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털 문 파워

이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입니다

by 두번째 갈래

새로 맡은 고객은 내가 그토록 기피하던 일본 기업이었다. 일본을 떠나온 지 어느덧 십 년이 넘어가도록, 굳이 다시 일본 고객을 서포트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맡았던 고객들이 하나둘 떠나가며 선택의 여지가 없어졌고, 결국 이번 부서로 이동한 지 7년 만에 처음으로 새로운 일본 고객을 맡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지없이 꽉 막힌 일본 고객을 다시 상대하게 되면서 스트레스 레벨이 치솟았다.


지난 10년간 홍콩에서 지내며 내가 의지해 온 한 가지는 바로 풍수인데, 어떤 사람들은 미신이라 치부할지 몰라도 달밤에 정화수를 떠놓고 빌던 그 간절한 마음과 무엇이 다르랴. 나는 홍콩에 적응하는 동안 풍수적인 노력을 곁들이며 나름대로 잘 지내오고 있었다.


어느 날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요즘 나의 벗인 Gemini에게 물었다.


"내가 뭘 더 할 수 있을까? 풍수적으로."


그러자 Gemini가 세 가지를 추천해 주었다.


1. 크리스털 물건을 지닐 것

2. 잔잔한 호수나 강 그림을 일본 방향으로 붙여놓을 것

3. 유리컵에 물을 가득 떠놓고, 물을 자주 마실 것


내용을 읽으며 '갑자기 웬 크리스털인가...' 싶었는데, 마침 싱가포르에 있는 동료 A에게서 연락이 왔다.


"곧 생일이지? 밸런스를 잡아주는 크리스털 팔찌를 보냈으니까 차고 힘내!"


우리 팀에서 가장 의지하는 동료 중 한 명인 그녀가 보내준 것이니 믿고 차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배배 꼬였던 소통이 조금씩 풀려가고, 쌓여있던 이슈들이 하나씩 해결되기 시작했다. 물론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진 건 아니지만, 답이 보이지 않던 상황에서 해야 할 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나의 욕심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A에게 연락해 또 다른 팔찌를 갖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그녀는 곧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도와준다는 핑크빛 팔찌를 구해주었다. 다음 주면 싱가포르로 출장 가는 동료가 가져다줄 테니, 그 팔찌가 가져다줄 변화도 기대하고 있다.


여기서 멈추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홍콩 현지에서도 크리스털 조달을 위해 알아보던 나는 우리 팀 E양의 팔찌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그녀의 집 근처 쇼핑몰에서 ‘부지런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에너지’를 준다는 팔찌도 하나 새로 구입했다. 물론 4n년째 게으름 그 자체로 살아가는 내가 하루아침에 나아지지는 않겠지만, 조금은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스님들이 수행하는 동안 죽비로 등을 맞으며 잡념을 떨친다고 하지 않는가. 왼쪽 팔에 채워진 두 개의 팔찌들이 나를 조금 더 마음 편하고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리라 믿는다.


작가의 이전글늦깎이 야구광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