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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인 Sep 27. 2024

철학, 배움 그 자체를 알기 위한 학문

철학은 애당초 뭘까?

1. 철학, 그래서 넌 대체 뭘 배우자는 건데?


 어릴 적 통영에 여행을 갔을 때 있었던 일이다. "통영에 왔으면 게를 먹어야지!"라는 부모님의 말을 따라 통영 곳곳을 둘러 다니며 어디 좋은 식당 없는지 찾아다니던 도중, 운전대를 잡고 있던 아버지가 '어떤 건물'을 보더니 갑자기 푸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어리둥절하던 나와 동생도 이내 건물 이름을 보고 똑같이 배를 잡고 웃었다. 낡아빠진 건물 위에는 이런 간판이 걸려 있었다.


 "운명 감정소- 눈위에 사마귀 철학관"

통영에서 만난 가장 인상 깊은(?) 철학관, "눈위에 사마귀 철학관"

 여태껏 별의별 철학관을 봐왔지만 이것만큼 기억에 남는 철학관이 없었다. 어찌나 인상 깊었는지 동생은 아직도 종종 나에게 "언니도 철학 전공이니까 '손목 위에 점 철학관'이라도 세우는 게 어때?"하고 농담을 던진다. 비단 동생뿐만 아니라 만나는 사람마다 내 전공이 철학이라고 알게 되면 십중팔구 철학관을 세우라는 농담을 던지곤 했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어디서나 철학관, 사주철학이라는 말을 흔히 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동일까, 철학이라는 학문이 가지는 위상도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철학이 대체 무엇을 배우는 학문인지조차 불명확할 때가 많다. 보통 '무슨 무슨 학'이라고 하면 학문의 대상이 정확하게 명시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공학은 공업에 대한 학문, 사회학은 사회에 대한 학문이다.

 

 반면 철학의 '철'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스갯소리로 '광물의 철을 배우는 학문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 따지자면 철학의 철은 '밝을 철(哲)'이라는 한자인데, 여기에는 '밝다, 슬기롭다, 알다'라는 의미가 있다. 즉 철학은 '밝히 아는 것', 또는 '앎' 그 자체를 대상으로 삼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의문이 떠오른다.


 "아니 그래서, 대체 '무엇을' 알라는 건데요?"


 대답은 간단하다. 전부 알면 된다.


 범위가 너무 넓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그렇다. 철학은 만물을 대상으로 삼는 학문이다. 예를 들자면 사회학은 그 탐구 영역이 사회와 사회 전반에 관한 이론으로 한정되며, 이런 범위 내에서 새로운 진리와 법칙을 발견하고자 한다.


 하지만 철학은 이러한 타입의 학문이 아니다. 철학은 보다 근본적인 앎을 대상으로 삼는다. 말하자면, 저러한 문적 탐구가 시작하기 위한 전제조건을 묻는 학문이 바로 철학이다. 그것이 철학을 '앎을 대상으로 삼는 학문, ' 즉 philosophy(지혜를 사랑하는 것)라고 부르는 이유다.


 따라서 철학은 정말 광범위한 주제를 갖는 학문이다. 학문적인 것 이외에도 삶 속의 사소한 경험 하나도 탐구의 소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문적인 것을 탐구하는 건 이해가 가지만, 우리의 삶을 굳이 학문 체계 속에서 탐구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살려면 그냥 살 것이지, 왜 굳이 고뇌하면서까지 삶에 어려운 개념을 갖다 붙일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강조하고 싶다. 인간이야 말로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탐구 대상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살펴보면, 거기서는 철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


 방금 언급했다시피 철학의 주제 속에는 삶의 경험도 포함되어 있다고 했는데, 이는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근본적인 문제'를 뜻한다. 예를 들면 누구나 한 번쯤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은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선과 악은 실체가 있는 것일까?

 영혼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는 건 어떤 상태일까?


 이 질문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아주 애매한 개념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존재, 죽음, 영혼, 선악 등이 그 예시다. 그 외에도 시간, 양量, 질質, 행위, 사건 등등, 우리가 명확히 정의 내리기 어려운 개념은 차고 넘치지만, 중요한 점은 이런 개념들 없이 무언가를 생각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위에서 예시로 든 질문으로 이런 문답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Q. 존재한다는 건 어떤 상태일까요?

 A. 존재한다는 건 '어디에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대답은 순환논법에 지나지 않는다. '있다'는 대답 안에는 질문의 요소인 '존재한다'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김치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치는 김치다!"라고 대답하는 셈이다.


 따라서 이러한 질문에 논리적인 오류 없이 대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물음의 대상이 되는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에 대한 전제를 확립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철학의 역할이다. 즉 철학의 핵심은, '명확히 정의되지 않는 개념을 새로이 고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같은 철학의 역할은 일견 당연한 것을 괜히 있어 보이게 고찰하는, 불필요한 단계라고 생각될지도 모르겠으나 실상은 결코 무시할 없는 위치를 지닌다. 수학을 예시로 들어보자. 수학은 그 유명한 철학자 데카르트가 '최고로 이성적인 학문, 모든 객관성의 지표'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학문이니만큼, 애매모호한 말장난(?)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철학과 정반대에 위치한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실은 수학에도 철학적으로 고찰할 만한 요소가 들어가 있다.


 숫자란 무엇인가?

 무언가를 헤아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수는 실재하는 것인가? 헤아리는 행위의 주체 없이도 숫자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을 꼽을 수 있겠다. 특히 이것들은 수학의 최소 단위이자 핵심 요소인 숫자를 다루는 질문이니만큼, 수학이라는 학문의 본질을 묻는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철학은 여타 학문적 탐구의 출발점과 전제조건 자체를 재고하는 학문으로서, 탐구와 배움을 시작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해 준다. 


 말하자면 철학은 학문 이전의 학문인 셈이다.




2. 일상 속의 철학


 지금까지는 철학의 역할을 학문적인 측면에서 살펴봤다면, 이번에는 일상의 삶 속에서 철학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살펴보자. 사실, 우리가 일상 대화에서 철학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다만 간접적으로 매 순간마다 철학을 접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법의 형벌이 있다. 누군가를 죄인이라 판단하는 기준 중에는 자유의지가 있다. 만일 누군가가 돈을 훔쳤을 때 그 사람이 제삼자에게 협박당하여 어쩔 수 없이 훔쳤느냐, 혹은 본인의 자유의지에 입각해 주체적으로 행위했느냐에 따라 무죄와 유죄 여부가 갈린다. 여기서 큰 맥락으로 두 가지 의문과 하위 질문을 들 수 있다.



 1) 절도 행위의 선악을 판별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나?

 -선악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나? 혹은 집단 유지를 위해 임시로 정해진 일종의 가설에 지나지 않는가?


 2) 자유의지의 유무는 무엇으로 판별할 수 있나?

 -애초에 자유란 무엇인가?

 -우리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실재하는가?


 

 이중에서도 특히 자유의지와 관련된 질문을 주목해 보자. 우리는 당연히 누구라도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행동한다고 믿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자연과학을 철저히 신뢰한다. 하지만 자연과학은 철저하게 법칙과 이론 중심으로 움직이는 학문이기에 이를 신뢰한다는 것은 곧 결정론(세상 모든 일은 인과 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우연이나 선택의 자유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이론)을 지지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지금 우리가 믿고 지금 우리가 자유라고 생각하는 개념 자체가 결국 인간의 무지로 인한 착각에 불과하며, 자유 의지 같은 건 허상에 불과한 개념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자유의지를 근거로 삼는 지금의 법 체제를 처음부터 다시 고찰할 필요가 생긴다.

 

 이렇듯 일상 속에서 당연한 것이라고 무심히 넘어갔던 주제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그 속에서 다양한 물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철학적 성찰을 통해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현재 상황을 더욱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할 수 있는 활로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철학은 학문적 물음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전제와 근거를 되묻는 학문이며, 이것은 우리 삶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토록 중요한 학문인 철학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떻게 학문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초기 철학은 과연 무엇을 주제로 삼았을까? 다음 글에서부터는 철학사의 큰 줄기를 따라가며 이러한 물음에 답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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