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들의 불친절
허리 골절로 인해 꼼짝도 못 하는 상태라 당장 기저귀를 채우고 환자복을 갈아입히는 것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옆으로 돌아 눕히고 식사 때마다 몸을 일으키고 눕히는 기본적인 돌봄에서 금방 에너지가 바닥났다.
어제 입원할 때는 카트 침대에 눕혀 친절하게 옮겨주던 간호사들도 분주히 움직이기에 소소한 것까지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이튿날 아침에 엠알아이 검사와 골다공증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한다는 통보만 하고 가버렸다.
거동을 못한다고 몇 번을 카트 침대를 부탁한 뒤에야 간호사 두 명이 무표정하고 뚱한 얼굴로 와서 침대 들것에 옮겨 주어 무사히 검사를 마칠 수 있었지만, 신체 일부를 조금만 스쳐도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는 환자의 상태는 무시하고 마치 짐짝 취급하듯 하는 간호사나 방사선 기사들을 볼 때 그들의 무례함에 화가 나기도 했다.
입원 시부터 환자의 과거 병력과 현재 상태를 꼼꼼히 체크하더니 환자의 상태에 대한 배려 하나 없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엔 소 닭 보듯 눈을 감아버리는 간호사들.. 그전에도 두 번 세 번 검사실로 가는 것 좀 도와달라고 해도 눈도 안 마주치고 대답만 하고는 하던 일에만 열중인 간호사들의 태도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보호자가 용무를 전달하면 길어야 몇십 초에서 1분 정도인데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눈이라도 맞추며 대답을 하면 좋으련만 사무적인 어투로 짧게 기다리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길을 떼지도 않고 차가운 어투로 대꾸하는 간호사들을 보면 의료인과 보호자 또는 환자관계를 떠나서 인간관계에서 기본 매너와 배려심이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이 애초에 환자를 돌보는 의료인이라는 직업을 선택했을까라는 의문을 품는 자체가 그들의 시선에서는 오히려 과한 욕심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인간이란 비 정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에 장시간 노출되고 지배당하면 옳고 그름의 기준을 망각하고 비정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 게 현실이란 이름으로 그를듯하게 포장되어 지극히 상식적인 것 정상적인 것을 누르고 정당화되기도 한다.
의료인이라면 적어도 환자를 향한 사명감과 봉사정신 정도는 그들의 뇌리 속에 무장까지는 아니더라도 미미하게나마 깔려있어야 하고 또 그래야만 책임과 의무와 도리를 다 하는 것이라 생각한 건 지나친 나의 욕심인가? 그저 밥벌이용 직업 정도로만 생각하고 수능점수에 맞춰 선택한 그들이 이해 안 되는 바는 아니지만, 서글픈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버지는 밤에 통증으로 인한 신음소리가 잦아들라치면 자꾸 헛소리를 하셨고 어린애처럼 수액 바늘을 빼버리거나 빼달라고 떼를 쓰기도 해 난감했다. 또 집에는 언제 가냐며 묻고 또 묻기를 반복하고 한 번씩 병원에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밥을 해서 손님대접을 해야 되지 않느냐고 물어와 웃음과 동시에 무거운 근심걱정을 함께 몰고 왔다.
"여가 어딘데요? 하면 "집 아니가?" 하신다. 의사는 몸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타날 수도 있는 선망증상이라 하셨다. 퇴원하면 없어지니 너무 걱정 말라고 하셨지만 이런 초기증상들이 그대로 치매로 이어질 것 같은
불안감이 자꾸 엄습해 마음이 무거웠다.
아버지는 폐렴의 염증수치가 안정적인 단계까지 떨어진 8일째에 시술을 받을 수 있었다. 거동이 어려운 관계로 언제 또 병원에 올지 몰라 입원한 김에 비뇨기과 검사도 겸한 결과 스트레스성 방광염으로 진단됐다. 몇 년 전부터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소변이 흘러나와 속옷을 적시곤 하는 증상이 있어온 터였다.
며칠 뒤 비뇨기과에 또 다른 종류의 검사가 있다며 2층에 내려가라는 전달을 받았다. 외래환자로 붐비는 대기실에서 두 시간을 기다려 진료차례가 되었는데 서서 하는 검사라 거동이 안되면 검사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두 시간을 대기실에서 낭비하고 병실로 돌아오는 길에 간호사실에 대고 환자 상태를 알고 있음에도 검사가 가능한지 알아보지도 않고 내려보내 두 시간을 기다리게 했냐며 목청을 좀 높여 항의를 했더니 아무 말 없이 서로 눈치만 볼뿐 누구 하나 사과하는 간호사가 없었다. 무시하나 싶어 울화가 치밀어, 이왕 사과는 못 받더라도 환자 보호자로서 할 말은 당당히 해야겠다 싶어 한번 더 고함을 쳐서 간호사들의 기를 꺾고 나니 그동안에 쌓인 체증이 조금은 해소된 듯 가슴이 후련했다.
또 한 번은 수액이 다 비워져 간호사한테 세 번이나. 가서 말했더니 뚱한 얼굴로 와서는 불만 가득한 마음이 수액을 교체하는 거친 손길을 타고 전해졌다. 욱하는 마음에 언짢은 표시를 꼭 그렇게 해서 환자와 보호자를 불편하게 해야겠냐며 한마디 했더니 올 건데 계속 부르냐며 퉁명스럽게 한마디 던졌다. "그럼 조금만 기다려 주라던가 말을 해야지 듣고도 대꾸도 안 하니 못 들었나 싶어 세 번이나 말한 것 아니냐"라고 했더니 거기에 대해서는 반박을 못했다.
내 환자에게만 신경 써 달라는 것도 아니고 몸도 마음도 지친 보호자나 환자한테 상냥한 미소로 대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니 미소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필요해서 부를 때 대답 좀 시원스럽게 해 주면 어디 덧나나. 보호자 앞에서 인상 쓰거나 한숨 쉬는 무의식적인 행동이 가뜩이나 불안하고 지친 환자와 보호자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행위라는 걸 그들은 왜 모르는가. 본인의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대해 줬으면 하는 아쉬움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늘 느끼지만 시스템적으로 간호사와의 소통에 문제에 많다는 생각을 하는 1인이다. 병원마다 규모나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간호사 5명이 한 조가 되어 10호실을 맡는 것 같다. 그럼 한 간호가 두 호실씩을 맡거나 두 명이 한 조를 이루어 서너 호실을 전담하고 남는 시간에 다른 호실 일을 보충적으로 도와주는 시스템이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싶다.
필요할 때 부르면 마침 본인 업무가 끝나고 대기하고 있는 간호사가 있으면 바로 달려오는데 다들 바쁘게 움직일 때는 일하면서 무의식 중에 "네" 하고 대답하고는 하던 업무가 종료되면 바로 오는 걸 잊어버리거나 다른 보호자나 환자가 부르면 또 그쪽을 쪼르르 달려가 버리는 건 종종 느끼는 불편이다. 기본적으로 세 번은 호출해야 겨우 간호사를 만날 수 있는 실정이었다.
수간호사한테 간호사들의 체계성 없는 업무 행태와 시스템에 대한 고충을 토로한 적이 있는데 천사 같은 미소로 환자입장에서 진심으로 공감해 주고 조례시간에 건의사항을 잘 전달해서 미흡한 점은 개선해 나가겠노라 했다. 수간호사님의 따뜻한 위로의 말에 감동이 쓰나미로 몰려와 그동안 쌓인 감정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그 뒤로도 별 개선된 점은 없었지만 말이다.
또 한 번은 방사선 검사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엑스레이를 찍기 위해 간호사 한분과 침대 카트를 왼쪽에 정박했더니 방사선 기사가 갑자기 동행한 간호사를 향해 그쪽이 아니라 이쪽으로 놓으라며 고함을 질러댔다. 앳띈 간호사는 얼굴까지 붉어지며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데 연달아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 왼쪽이 아닌 오른쪽으로 놓으라고요." 그렇게 고함까지 칠 일이 아니었고 이쪽이든 저쪽이든 본인이 바로 놓아도 될 일을 이 기사는 환자와 보호자는 안중에도 없고 아예 투명인간 취급하는 사이코패스인가 라는 생각이 순간 뇌리를 스쳤다. 하루하루 불쾌함의 연속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검사를 마치고 병실로 돌아오니 수간호사님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달려와
"보호자님 정말 죄송합니다. 많이 놀라셨죠? 제가 그 기사에게 세게 호통을 쳤으니 기분 푸세요" 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간호사가 전한 듯했다. 제가 먼저 난리 칠걸 감잡고 선수를 친 듯했다. 그런데 난리 칠 생각도 없었다. 왜냐하면 이런 일과가 문풍지에 물 스미듯 적응이 된 것도 있고 먼저번에 검사실에서 허탕치고 와서 간호사들한테 고함쳤을 때도 서로 눈치만 볼뿐 누구 하나 와서 사과 한마디 없었기에 개선되지도 않을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고 무엇보다 단편 연극처럼 객관화시켜 보는 내공이 조금 쌓이는 중이라고나 할까.
직원의 잘못에 먼저 사과할 줄 아시고 환자와 보호자의 불편한 마음을 어루만져 줄줄 아시는 노련한 수간호사님의 입틀막 사과였지만 봄눈 녹듯 마음이 조금은 여유롭고 평온해졌다. 시술 이틀 후부터는 걸음마 연습을 해야 한다 해서 여전히 거동은 어려웠지만 걸음마 연습을 하던 중 아버지가 수액 줄을 밟는 실수를 해 수액 바늘이 빠지는 바람에 수액의 반이 복도바닥에 흥건히 흘러 또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약은 늘 식사가 나오기 전에 간호사가 챙겨 주었는데 점심약을 받은 기억도 없고 간이 서랍장 위에도 없어서 간호사한테 물었더니 " 아까 드렸어요. 어머니 제가 분명히 드린 기억을 하고 있어요."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받은 기억이 없었지만 확인할 길이 없어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뒷날도 점심약을 안 줘 간호사실에 가서 물었더니 점심약 처방은 없다고 했다. 번듯 스치는 생각이 있어 혹시 어제도 점심약 처방이 없었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내일 퇴원을 앞두고 어제오늘 양일간은 점심약이 없다고 했다. 헛웃음이 나왔다. 어제 그 간호사가 당돌하게도 본인이 약을 드린 걸 기억한다고 한 말에 실소가 나왔다. 20대 후반 정도밖에 안 보이는 젊은 사람이 그것도 다른 직업도 아닌 간호사가 그런 실수를 하다니.. 따끔하게 한마디 할까 하다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갔다.
원래 약 처방이 없었다고 하더라고 하면 아마도 그 간호사는 웃으며 "어머니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했어요." 하고 넘어가겠지. 좌충우돌 2달 같은 2주간의 입원기간이 끝났다. 퇴원 수속을 밟고 엘리베이터를 타며 속으로 다짐했다. 공짜로 치료해 준다고 해도 내가 이 병원 문턱을 다시 밟으면 성을 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