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한 실체인 '나'와 무한한 실체인 '신'
지금까지 방법적 회의를 반복한 결과, 회의하는 '나 자신'은 의심할 수 없으며 "내가 존재한다"는 명제는 내가 이것을 생각할 때마다 성립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내 존재의 확실성만으로는 학문의 확실성을 재구축할 수 없다. 아직 우리는 악신의 가설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단계에서 확실한 것은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내가 이유도 모른채 얼렁뚱땅 존재한다는 것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나 자신의 인식을 사실이라고 확신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학문적 탐구를 시작하기 위해서도 악신의 가설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먼저 신의 존재부터 증명해보자.
지금까지 고찰한 결과 "생각하는 나(res cogitans)=실체(substantia)"임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실체란 존재하기 위해 타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독립지존의 존재를 말한다. 그런데 이때 데카르트는 내가 '단독자로서' 존재한다는 첨언을 남긴다.
"내 생애의 모든 시간은, 무수한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며, 그리고 그 부분들 하나하나는 그 외에 부분에 어떤 의미로든 의거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 전에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로부터는, (중략) 내가 지금 존재해야한다는 것은, 귀결하지 않는다.(제3성찰)"
쉽게 말해서 나는 어디까지나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것이지, 지금 존재한다고 해서 미래에도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이 귀결되지는 않는다. 반대로 말하자면 지금 존재한다고 해서 내가 1초 전에도 존재했다는 사실에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전후 맥락 없이 다만 '지금 현재' 존재하는 자로서, 존재의 확실성에 있어서 명확한 한계가 있다. 게다가 자기 존재의 어떤 원인을 내재한 것도 아니다. "내가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을 내릴 수 없다는 말이다.
이 '현재'라는 것은 그때마다 무에서 연속적으로 창조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위의 인용문에서도 알 수 있듯 내 생애를 무수히 많은 조각으로 나누었을 때, 그 각각의 시간은 서로 인과관계를 맺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어떤 인과관계도 없이 그때마다 존재하는 것이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듯이, 데카르트의 철학에서 '나'는 절대적인 존재자로서 타자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들과 관계없이 초월적이고, 내 안에 내재되어 있지 않는 어떤 원인이 나를 매 순간마다 존재시키기 때문이다. 이를 토대로 나의 존재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이 결론은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무엇보다도 확실한 증거가 된다. 왜냐하면 유한한 실체인 나에게 <무한한 실체> 즉 신의 관념이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이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신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떤 무한하고 독립적이며 전지전능한 실체를 지적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그 실체가 나 자신을 창조했으며, 또는 나 이외의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다면 그 존재하는 모든 것을 창조했다. 그리고 내가 그것들에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수록, 신의 이러한 모든 성질은 오직 나로부터 유래했다고는 생각하기 힘든, 그러한 것들이다.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중략) 신은 존재한다고 결론지을 수 밖에 없다. 그도 그럴 듯이, 실체의 관념은 내가 실체라는 바로 그것으로부터 내 안에 내재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무한한 실체(substantia infinita)의 관념은 진실로 무한한 실체로부터 나오지 않는 이상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유한한 것이니까. (제3성찰)"
만약 무한한 실체인 신의 관념이 오직 나를 통해서만 나타난다면 굳이 신을 설정할 필요도 없다. 그냥 내가 전지전능한 창조신이라고 하면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실상은 어떤가? 나라는 존재는 육체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분명하지 않고, 확실한 것이라고는 겨우 앞뒤 맥락 다 잘린 채 '지금 현재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 뿐이다. 그러니 이런 유한한 존재로부터 무한한 실체가 나타날 수가 없다.
무한한 실체는 반드시 그와 동격인 무한한 실체, 즉 신 그 자체로부터 나와야 한다. 반대로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신의 관념을 가진 내가 존재하는 것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신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이 신이라는 관념은 어디에서 유래하는 것일까? 나는 어떻게 신이라는 관념을 가질 수 있었을까? 게다가 어떤 무한한 실체가 나에게 직접 '무한한 실체의 관념'을 주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믿을 만한 선신善神이라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이것을 알기 위해서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이전 글에서 세계의 근거는 곧 '나'라는 말을 했다. 내가 지금까지 나와 독립적이고 개별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존재자들은 모두 나의 주관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렇지만 착각해서는 안 된다. 비록 나를 주체 삼아서 세계가 나타난 것이라 해도, 엄연히 나의 관념을 넘어선 외부 세계가 실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나를 유한한 실체로 '한정'시키는 것이다. 이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나의 관념에는 엄연히 외부 세계가 존재한다. 나의 관념을 넘어선, 보다 광활한 외부 세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그 외부 세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도 그럴듯이 나는 나 자신의 관념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부가 '없는 건 아니다.'"
데카르트는 이러한 외부 세계를 설정함으로써 '무한한 실체'라는 관념이 어디서 유래하는지를 살펴본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모든 관념이 다만 나의 관념 내부에서만 생성되는지, 그렇지 않고 외부에서 오는지를 알고자 한다. 물론 여기서도 주제가 되는 것은 "신"의 존재이다.
신의 관념은 어디서 유래했는가? 신은 단지 나의 상상의 산물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데카르트가 말했듯이 나의 인식을 넘어선 외계外界에서 나에게 주입된 것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데카르트가 다루고자 하는 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종종 신을 가리켜 상상의 산물이라고 한다. 아수라, 제우스, 호루스와 같이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전부 인간의 상상에 불과하기에, 신이라는 것은 결국 이것을 상상하는 사람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이다. 이러한 신은 상상의 산물로서 "내 관념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는 내 머릿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유한한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이는 데카르트가 생각하는 신이 아니다. 데카르트는 신을 "무한한 실체"라고 일컫는다. 즉 데카르트에 의하면 신은 내 관념 안에서 생겨난 게 아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내가 나 자신을 스스로 유한한 실체로 이해하는 것" 그 자체와 표리일체를 이루고 있다.
지금까지의 추론을 통해 나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한 동시에 자기자신을 유한한 실체라고 이해했다. 나는 분명히 타자를 필요로 하지 않고 존재할 수 있으나 단지 그것 뿐이다. 겨우 "왠지 모르겠지만 나는 생각하는 자로서 지금 이 순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 확정했을 뿐이다. 이런 나의 존재를 무한하다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두 "나는 유한한 존재다"라는 자기이해를 갖고 있으며, 이는 곧 나를 뛰어넘은 존재를 상정하고 있고 그것의 존재를 명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이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그렇다면 나로 하여금 스스로를 유한한 실체로 파악하게 하는 것, 스스로의 유한성을 자각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데카르트는 그것이야말로 필연적 실체로서의 신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이는 "내 존재의 원인"과 깊은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앞서 데카르트는 <제3성찰>에서,
"내 생애의 모든 시간은, 무수한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며, 그리고 그 부분들 하나하나는 그 외에 부분에 어떤 의미로든 의거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 전에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로부터는, (중략) 내가 지금 존재해야한다는 것은, 귀결하지 않는다.(제3성찰)"
라고 말한 바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내가 지금 이 순간 존재한다고 해서 미래나 과거의 존재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나는 다만 존재할 뿐이지 존재의 확실성을 가진 것도 아니요, 자기 존재의 어떤 원인을 내재한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내가 어째서 존재하게 되었는가? 어째서 이러한 형태로 존재하게 되었는가?"를 아무리 자문해도 이를 해결할 수 없다. 말하자면 내 사고의 한계를 뛰어 넘은 의문점인 셈이다.
그리고 데카르트는 이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유한성의 자각이라고 말한다. 즉 나의 존재가 갖는 확실성이란 "존재 원인이 자기 내부에 없는 존재자로서의 확실성"인 것이다. 이어서 그는 외부의 어떤 존재가 나를 유한한 존재로 한정짓는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이 존재는 전후맥락 하나 없이 '지금 현재' 존재하는 나의 존재 근거가 되어 주는 것, 즉 나의 관념의 바깥에 있는 '신'이라고 불릴만한 무언가이다.
이로서 데카르트는 "유한한 실체로서의 자기이해"와 "신의 존재 증명"을 연결짓는 데 성공하며, 나와 세계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고찰하는 문을 연다.
나는 어떻게 세계를 인식하는 것인가? 그 이전에, 나의 존재 근거인 신은 과연 나를 속이는 존재인가, 아니면 올바른 인식을 가능케 하는 존재인가?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외부 세계'와 '인식론'의 문제를 살펴보며 대답하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데카르트 철학의 의의를 고찰하며 6부를 마지막으로 데카르트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