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글씨 카드를 받고
쪽지를 확인한 것은 오늘 아침이었다. 컴퓨터를 켜자 팝업에 쪽지가 떴다. 한자 동호회 직원이었다. 책상 위 키보드 밑에 커피 쿠폰 한 장을 놓았다고 적혀 있었다. 키보드 밑에서 작은 카드를 꺼내자 '훈장님, 더운 여름 건강히 보내세요'의 손글씨의 온기가 남아있는 듯했다. 카드 안에는 5천 원짜리 커피 쿠폰이 동봉되어 있었다.
일순 내 가슴에는 맑은 강물이 흘렀다. 사실 한자 동호회 훈장을 맡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작년 겨울, 간부 워크숍의 쉬는 시간에 배움에 대한 가십거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중에 한자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한자만큼 실용적인 학문은 없다고 했다. 주변에서는 의뭉스러운 듯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해 줄 수 없냐고 물어왔다.
나는 영어공부의 경우 하루에 2시간씩 공부를 해도 잘 늘지도 않고 결국 실력유지 수준이지만 한자는 1800자를 완벽하게 쓰는데 두 달이면 족하다고 했다. 의아해하는 그들에게 20대에 군대 가기 전에 직접 한자 공부를 했다면서 두 달 만에 1800자를 완벽하게 떼고 제대 후에는 명심보감과 사서를 공부했다고 했다.
더불어 한자의 실용적인 사례를 몇 가지 들어주었다. 우리가 어려서 국민학교 다닐 때, 학생들이 떠들면 선생님은 '주먹, 주먹'하고는 했었다. 그때 주먹을 꼭 쥐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손아귀에 절로 힘이 들어가고는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한자를 공부하다 보니까 주먹이 아니라 주목(注目)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체육 시험문제에 '다음 중 고려할 대상이 아닌 것은?'이라는 시험문제가 나왔다. 학생 중의 하나가 '선생님, 고려가 무슨 뜻이에요' 하고 물었다. 만약 이 학생이 고려(考慮)의 한자를 알았다면 굳이 질문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고등학교 사회 시간에는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를 배웠다. 한자를 공부하기 전에는 구축(構築)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건축하는 것이 아니라 몰아서 쫓아낸다는 구축(驅逐)의 뜻이었다는 것을 알고 감응적으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또한, 대학 때는 방향족 탄화수소를 배웠다. 이 역시도 동서남북의 방향을 가리키는 방향족(方向族) 한자인지 알았다. 그런데 꽃다운 향내의 방향족(芳香族)이었다. 한자는 고궁이나 문화유적지, 또는 산사에 갔을 때 빛을 발하기에 충분했다. 내가 고문을 읽고 해석을 하면 주변에서는 마치 조선시대의 선비가 살아온 것처럼 신기해하기도 했다.
직장에서 한자동호회 훈장으로 추대되었을 때 나는 극구 사양햇다. 하지만 내 사양의 의지는 그들의 완곡한 설득에 의해 끝내 이루지 못했다. 한자 동호회 모집은 3일 만에 마감되었다. 정원 16명이 어느새 다 찬 것이다. 나는 직원들의 한자에 열의를 보고 크게 놀랐다.
동호회 직원들 중에는 천자문을 공부해 보고 싶다는 직원이 있었다. 하지만 천자문은 우리 일상생활과는 유리된 한자가 많이 있고 의외로 난수표 같은 한자가 부지기수라며 문교부에서 지정한 1,800 한자를 배우자고 제안했다. 교재도 30년 전에 내가 공부했던 학일출판사의 비법한자를 추천했다.
그 후 격주로 직장 회의실에서 직접 판서를 하며 한자 수업을 진행했다. 사실 나도 한자 공부한 지가 30년이 넘어가면서 또렷한 한자보다 가물가물한 한자가 더 많았다. 쓰는 것은 차치하고 읽지 못하는 한자도 많아 갈팡질팡하기도 했다. 세월에는 장사가 없었다. 하지만 다행힌 것은 몸으로 체득한 한자여서였을까. 몇 번 써보고 골똘히 생각해 보면 예전에 공부했던 기억들이 소록소록 떠올랐다.
사실 이십 대에 내가 한자공부를 덕질하게 된 것은 문학 때문이었다. 한자는 문학을 공고히 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학창 시절,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입대하기 전까지 꾸준히 일기를 썼다. 고등학교 때는 문예부장과 취재기자를 맡았었다. 학교 대표로 백일장에 나가기도 했고 고교 전국 편지 쓰기 대회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었다.
한자 하면 떠오른 단상이 있다. 대학 때 나는 데모와는 멀찍이 떨어져 살았다. 그런데 데모하던 날, 친구가 현수막을 들고 있는 것을 도와달라는 것을 거절할 수 없었다. 결국 친구의 부탁으로 중간에서 현수막을 들어준 것이 화근이었다.
옥상에서 찍은 데모 사진에는 현수막을 들고 서 있는 내 모습이 고스란히 찍혔고 그것은 영락없는 진원지의 주동자로 비쳤다. 며칠이 지나고 학교 정문 앞에 걸린 대자보에는 내 이름이 데모 블랙리스트 9위에 올라가 있었다.
문제는 제대하고 복학신청을 할 때였다. 학교 행정담당자는 복학신청을 거부한 채 학과장한테 가보라고 했다. 학과장실을 찾아갔더니 둥근 안경의 학과장은 군대 가기 전 데모 전력을 보여주면서 각서 쓸 것을 종용했다. 그것을 쓰지 않으면 복학할 수 없다고 냉랭한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았다
나는 복학을 하기 위해 어물쩍 각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도 부러 무언의 시위를 하고 싶었다. 그것이 바로 한자였다. 조사와 서술어만 빼고 전면 한자로 각서를 썼다. 지금도 학과장님이 한자로 쓰인 각서를 천천히 훑어내려 가던 모습이 명료하다.
한자를 공부하면서 흥미로웠던 일은 한자 간의 상호 유기적인 전위성이었다. 예컨대, 글서(書) 밑에다가 한일자(一子)를 깔면 낮주(晝)로 변한다. 또, 신기하게도 가로왈(曰)에 뚫을곤(丨)을 그으면 이번에는 그림화(畫)가 된다. 그리고 옆에 칼도(刂)를 세우면 그을획(劃)으로 변모한다. 이 얼마나 현학적인 변주인가
그렇게 한자 공부를 했고 그것은 내 몸 안의 부속물과 같았지만 사실 나에게는 한자 자격증이 없다. 그 당시 한자는 사설 자격증이어서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이미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공무원에 임용되었던 터라 한자 자격증에 대한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사실 자격증 취득보다 내가 꿈 꾸었던 일들은 너무나 많이 있었다.
오늘은 손글씨의 편지를 써서 5천 원짜리 쿠폰을 보낸 한자동호회 회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나는 김춘수의 '꽃'에 나오는 '누군가에게 잊히지 않는 의미의 존재론'도 좋지만 세인들에게 있어서 그저 고맙고 감사했던 사람으로 남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