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티유 오페라하우스
예술의 도시 파리에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하우스가 두 개 있다. 도시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오페라 하우스가 두 개나 있으니 과연 예술의 도시답다. 두 개의 유명한 오페라 하우스 중 하나는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Palais Garnier Opera)이다. 1875년 천재 건축가 가르니에에 의해 건축된 호화 장대한 건물이며, 오늘날까지 프랑스 오페라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세계 주요 오페라 하우스 중 하나다. 하지만 프랑스 황제의 꿈과 부르주와의 예술적 기쁨을 표현해 주었던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의 근본적 문제는 오페라 엘리트주의로 인해 일반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기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1989년 프랑스 정부의 강력한 주도로 바스티유 광장에 최첨단 기술과 무대 크기를 자랑하는 새로운 오페라 하우스가 건축되었다. 바로 바스티유 오페라 하우스(Opéra de la Bastille)다. 이 오페라 하우스는 한국 음악계의 거장, 지휘자 ‘정명훈’이 한때 예술감독으로 재직하였기에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오페라 하우스다. 자, 그럼 지금부터 ‘현대적이고 대중적인(Modern &Popular)’ 오페라 하우스를 표방하는 파리의 바스티유 오페라 하우스를 방문해 보기로 하자.
파리의 지하철 1·5·8호선을 타고 바스티유 역에서 내리면 바스티유 광장(Place de la Bastille)이 나온다. 프랑스 전제정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바스티유 감옥이 있던 자리에 만들어진 광장이다. 바스티유는 샤를르 5세 때 만들어진 성채였는데, 루이 13세 때부터 국사범을 가두는 악명 높은 감옥이 되었다. 프랑스혁명 당시 군중은 이 감옥을 점거, 파괴함으로써 혁명을 성공시켰다. 이날이 1789년 7월 14일인데, 프랑스인들은 이날을 혁명 기념일로 경축하고 있다. 광장 중앙에는 52m 높이의 7월 혁명 기념탑(Colome de Juillet)이 있다. 이 바스티유 광장 동남쪽에 바로 바스티유 국립 오페라 하우스(Opera National de Paris-Bastille, 주소: 120 Rue de Lyon)가 위치하고 있다. 이 오페라 하우스는 파리 12구에 있어 전통적인 극장가에서도 다소 떨어져 있으나, 현재는 문화예술 애호가들의 발걸음이 잦아지면서 바스티유 일대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원래 기차역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바스티유 오페라 하우스 주변에는 갤러리와 영화관, 소규모 콘서트 홀 등 다양한 문화시설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거대한 선박의 모습을 형상화한 바스티유 오페라 하우스는 연면적 16만㎡, 높이 80m(지하 30m)의 9층짜리 건물로 파리에서 국립도서관, 재무부 청사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건물이다. 외관은 특히 모더니즘 양식이 돋보이는 데, 공연장 밖에서도 내부가 다 보이도록 하는 Inside Out 공법이 눈길을 끈다. 바스티유 오페라하우스의 외관은 최근 Inside Out 공법을 사용한 전 세계 공연장 건축 흐름의 효시라 할 수 있으며, 작곡가, 연출가, 음향전문가, 건축가 등 여러 관련 전문가들의 심오한 연구를 토대로 건축되었다. 특히, 바스티유 광장에 잘 어울리도록 ‘개방과 참여’의 정신으로 대중 접근이 용이하게 설계·디자인된 점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3개의 공연장을 비롯하여 작업장, 회의실, 의상실, 영사실, 기계실, 11개의 연습실이 갖추어져 전체의 건물이 형성되었다.
내부는 전체적으로 정돈된 느낌의 무채색으로 공간의 분배가 효과적으로 되어 있다. 벽에 사용된 화강암은 잔향시간을 확장시키는 효과를 주며, 나무목재의 마룻바닥과 좌석 시트, 천정의 백색 조명은 건축 재료와 색채의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메인 홀 객석은 2,723석이며, 실내 오페라 용인 500석의 원형극장(Amphithéâtre)과 강연 등에 사용되는 250석의 스튜디오가 있다.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가 객석 중 적지 않은 수가 나쁜 시야를 제공하는 것과 달리, 바스티유는 객석 전체가 무대를 보는데 적당하다. 메인 홀의 객석은 3층으로 설계되어 있는데, 일반석, 제1 발코니, 제2 발코니의 3층 구조로 되어 있다.
대부분의 유럽 오페라 하우스들이 모델로 삼는 것은 말발굽형 구조인데, 이는 귀족층들이 선호하던 로열박스 구조다. 하지만 바스티유 오페라 하우스는 발코니 구조로 설계됐다. ‘평등의 원리’에 따라 객석의 편안함은 동일하게 유지하며, 특히 박스석은 아예 없다. 공연 중 자막을 보는데도 객석 어디서든지 전혀 지장이 없다. VIP를 위한 로열 박스 혹은 프레지덴셜 박스 석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대신에 아레나의 일반 좌석 중 정중앙 통로 후 나오는 15열을 VIP석으로 지정하여 특별히 대통령 전용 좌석으로 두었다. 모든 관객이 무대 정면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프랑스 사회당 정부의 강력한 주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바스티유 오페라 하우스는 좌석 어디에서나 무대를 정면으로 내려다볼 수 있고 음향조건을 그런 구조에 맞게 적정화 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거대 규모의 객석은 종종 부정적으로 “대형 선박”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세계의 다른 월드 클래스 오페라 하우스와 비교해 볼 때 솔직히 음향은 다소 실망스럽다. 최고의 좌석은 제1 발코니 맨 앞이고, 제2 발코니 앞도 무대가 조금 먼 것을 제외하면 괜찮다. 공연 휴식시간에는 위층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 원래 이 레스토랑은 파리에서 고급식당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푸케(Restaurant Fouquet's)'의 분점이나 이곳에서는 오페라 바스티유의 정신에 맞게 본래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고급식당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아울러 일층 로비에는 북 숍(예전에는 지하에 아주 큰 규모였으나, 일층 로비로 옮기며 그 규모는 줄어들었음)이 있다. 오페라와 월드뮤직에 관한 많은 도서 및 음반이 있어,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즐거움의 하나이다.
최첨단 혁신적인 공연장 바스티유 오페라 하우스의 진정한 정수는 관객들이 바로 볼 수 없는 무대기술에 있다. 매 시즌 190회 이상의 공연이 무대에 올라가는데, 이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복잡한 무대설비를 요구한다. 먼저 오케스트라 피트는 110명을 수용할 수 있다. 무대는 넓이 30m, 깊이 20m, 높이 38m이며, 프로시니움의 넓이는 17.5m이다. 무대 장치의 빠른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장치들, 대도구 작업실, 리허설 실 등이 잘 갖추어져 있다. 2,000년대 이후 건설된 세계의 주요 공연장들은 기본적으로 이 정도의 무대 설비는 갖추고 있으나, 89년 개관 당시 전 세계에서 두 개의 작품이 동시에 올라갈 수 있는 무대 시스템을 갖추며 무대 크기와 동일한 세 번째 무대에서는 리허설이 가능한 곳은 이곳 바스티유 오페라 하우스가 유일하였다.
무대 디자이너에 의해 지하 6층 400㎡ 공간에서 제작된 무대 세트는 25분 만에 메인 무대로 이동이 가능하다. 또한, 레일 네트워크 시스템을 통해 무대 세트는 메인 무대에 정확히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이러한 모든 시스템은 컴퓨터 제어에 의한 것으로 무대기술의 혁신을 가져왔다. 오늘날 전 세계 주요 공연장의 표준 무대 메커니즘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바스티유 오페라 하우스의 무대 기술 스태프들은 이러한 기술 전파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최근까지도 무대감독들의 기술자문 및 컨설팅 활동이 전 세계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데, 대표적인 세계의 극장으로는 북경 대극장,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이 있다. 참고로 바스티유 오페라 하우스의 무대기술팀은 총 18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대미술을 비롯해 의상, 전기, 조명 등 오페라 공연에 필요한 74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자리에서 공동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큼 큰 규모를 갖춘 극장은 당시 세계에서 바스티유 오페라 하우스가 유일하였다. 이런 공동 작업을 통하여 제작과정 중 공연자와 무대 전문가 사이 충분한 토론을 가능케 해 오페라 무대의 전체적 조화를 이끌어내고 작품의 질을 높인다. 무대 장치는 컴퓨터 제어와 설비 부분에 있어 현대 건축의 정수를 집결한 것이었다. 세계 최대의 9면 무대를 갖고 방음벽으로 구분함으로써 공연 중에도 다른 공연 레퍼토리를 리허설할 수 있다. 오늘날 세계 최대 규모의 무대기계와 설비를 갖춘 극장 및 오페라 하우스의 대부분은 바스티유 오페라 하우스로부터 기술적 자문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파리에서 최첨단 기술을 결집한 새로운 오페라 하우스를 건설하려는 계획은 장 빌라, 피에르 불레즈, 모리스 베자르 등 당대 최고의 프랑스 예술가들이 새로운 오페라 하우스 건설을 제안하는 보고서를 출판한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1년 말경에는 이 프로젝트의 현실성을 검증하는 연구가 시작되었다. 1982년 3월 8일 드디어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현대적이고 대중적인(Modern &Popular)’인 오페라 하우스를 프랑스혁명을 상징하는 바스티유 광장에 건설한다고 공포했다. 1982년 11월 국제 건축 대회를 공모했고, 1,650건의 참가신청이 있었으나 최종 기일인 1983년 3월 13일까지 모두 756편의 작품이 제출되었다. 1983년 11월 17일 공모전의 배심원들은 당시 가장 주목을 받던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의 작품이 선정될 것이라는 루머에도 불구하고 무명 건축가 카를로스 오토의 작품을 선정하였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의 건축가 가르니에 역시 당시에는 무명이었다.
건축에 필요한 예산은 당시 공연장 건축 역사상 최고 액수인 무려 4억 달러였으며 건물의 오프닝은 프랑스혁명 200주년에 맞추어졌다. 프랑스혁명이 왕과 귀족, 성직자들이 독점하고 있던 권력을 국민들에게 되돌려줬다면, 바스티유 오페라 하우스는 '가진 자들만의 전유물'이던 오페라를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문화적인 혁명의 발상지를 염두에 두었다. 공연예술 중에서도 가장 귀족적인 오페라의 대중화를 통한 공연예술인구의 저변 확대, 그것이 프랑스 정부의 문화정책이며 그런 정책이 실현되도록 지원을 했던 사람이 바로 지금은 고인이 된 프랑소아 미테랑 대통령이다. 바스티유 오페라 하우스는 루브르 박물관 광장의 피라미드, 라 데팡스의 신개선문, 프랑스 국립도서관 등과 함께 20세기 말 프랑스를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건축 사업 '그랑 프로제(Grands Projets)'의 일환인데, 프랑스혁명 200주년인 1989년을 목표로 이루어진 그랑 프로제는 10여 개에 달한다. 바스티유 혁명일 전야인 1989년 7월 13일 바스티유 오페라 하우스는 ‘혁명 전야 The Night Before the Day’란 주제로 오페라가 아닌 콘서트로 문을 열었다. 조지 프레트레의 지휘로 당대 최고의 성악가인 플라시도 도밍고, 바바라 헨드릭스, 테레사 베르간자, 셜리 베렛, 루지에로 라이몬디 등이 출현하는 대형 콘서트였다. 이 오프닝 콘서트에 지금은 고인이 된 프랑소와 미테랑 대통령은 전 세계 지도층 인사들을 초대하는 등 문화강국 프랑스를 홍보하는 성대한 파티로 만들었다.
1990-91년 첫 시즌에 바스티유 오페라 하우스는 베르디의 ‘오텔로’, 이탈리아 현대음악 작곡가 루치아노 베리오의 ‘Un re in ascolto’, 생상의 ‘삼손과 데릴라’, 차이코프스키의 ‘스페이드의 여왕’,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야나첵의 ‘카차 카바노바’, 푸치니의 ‘마농레스크’의 오페라 작품으로 시즌을 이끌었다. 바스티유 오페라는 건립 당시 오페라 전용극장,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는 발레 전용극장으로 계획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분리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서서히 폐지되고 있는데, 가르니에의 발레가 바스티유 오페라에서 공연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심포니 콘서트 역시 종종 공연되어 한해 시즌을 구성한다. 1996년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바스티유 오페라 하우스에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가 가세함으로 인해 보다 대중적이고 주류 오페라 작품의 공연을 통해 일반 시민의 관객개발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베르디의 ‘나부코’, ‘라 트라비아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푸치니의 ‘투란도트’ ‘토스카’, 비제의 ‘카르멘’, 모차르트의 ‘휘가로의 결혼’ ‘코지 판 투테’, 드뷔시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벤자민 브리튼의 ‘빌리 버드’, 차이코프스키의 ‘예브게니 오네긴’, 벨리니의 ‘노르마’, 마스네의 ‘마농’ 등을 주요 레퍼토리로 공연하고 있다. 콘서트는 크게 파리 오페라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정명훈이 지휘했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 필하모니, 초대 오케스트라 3 부분으로 나뉘며 각기 다양한 연주회를 개최한다. 600석의 원형극장(Amphithéâtre)에서는 오페라, 콘서트 및 독주회를 공연하며, 280석의 스튜디오에서도 독창회 및 독주회가 연중 공연된다.
바스티유 오페라 하우스는 오페라 공연 외에도 청소년과 시민들을 위한 무료 강좌, 무용 시연, 각종 전시회 등을 주최하며 파리의 공연예술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오페라와 영화·콘서트를 감상한 관람객들이 쏟아져 나오는 밤 10시를 지나면 바스티유 오페라 하우스 주변의 카페와 레스토랑은 예술과 문화를 논하는 파리 시민들의 대화로 더욱 활기를 뛰게 된다.
매년 800,000장의 티켓이 판매되며, 객석 점유율은 90% 이상을 보이고 있다. “일반 시민을 위한 오페라”라는 정책 목표는 일단 달성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늘날 바스티유 오페라 하우스는 예술적 수월성은 물론 접근성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성공한 오페라 하우스로 전 세계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바스티유 오페라 하우스의 가장 좋은 좌석은 1층의 오케스트라 스톨이며, 저렴한 가격의 좌석 중 괜찮은 자리는 사이드의 갤러리 석인데, 좋은 시야를 제공하나 자막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단점이다. '가진 자들만의 전유물'이던 오페라를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문화적인 혁명의 발상지답게 티켓 가격도 유럽의 타 오페라 하우스에 비해 저렴하다. 티켓 가격은 5€에서 150€인데, 특히 정기회원이 28세 이하일 경우 할인을 받을 수 있으며, 60세 이상 관객들은 45€의 Pass Opera Seniors 카드를 구매 시 추가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두 곳의 작은 스탠딩 좌석이 객석 제일 뒤에 설치되었는데, 티켓 가격은 단 €5에 판매되고 있다.
바스티유 오페라 하우스의 유용한 정보
건축 연도 : 1989년
건축가 : 카를로스 오토
초연 : 베를리오즈의 ‘트로이 사람들 Les Troyens’
객석 : 원형경기장 객석, 2개의 발코니
객석 수 : 2,723석 (원형극장 500석, 스튜디오 250석)
시즌 기간 : 9월부터 7월
티켓 가격 : 5€~150€, 극장 가이드 투어 가능(11€)
홈페이지 : http://www.operadeparis.fr
주소 : L'Opéra National de Paris, 120 rue de Lyon 75012, Paris, F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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