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그와 똑같은 크기의 성공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다.
토요일 오전.
아무도 없는 집에 어김없이 노트북 앞에 앉았다.
하루 이틀도 아니지만 유독 오늘따라 고요함이 더 깊다.
백수는 주중, 주말 구분이 없다.
늘 같거나 비슷한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점도 있다. 내가 만들어 놓은 루틴을 언제든 적용할 수 있기 때문.
나는 실패를 많이 했다. 지금 또한 실패를 견디는 중이고.
20대 후반, 30대 초반, 30대 중반, 30대 후반.
시작은 늘 찬란했으나 지속되지 않음은 결국 실패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처음엔 나도 실패라고 인정하진 않았다. 잘 차려놓은 가게를 시설비용보다 더 높은 권리금을 받고 팔았고, 그렇게 총 4번의 도전 중 단 한 번도 내가 오픈했을 때 보다 적은 금액으로 넘기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40대가 된 나는 실패 중이다. 또다시 도약을 해야 하는데 이제 또 무언가를 시작하게 된다면 끝이 어떻게 될지 시작도 안 했는데도 보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실패이다.
좌절을 하냐고?
아니.
딱히 좌절할 정도로 내 삶이 팍팍하진 않다.
40년 인생 중 가장 한가로운 해를 보내는 중이라 좀이 쑤시긴 하지만, 성격상 이 또한 더 못해먹겠다고 생각이 들면 바로 행동에 옮긴다는 것을 나는 알기 때문이다.
어느 날 와이프가 내게 말했다.
"언제까지 쉴 거야?"
갑자기 식은땀이 날듯 온몸에 열이 오른다.
"오래 쉴 생각은 없는데.. 뭘 하면서 쉬는 게 나을지 고민하는 중이야."
그랬더니 와이프가 하는 말.
"하긴 뭘 해!"
"뭘 하면 쉬는 게 아니지!"
응??
의외의 반응이다.
그런데 딱히 걱정되진 않는다. 와이프는 병원에서 일을 한다. 나이에 비해 적지 않은 월급을 받으며 나 하나 정도는 먹여 살릴 만큼 버는 듯하다. 그냥 자기는 일찍 일어나 출근준비하고 해가 지고 나서야 집에 돌아오는데 반해 나는 늘 와이프가 출근할 때까지 침대에 누워있으니 부럽다고 하루 한 번씩은 말을 한다. 그게 조금 불편할 뿐이다.
"그래도 계속 이렇게 있을 순 없잖아."
마음에 없는 말을 했다. 사실 뭘 할지 고민하고 있진 않았다. 그리고 관심 있는 것도 없었다. 그냥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내가 아니라 '뇌'가 시키는 행동들을 믿고 따르려 했다.
"내가 오빠를 아는데 또 뭐 하나 꽂히면 그거에 미쳐서 공부하고 알아보러 다니고 사람 만나고.. 결국 이거다! 하는 게 생기면 누구보다 열심히 할 거잖아."
"지금은 그냥 오빠하고 싶은 거 하고 놀러 가고 싶으면 놀러 가고, 돈이 좀 들어가는 일이 생기면 혼자 끙끙대지 말고 나한테 말하고!"
"어차피 지금이야 이렇게 사는 거지.. 나중에 혹시라도 아이가 생기면 그땐 오빠가 독박벌이 해야 할 수도 있으니 지금은 내가 가장할게! 나가놀앗!"
.
.
든든하다.
나는 눈치가 남들 이상 빠른 것 같다.
저 말에는 아주 여러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을 눈치채야 한다. 지금 나에게 자유를 줄 테니 나중엔 네가 나한테 이렇게 하게 해야 한다는 것. 아이를 가지자는 고맥락 메시지. 육아를 할 때엔 육아에 전념할 테니 맞벌이는 기대하지 말라는 것. 짧은 시간에 빨리 파악하지 않으면 자칫 감정싸움이 일어나고 만다. 만약 눈치 없이 내가 "혼자 일해도 상황이 힘들면 같이 일해야지.."라는 말을 굳이 지금 한다면 큰 일이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머리와 가슴과 입을 따로 놀릴 줄 아는 사람이다.
"아유 그럼 고맙지!"
"나중에는 오빠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조금만 고생해 줘~"
훗훗. 어렵지 않다. 말 몇 마디로 화목함을 유지했다. 당장의 위기는 넘겼지만 내가 누구인가, MBTI의 T와 I의 성향을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생각이 많아진다. 그리고 계획한다. 어떻게 해서든 내가 우리 와이프가 바라는 방향대로 이룰 수 있게 고민을 한다.
나는 성공한 사람이다.
오전에는 자고 싶은 만큼 자고, 아이와 놀아주면서 시간을 보내고, 오후엔 내가 하고 싶은 취미생활을 하면서 저녁에는 가족들과 함께 식사시간을 가지다가 잠이 드는 것.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이렇게 사는 것이 목표이다. 아이는 없지만 고양이는 있다. 그것만 빼면 난 지금 목표를 달성했다. 실패를 통해 성공을 얻은 셈이다. 이미 성공을 얻은 사람은 본인이 성공한 줄을 모른다고 한다. 나는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데 왜 초조했던 걸까? 나는 성공을 했는데 왜 고민이 많았던 걸까? 성공을 했는데 뭐가 걱정인 걸까?
안 하기로 했다. 또 다른 성공을 위해 고민할 뿐, 나는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