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셋 몸은 “어떤 면도의 방법에도 철학이 있다”라고 쓰고 있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매일매일 계속하고 있으면, 거기에 뭔가 관조와 같은 것이 우러난다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황금 같은 시간. 퇴근하고 절친들과 술을 먹어도 1차가 뭐야 2차까지 갈 수 있는 4시간 반. 그 시간을 길에다가 버리고 있는 것이 아까워서 미칠 것 같았다. 매일매일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리는 이 시간에 대체 무얼 해야 관조와 같은 것이 우러날 수 있을까.
가장 하기 어려운 것. 그걸 하기까지 내적 고민이 무진장 요구되는 것. 그게 뭘까. 음악 듣기? 유튜브 보기? 웹툰 보기? 땡.
독서다.
나는 왕복 출퇴근길에 ‘책을 읽는다’는 철학이 있는 사람이다.
거창한 이름을 우선 붙였다. 자, 이제 행동만 하면 된다.
퇴근길 지하철 손잡이에 간신히 의지해 서 있는데, 드디어 바로 내 앞에 앉은 어머님이 일어나셨다. 예쓰. 어쩐지 계속 두리번거리시는 게 곧 내리실 것 같더라니. 기쁨을 최대한 숨기려고 하지만 도무지 숨길 수가 없다. 함께 서서 자리 나기를 호시탐탐 노리고 기다렸던 ‘스탠딩 동지’들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저 먼저 앉겠습니다.
앉자마자 다리에 피가 정상 공급되는 느낌이다. 나의 좌우 ‘시팅(sitting) 동지’들은 모두 유튜브를 보고 계신다. 아, 나도 유튜브 볼까. 거침없이 하이킥과 무한도전은 나의 최애다. 영상 하나짜리가 15분으로, 6개만 봐도 90분. 퇴근길 지루한 시간은 금세 간다. 아니다, 책 보자. 유튜브 말고. 왠지 들어가기 싫어 보이는 핸드폰을 가방에 넣고 단호한 표정으로 지퍼를 잠근다.
아니 근데, 내가 왜 힘들게 일하고 퇴근길에까지 하고 싶은 걸 못 하나?- 억울한 덩치 큰 친구들이 씩씩대며 나에게 몰려오는 것을 간신히 떨쳐내고, 책을 편다. 책을 피기까지는 참 힘들지만 우선 피기만 하면 눈은 금세 활자들을 부지런히 쫓아다닌다.
일상에서 개인이 철학을 세우는 기저에는 ‘하기 어려운 일’이 대체로 있다. 하기 어려운 일 주변에는 ‘보다 쉽게,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이 즐비하게 널려있다. 책 읽기 주변에 유튜브 예능, 넷플릭스, 웹툰 친구들이 있는 것처럼. 나에게 “어서 와~”하며 살랑살랑 손짓하는 친구들.
오늘 하루 회사에서 욕을 바가지로 먹어서 억울해 죽겠는데, 나가서 친구들과 닭발에 소맥 마시기 vs. 집에서 고독하게 글쓰기.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보통 쉽고 편안한 일이고, 하기 싫은 일은 ‘어려운 일’이다. 가령, 책을 펼치기까지 갈팡질팡하며 내적 고민이 폭발하는 시간이 필요한, 그런 일의 종류가 아닐까 싶다.
묵묵히 “쿼카야, 책 읽자. 글 쓰자. 일어나서 출근 준비하자. 오늘은 3킬로는 달리자.” 스스로에게 말하고, 말을 지키기 위해 유혹들과 싸우고. 뭐 그러다가도 유혹에도 무너질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다시 다잡고 하기 어려운 일에 노력과 시간을 들이는 작업.
그렇게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만의 철학이 세워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