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부정적인 사람의 내면세계
와이프가 출근하고 난 후 조용한 집.
우리 집 고양이 하루가 방문밖에서 날 기다린다.
나는 40세 유부남 무자녀 백수다.
백수가 된 지 약 7개월.
첫 한 두 달은 해방감에 하루하루가 시간이 너무 잘 지나갔다.
지금은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간다.
힘들거나 고통스럽지 않다.
라고 늘 긍정회로를 풀가동 한다.
와이프가 출근 전 달걀찜기에 달걀을 올려놓고
어제 먹던 국을 데우기 위해 레인지를 켜두고 나갔다.
더 자지 말고 아침 챙겨 먹으라는 고맥락 메시지다.
대충 밥 말아먹자
혼자 하는 식사가 이제 익숙하다.
때문에 한 끼 한 끼 제대로 챙겨 먹는 부지런함도 사그라들었다.
얼마 전 김장철로 양가 어머니께서 김치를 몇 통이나 조달해 주신 덕분에 오늘 아침도 든든한 시락국밥 한 상인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추운 계절에는 뜨끈한 국에 밥을 말아서 김치 올려먹는 것만큼 든든한 식사가 없다.
나는 마흔이다.
엊그제 20살이었고 어제가 30이었다.
그 엊그제가 아직도 생생한데
내가 마흔이라니..
이제는 진짜 마흔 살의 아저씨다.
그러나 나는 딱히 우울하진 않다.
15년가량 몸담았던 내 전공과 관련한 직업에서 스스로 물러났고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뭘까?"
라고 생각해보진 않았다. 많이 늦었지만 그런 시간을 갖는 중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상황과 그 상황에 따른 선택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내가 했던 선택들에 대해 후회를 한다면 난 이런 시간조차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마음이 편한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돈돈거리지 않고 늘 날 위해주는 와이프를 만나 이런 호사를 누린다.
와이프가 퇴근을 할 때면
"들어갈 때 사갈 테니 먹고 싶은 게 있어?"
라며 내게 물어보곤 한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딱히 끼니를 거르거나 굶고 다니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요구한다.
어떤 걸로?
와이프가 평소에 좋아하는 메뉴로.
그러면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가 한 톤 상승한다.
"와 나도 그거 진짜 먹고 싶었었는데 우리는 진짜 잘 통하는 게 있나 봐!!"
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면 나는 그 기분에 맞춰주기 위해 이렇게 말한다.
"그럼 오늘 소주도 한잔할까?"
와이프는 술을 좋아한다. 많이 마시지는 못하지만 음식과 곁들이는 것을 좋아한다. 한참 커리어 쌓기 바쁠 나이에 나는 프러포즈를 요구당했다.
와이프의 나이 27세쯤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아홉수에 결혼을 하고 싶진 않으니 얼른 결혼하자고 말을 해달라고 말이다.
그렇게 얼떨떨하게 결혼을 했고, 1년만 신혼을 즐기다가 아이를 가지자고 했으나
아직 우린 2세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그렇다면 우린 아직 신혼이다. 연애 5년 결혼생활 3년.
아내 20대의 대부분의 시간을 나와 함께 보냈고 이제 갓 30대가 된 와이프는
여전히 내 눈에는 20대 초반의 풋풋한 막내 여동생 같은 느낌이다.
이렇게까지 얘길 했으면 와이프와 내 나이가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지 짐작은 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늘은 이전에 나와 함께 동업을 했던 아주 참하고 의리 있는 동생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다.
인간관계가 한없이 중요한 이 시점에 나는 챙길 사람은 꼭 챙겨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귀찮기는 하다. 거리가 가깝지도 않거니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 없다 보니 혼자 가야 하기 때문이다.
MBTI의 I의 성향이 강한 나는 여러 사람과 잘 어울리지만 단독행동은 조금 힘들다.
좋은 음악이라도 볼륨이 큰 건 싫다.
그 때문인지 나는 시끌벅적하고 사람이 많은 번화가나 백화점을 가면
기가 빨려 금방 체력이 방전이 되고 만다.
성향이 아니라 내 나이가 그렇게 방전이 잘 되는 나이인가 싶은 생각도 종종 들기도 한다.
마침 와이프한테 카톡이 왔다.
결혼식 갈 때 입고 갈 옷 꺼내놨으니까 그거 입고 가란다.
정장을 생각했지만 요즘은 또 그게 아닌가 보다.
탐탁지는 않지만 말을 들어야 한다.
현재 우리 집 가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뭘 입고 가던 뭘 입어서 타인이 날 어떻게 생각하던 난 중요하지 않다.
내 가치를 내가 입고 있는 것으로 증명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 생각하고 싶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자존심이다.
나이 들수록 더 가꾸고 꾸며야 한다고 한다.
보이는 것이 곧 명함이 될 수 있는 우리나라 정서에는 딱 맞는 말이다.
난 긍정적이다. 그리고 상당히 이성적이다.
드라마나 멜로영화를 볼 때를 제외하면 말이다.
예전에는 티비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는 게 전혀 공감이 되질 않았지만,
지금은 호르몬에게 쉽게 지배당하는 나이인지라 감수성이 깊어진 듯하다.
그리고 드라마나 영화의 악역배우에게까지 긍정적이진 않다.
나는 선택적 부정적인 사람이다.
브런치의 첫 글을 어떤 주제로 써볼까 하며 고민하다 오늘 새벽 3시가 넘어서 잠이 들었다.
고민의 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노트북 앞에 앉는 순간 그냥 내 얘기가 나와버렸다.
나는 이제 2년 차 백수다.
나이 마흔에 갈 수 있는 회사는 한정적이며, 할 수 있는 일도 제한적이다.
나의 들키고 싶지 않은 조급한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유튜브에서는 중간에 나오는 광고마다 온라인사업, 디지털 노마드, 스마트스토어 구매대행, 쿠팡, 블로그, 유튜브 쇼츠로 돈 벌기 등등 아주 혹할 수밖에 없는 다양한 사업분야가 내 눈길을 잡는다.
"노트북 한 대만 가지고도 월에 천만 원을 번다고?"
하면서 온라인강의를 들을까 하다가 이내 생각을 접고 만다.
내가 작년까지 하던 일을 접는 순간부터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고 위에서 언급한 웬만한 온라인 사업은 다 경험해 보았다.
네이버블로그? 티스토리 블로그?
1일 1포에서 많게는 하루에 3개의 포스팅을 하며 영혼 없는 글쓰기에 흥미를 금방 잃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수익도 있었지만, 부업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는 액수는 나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스마트스토어?
스마트스토어는 내가 사업자였던지라 있던 사업자등록증을 가지고도 3번이나 사업을 했다.
무려 빅파워등급까지 끌어올렸고 일 단위 정산금액이 2백만 원이 넘어가기도 했지만
결국 팔고자 하는 제품은 누구나 팔고 있었고, 가격경쟁은 점점 팔고도 적자를 보는 시스템을 낳게 만들었다.
유튜브?
구독자 천 명을 모아서 수익화를 만든다는 것이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론은 무엇이냐.
단순히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에서 억지로 나를 갈아 넣는다는 것에는 흥미가 없으니 지속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모든 사업은 '꾸준함'이 없으면 가능성 있는 사업도 도태되고 만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수익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목적이 되기로.
돈을 좇지 않고, 수단과 행위를 좇기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는데 집중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