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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돌 Nov 06. 2023

내 젊은 날의 비망록


서정주 시인은 그의 시 ‘자화상’에서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고 했다. 시인에게 있어서 바람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을 게다. 그 바람은 생명의 용솟음이며 죽음의 뒤안길이며, 젊은 날의 방황이었을 것이다.   


바람이 시인의 ‘자화상’을 키웠다고 한다면 정작 나를 키운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를 키운 것은 인간의 권선징악을 알려주는 독서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길라잡이를 안내 해준 스승이었고 속내를 털어놓는 친구도 있었다. 도 있었다 하지만... 나를 키운 것은 정작 팔할이 일기라는 것을 부인하기 힘들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를 썼다. 마치 신들린 무당처럼 미친 듯이 일기를 써내려 갔다. 그 당시 살아가는 일이 고달프고 견디기 힘들 때마다 일기장은 유일한 나의 버팀목이었고 돌파구였다.      


그런데 그 후에 알았다. 내가 일기를 쓴 것이 아니고 일기가 나를 쓴 것이다. 내가 일기의 버팀목이 아니라 일기가 나의 버팀목이었다. 내가 일기의 돌파구가 아니었고 일기가 나의 돌파구로 나를 키운 것이었다. 일기 옆에서 나는 바람의 발자국 소리에 자랐다.


일기를 쓸 때마다 나는 키가 자랐고 그때마다 거듭났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정표를 알려 준 것도 일기였고 절망의 늪에서 헤어 나오게 한 것도 일기였다. 위기라는 그 수렁에서 나를 건져준 것도 바로 일기였다. 가난했지만 존엄하게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알려준 것도 일기였다.       


일기는 정작 내 인생에 있어서 너무나 많은 영향을 미쳤다. 바람에 흔들리던 나무의 초리도 흔적도, 깊은 밤 홀로 깨어 바라본 바다도 그 일기 옆에 있었다. 이공계를 나와서 다시 국문학을 전공하게 된 것도 일기의 힘이었고, 내 문학의 저변에 깔려있던 문장력이 일기에서 나왔다. 내가 시인으로 등단을 해서 시집을 내고 30대에 수필집을 낼 수 있었던 것도 일기의 힘이었으니 어찌 일기의 중요성을 필설로 이야기할 수 있으랴.  


이 비망록을 쓴 지도 벌써 35년 흘렀다. 십 대의 젊은 나는 머리가 어느새 희끗해져 염색을 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세월의 격세지감과 상전벽해를 절감한다. 하지만 그 일기장에는 그 시절 젊은 날의 사랑이 웅숭이고 있었고 맨 주먹을 불끈 쥐고 사회에 항거하는 철 모르는 소년도 있었다.       


내 젊은 날의 일기장에는 젊은 날의 사랑과 고뇌가 고스란히 그려져 있다. 왜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가. 바로 사랑에 경험이 없기 때문에 사랑의 무지를 쉽게 저지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만약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면 정작 나는 행복했을까. 


이제 그 기나긴 여정의 일기를 공개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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