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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돌 Jul 16. 2024

초복인 어제 소고기를 먹었어요

당근 모임을 참석하고...


어제는 초복이었어요.  당근 모임에서 주관한  '초복 살치살, 갈비살은 못 참지' 모임에 참석을 했어요. 사실 소고기가 먹고 싶었다기보다는 외로운 혼술이 싫었고 , 혹은 낯선 장소, 특수한 상황이 주는 고양감을 나름대로 즐기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모임 가기 전에 집에서 하모니카를 불었어요. 옥수수를 보면서 압력솥에 찔 생각을 하면 이성 중심이고, 하모니카를 생각하면 감성 중심에 가깝다고 해요. 내가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는 옥수수가 익어가기 때문이에요. 그런데도 옥수수를 보면 찐 옥수수보다 하모니카가 떠오르는 것은 감성 중심의 인간이라는 것을 대변하는 것 같아요.


모임장소에는 제일 먼저 도착했어요. 시간에 발맞추어 삼삼오 회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마침내 열 명이 다 모였어요. 불판에서 살치살과 갈비살은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었어요. 간단히 자기소개를 한 후 즐거운 식사에 들어갔어요. 전 시원한 생맥주에 낯섦을 타서 마셨어요


당근 모임은 작년 12월 1일에 가입했어요. 낯선 서울을 치자꽃처럼 싱싱하게 나기 위해서였고 당구를 치기 위해서였어요. 몇년 전부터 한센인 어르신들과 환우분들에게 틈틈히 재능기부 하다보니까  5년 만에 어느새 50 수지가 250 수지가 되어 있는 거 있지요. 내친김에 300 다마에 도전해 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어요. 


그렇게 몇 번 제 다마 수지를 확인하기 위해 당근 모임에 참석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얼마 전부터는 매주 하모니카 재능기부를 하게 되었어요. 사실 자원봉사를 좋아했어요. 요양원에서 어르신 말벗을 해드리거나 식사를 도와주는 일을 자발적으로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실천했었고, 한 겨울 난방을 제대로 못 해주는 사설 요양원 재정이 안타까워 얼마 안 되는 박봉을 쪼개 후원을 한 적도 있고요.


지금은 직장에서 한자수업을 재능기부하고 있어요. 직원들은 훈장님이라고 불러요. 이렇게 재능기부할 수 있었던 것은 젊은 시절의 확고한 의지가 쏘아 올린 나름대로의 소중한 배움의 결정체가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봉사를 목적으로 여러 가지 자격증을 땄어요. 그중 대표적인 것이 하모니카와 시낭송, 시창작, 글쓰기이에요. 사실 한자 자격증은 취득하지 못했지만 20대에 국문학을 하면서 1800자를 안 보고 썼고 사서를 공부한 경험이 영향을 주었던 것 같아요.  


올해는  또 다른 재능기부를 위해 파크골프 스포츠지도사 시험에 도전했는데 실기 시험에서 보기 좋게 낙방했어요. 하지만 후회하지 않아요. 나름대로 애면글면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에요. 체육학과 졸업하는 학생들이 치르는 그 난이도 있는 시험에서, 필기는 73점으로 합격을 했고, 실기도 개인 연가를 내고 자비를 들여 강원도 화천으로 전지훈련을 떠나 약 이십일을 홀로 숙박하면서 버텼어요.  


수은주가 30도를 웃도는 한낮에 염천이 흐르는데 그 태양 아래에서 하루에 여덟 시간씩 연습을 했어요. 훈련 중에 뒤땅을 잘못 쳐서 어깨를 들지 못해 정형외과도 다녔고, 발가락에는 티눈과 심지어 물집이 잡혀 절룩 걸이며 라운딩 했던 기억이 그 수고로운 여정의 방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심지어 강원도 화천에서 식당을 정해 매일 저녁을 먹는데 식당 아줌마가 새로운 곁가지 반찬을 연신 올려 주는 거예요. 저도 고마워서 가끔 거스름 지전을 받는 것을 사양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는 초췌한 제 몰골이 너무나 흉흉해서 필시 화천에 있는 공사판에 막노동 뛰러 왔다고 생각했대요. 


어제 분위기는 고무되었어요. 노래방에도 갔어요. 저는 '서해에서'와 '꽃마차' 그리고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불렀어요. 노래는 젬병이어서 분위기 망치기에 딱이에요. 집에 오니까 12시 30분이었고 바로 쓰러져 까무룩 잠이 들었어요. 


돌아와 어제의 일을 반추해 봐요. 맛있는 소고기를 먹을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저를 너무 좋게 봐주는 회원들이 있음에 감사해요. 오늘 헛되게 보낸 하루는 어제 죽어간 이가 그토록 열망하던 내일이라는 말이 있어요. 다음 생은 생각하지 않도록 해요. 이번 생을 먼저 잘 살아 보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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