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2월 대학 졸업을 하고 취업을 못하고 방황하던 시절이 잠깐 있었다. 같은 과 친구들은 대학졸업 이전에 취직하여 직장 다니는 친구도 많았고 졸업하고 시험공부 열심히 하여 좋은 직장에 합격한 친구들도 많았다.
당시 대기업 취업준비는 영어시험과 일반상식 이런 것을 보는 것이 1차, 2차로 면접, 3차 면접 순으로 진행되었다. 일부 공기업 시험은 필수자격증 보유를 전제로 한국사, 전공시험, 영어시험 등을 본 것으로 기억한다. 정보가 거의 없던 막연한 취업시장, 학과 사무실에 부착되어 있는 대기업 입사 추천서 의뢰 안내, 신문 하단의 사원모집 광고가 전부였다. 졸업하고 백수로 놀면서 취업준비 한다고 필수였던 기사자격증을 두 개 취득하고, 영어 점수를 위해 영어 회화학원도 다니고 TOEFL강의 듣고 면접시험 요령 책도 한 권 사서 읽었다. 당시 대학교 도서관의 출입 통제가 그리 심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취업준비는 나의 집 근처에 위치한 천안의 단국대학교 도서관 다니며 준비했다. 영어책 한 권과 일반 상식 책 한 권 들고 도서관으로 매일 출퇴근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신문의 하단에 실린 사원모집 광고였다. 열심히 여러 개의 신문의 아랫부분만 정독을 했다. "신문을 아래부터 보는 사람"이라 함은 취준생을 의미했다. 열심히 신문의 사원모집 광고에 내 전공과 취득한 자격증을 요구하는 회사에 자필이력서와 자필 자기소개서를 입사지원서를 냈다. 대부분이 수도권이었다. 어쩌다가 재수가 좋으면 면접 보러 오라 한다. 서울로 면접을 보러 가면 면접 끝나고 면접비라고 차비하라고 얼마의 현찰을 넣어 잘 가라고 주곤 했다. 계속 낙방을 반복하다가 서울 당산동의 소기업에 면접을 보러 갔다. 당연히 이 회사의 사원모집 정보는 도서관에 비치된 여러 신문의 하단에서 취득한 것이었다.
아마 면접 경쟁률은 3:1 정도었던 것 같다. 다행히 합격통지를 유선전화를 받았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 합격 통보받으려면 전화를 기다리던지 우편물을 기다리거나 전화를 직접 걸어 합부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이 전부였다.
'기사'라는 호칭을 달고 첫 직장을 다녔다. 기사 위에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이사 이런 식의 수직적 구조를 갖고 있었다. 나중에 나의 합격원인을 사장님께서 알려 주셨는데 '너는 자신감이 넘처나 보였어'였다.
친구가 알려준 입사정보를 통해 이직한 두 번째 직장
본부장 송별회 2006
수도권의 작은 회사라도 다니고 있으니 좋은 직장 다니는 친구와 선배들이 더 좋은 회사를 소개해 주었다. '00 회사에서 어떤 사람을 채용한다는데 지원서 한번 내봐' 이렇게 소개받은 대기업 면접을 몇 번 낙방하고 첫 직장보다는 좋아 보이는 회사에 입사를 했다. 이전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바로 자리를 옮겼다.
신나서 제출한 사직서 '본인 개인사정으로 퇴사를 하고자 합니다.'
예전에 신문을 아래에서부터 보던 입사정보시절이 사라지고 주변사람들이 소개해 주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두 번째 직장에서 같은 업종 사람들의 모임에 창립멤버로 참여하여 이직정보와 전문 정보를 취득하는 좋은 기회가 있었다. 이 모임에서 제공한 정보로 다른 회사 여러 번 면접을 다녔다. 이때 만난 사람들은 30년이 넘은 지금도 즐겁게 만나고 있다. 세월이 지나며 이들 모임의 인원들 대부분은 기술사 자격을 취득해 나가고 있었다. 핸드폰과 인터넷이 없던 시절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며 지내던 시절이 좋았다.
모임에서 알려준 입사정보를 통해 이직한 세 번째 직장
2010 단체 봉사활동 단체사진
영어기준은 이 정도이고 자격증은 이런 것이 있어야 하고 경력은 이만큼 있어야 한다는 기본 정보만으로 원서를 제출하고 면접보고 한 달 이후 세 번째 직장으로부터 합격통지를 받았다. 한번 직장을 바꿀 때마다 월급이 조금씩 올라갔다.
직장생활 초창기라고 생각되는 10년 간은 무조건 복종하고 시키는 일은 열심히 했다. 지각도 안 하고, 출장 가서 딴짓도 안 하고 정말 모범생으로 지냈다. 어느 날 첫 번째 악마로 등장한 직장 선배님이 생겼다. 출장지에서 술 마시고 내 멱살을 잡고 쌍욕을 한 그분이 있었다. 지금은 없지만 그분이 정년퇴직할 때까지 회사에서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치가 떨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남을 미워하는 것은 자기만 손해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다 스스로 용서하고 빠른 시일 내에 화해하고 지내는 것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동안 직장생활에서 가장 후회가 되는 두 가지는 첫째 영어회화 능력의 부족, 둘째는 기술사 자격증 미취득이었다. 두 가지 모두 직장생활 중에 모두 가능했던 일이었는데 다른 생각하다가 세월만 지나갔다. 뭔가 정말 간절히 바라고 노력하면 될 수 있었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잘한 것이라 하면 업무상 만난 여러 사람과의 다양한 분야에서의 인맥형성이라고 생각된다. 가끔은 생각나는 사람들과 가끔은 연락을 하고 만나기도 한다.
잘한 또 한 가지는 여러 자격증을 취득한 일이다. 업무상 필요한 자격증도 있고 개인적으로 좋아서 한 자격증도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기술사자격증이 없는 것이었다.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부서의 이동으로 업무경험이 늘 때마다 나만의 방식으로 작성하고 있는 이력서의 갱신이 즐거웠다. 매년 이력서에 뭔가 한 줄씩 써 나가는 것이 즐거웠다.
이력서에는 이런 것도 있다.
내셔날지오그래픽 사진아카데미 고급반 수료, 사진전시회 참여, 암벽산학교 졸업, 토왕폭 하계등반 동계등반 성공, 오디오 구입이력, 자전거 글랜드슬램 달성, 마라톤 풀코스 몇 회 완주
이직 또는 승진을 위한 이력서 작성에서 인생의 이력서 작성을 하고 있다. 이러한 딴짓하는 이력서는 직장 내 승진에는 엄청난 장애물로 작용한 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이직/승진 이력서가 필요 없어진 지금 나는 인생 이력서를 더욱 알차게 써나가야겠다.
새롭게 시작한 켈리그라피, 브러치작가도 이력서에 넣고 실력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한 해 한 해가 되도록 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