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눈치 없는 친정식구들
오전에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처음 들어보는 나물의 이름을 대며 가져다 먹으라고 한다.
얼굴이나 보러 갈 겸해서 알겠다고 했다.
나는 결혼 후 3년간 부모님이 마련해 준 보금자리에서 대출이자나 월세 한 번 내지 않고 편하게 살다가 약 2개월 전쯤에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남들은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한다. 임대업을 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부족함 없이, 최소한 집 걱정은 없이 살 수 있는데 굳이 나가서 대출이자까지 내면서 왜 나가냐는 것이다. 알지.. 왜 그걸 모르겠는가.
그런데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고 와이프의 생각은 달랐다. 그렇다.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반찬 조달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멀지 않은 곳에 시댁이 있었고 그게 와이프는 부담이었던 것이다. 아! 그렇다고 우리 가족이 우리 집을 막 찾아오거나 자주 오시거나 하진 않았다. 와이프가 불편해할까 봐 우리 가족도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오히려 친정에서 우리 집을 더 자주 방문하셨다. 그래서 내가 더 부담스럽다.
딸내미가 사는 집에 오는 게 뭐 어때서?
맞다. 그게 뭔가 문제라고. 그러나 1주일에 한 번은 좀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장인어른은 애주가다. 오시면 꼭 술상을 내와야 하며 같이 마셔주지 않는 딸은 처제와 다른 방에서 시시덕거리며 놀고 있을 때 나 혼자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상대해야 한다. 그래, 딸들이 안 해주니 내가 필요할 수 있겠구나.. 생각한다. 그런데 꼭 주무시고 가신다.
"시간도 늦었는데 좀 불편하시더라도 주무시고 가시죠~ 아부지?"
"어어.. 그르까? 그럼 맥주라도 한 잔 더 하지"
옆에서 장모님께서 한 마디 거드신다.
"안 그래도 자고 가려고 다 챙겨 왔다~"
그때까지도 와이프와 처제는 안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
.
와이프가 생각하기에 나와 친정식구들 간의 심리적 거리가 상당히 가깝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 글을 보는 모든 기혼자들은 이해할 듯하다. 아무리 가깝고 편해도 시댁어른이 내 부모가 될 순 없고, 아무리 자주 만나도 사위가 친정식구들의 아들이 될 순 없다. 그래도 나는 노력한다. 아들이 없는 집이라 그런지 딸들은 아버지보다 어머니 편을 들기 일쑤고 아버지의 위상은 빛을 잃은 지 오래된 가정이다. 그게 눈에 너무 잘 보이지만 그런 걸로 와이프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는 것이 내 위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친정식구의 가정사에 오지랖 부리며 감정을 쏟고 싶지 않았다.
"아빠 집에 안 가나?"
와이프가 밤 12시가 되어서야 처제와 거실로 나왔다.
"어어.. 아빠 자고 갈 거다."
당당하진 않지만 확실한 의사표현이다.
"엥? 자고 간단 말 없었잖아?"
와이프의 동공이 확장된다.
"사위랑 한 잔 더 먹고 자고 갈라고"
맞다.
내가 주무시고 가라고 했다.
"안 된다! 택시 불러줄 테니까 얼른 가! 나도 내일 미용실 오전에 예약해 놨고 오빠도 내일 바빠서 엄마 아빠랑 같이 못 놀아준다!"
응?
내가 바빠? 왜?
그렇다. 내가 백수란걸 친정식구들은 모른다. 말을 안 했으니까. 그리고 말을 한다 해도 딱히 달라질 현실은 없다. 내가 선택한 시간들이 비참해진다면 보는 사람도 날 안쓰럽게 생각할 테니 말이다.
"아 그러면 가자! 가야겠다!"
"어어 내가 택시 잡을게~"
한 마디도 보태지 않았다.
식탁을 치우고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살짝 알딸딸한 상태가 내 머리를 베갯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든다. 조명이 꺼진 깜깜한 방에 휴대폰을 보고 있는 와이프에게 말했다.
"근데 있잖아, 나 내일 안 바쁜데?"
그랬더니,
"나도 낼 미용실 안 가는데?"
"엥? 아부지한테 거짓말 한 겨??"
"응! 아니~ 술 먹으면 늦잠도 자고 싶고 할 텐데 엄마 아빠 다 있으면 좀 불편할 수도 있잖아~"
"아니! 내가 주무시고 가라고 했는데? 그리고 이미 주무시고 가려고 준비를 해오셨던데??"
"아이고 나도 아무리 우리 어머님 좋다 좋다 해도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그러면 솔직히 좀 부담되는 건 사실이야. 근데 오빠라고 안 그러겠냐고~ 그리고 어머님은 우리 눈치 많이 보셔서 잘 오시지도 않잖아~ 내가 그걸 모를 것 같아?"
지금까지 나는 와이프가 배타적인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뭐지 이 이타적인 멘트는? 그렇다. 아닌 듯해도 와이프는 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배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껏 나만 희생하고 헌신한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와이프의 한 마디에 더 혼란스러워졌다. 절대 유쾌하진 않았다. 네가 그렇게 하니 나도 이 정도는 해야 되지 않을까?라는 논리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실 손익을 따지 자는 건데 부부간에 손익을 따지고 타산을 논하면 끝이 없다. 그냥 유치한 말다툼밖에 되질 않는다. 못났다 참. 왜 이렇게 못난 생각만 드는 하루일까. 그렇게 다음 날 대충 치워놓은 식탁 아래 흰 봉투가 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흰 봉투를 열어보았다. 5만 원권 20장이다. 이사했는데 사돈어른처럼 지원은 못해줘서 미안하다는 내용과 이것저것 구비한다고 목돈도 많이 들었을 텐데 필요한데 써라는 문자메시지. 나는 그날 바쁜 날이 맞았다. 한심한 나를 되돌아보는 탓에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손에 잡혔던 것이 없었던 정신없이 바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