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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남자욱 Mar 2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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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처에 관한 설명서

나는 거래처가 생기고 내가 업체에 돈을 주는 입장에서 처음 서로 합의한 단가가 있으면 아무리 오래 거래하거나 많이 제작한다고 해도 업체 측에서 제시한 가격을 깎지 않는다. 대개 의류 제작에서는 네고를 해봤자 티셔츠 기준 장당 몇백 원인데, 비용 삼백 원-오백 원 깎아봤자 몇백 장 제작해도 금액으로는 몇십만 원이고 그거 조금 깎고 서로 찝찝하느니 차라리 신경 써서 더 잘 만들어 달라고 항상 말한다. 예전에 디렉팅 봐주던 브랜드에서 비싸지도 않은 단가에 백 원 깎아달라 오백 원 깎아달라 며칠 내내 사정하는데 되게 별로였거든. 금액이 문제가 아니라 태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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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업체 실수로 내가 맡고 있는 브랜드의 한 제품 컬러가 잘못 나왔다. 사실 실수한 거래처에다 전체 손해 배상 요청하면 깔끔하고 편하겠다만 그렇게 되면 업체 손해가 꽤나 커져서 사고 터지자마자 해당 브랜드 대표 만나서 상황 설명하고 설득시키고 합의하고. 잘 못 나온 해당 제품은 납품하되, 제품에 대해 내가 받는 프로모션 비용 반납하는 내용으로 마무리 지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나서서 신경 썼어야 했냐만, 거래처에서 걱정 되게 많이 하고 있었는데 내가 내 수익 포기하기로 하고 납품하기로 합의했으니까 그냥 다음부터 신경 써서 만들어 달라고 했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는 거니까.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내가 이렇게 까지 하기까지 얼마나 노력을 했고 얼마를 손해 봤고 이런 얘기는 일절 안 했다. 어차피 다들 경력이 최소 십 년 이상씩은 된 사람들이라 사고 난 내용만 들어도 충분히 알아서 계산되거든. 그냥 이렇게만 말하고 생색 안 내는 게 맘이 편했다. 쪼들리기 싫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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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객관적으로 보면 내 손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고 가봐야 일 년에 한 번-두 번이고 금액적으로도 그렇고. 그래서인지 이 거래처는 아무리 일이 많고 바빠도, 우리 제품 시작되면 우리 걸 제일 먼저 해준다. 나염 판 제작부터 샘플까지 적게는 3일에서 5일 정도 걸리는 것들도 요청만 하면 반나절에서 하루면 끝내주고, 수량이 꽤 되어서 메인으로 돌리는데도 내가 다른 업체들처럼 가격 제시나 네고를 먼저 말 안 하니까 이제는 알아서 네고 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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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살이지만 업계 5년 차로 정말 많은 옷들을 만들어보고 여러 업체들 맡아서 진행해봤는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공장들부터 그 외 거래처들도 다 이런 관계로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다행히 우리는 제품이 완성된 뒤, 확인해 보면 불량률을 비롯하여 교환 그리고 반품이 타 브랜드보다 현저히 적다.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다들 그만큼 신경 써서 제작해 주시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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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금액이라도 아껴야 된다라 던 지, 그런 돈들을 모아야 한다 등, 뭐 여러 의견들이 있겠지만 나는 이렇게 해서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꽤 괜찮은 관계들을 유지하고 있기에 한번 써봤다. 어차피 케바케에 사바사라지만 전체적인 의류 제작 공정은 사람이 하는 거지 기계가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또 내가 말하는 방식이 완벽한 정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오답은 아니기에. 디자이너들, 생산 담당자들한테 이리저리 공장들과 업체 핸들링에 관해 연락이 자주 오는데 한번 이런 방법으로 해보시길. 꽤 괜찮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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