시 미팅하자고. #궁금하면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