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공무원을 아느냐
공무원 M 씨는 부부공무원이다. 둘은 같은 대학 동아리에서 만나 공부해서 나란히 지방직과 국가직 공무원에 합격했다. 하지만 M 씨의 근무처는 대전이고 아내의 근무처는 서울이다. 결국 M 씨는 주말부부를 끝내기 위해 인사교류를 신청하기로 했다. M 씨는 어떠한 방법으로 어떠한 절차에 의해 인사교류를 신청해야 될까.
먼저 인사 교류의 유형을 찾아보자. 첫 번째가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하여 인사교류를 신청하는 경우다. 인사교류의 합당성을 가장 많이 주장할 수 있고 부서장이나 인사담당을 설득할 수 있는 명분도 확실하다. 그리고 인사교류를 신청하는 가장 많이 하는 유형이기도 하다.
두 번째가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아 신청하는 경우다. 공무원에 임용되고 보니까 본인이 생각했던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이 아니어서 다시 적성을 찾아 인사교류를 한다. 하지만 업무는 기관별로 다르고 부서별로 다르고 개인 업무분장 별로 다르다. 인사교류를 한다고 하더라도 적성에 맞는 업무를 찾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또 인사혁신처에서는 인사교류에 대한 전보제한을 두고 있다. 섣불리 인사교류를 신청했다가는 전보제한으로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세 번째가 헬 업무로 인한 인사교류다. 헬 업무는 악성민원일 수도 있고 과다한 업무에 기인할 수도 있다. 공직 사회에서는 분명 업무량이 많은 공무원이 존재하고 봉급이 아까울 정도로 업무량이 적은 공무원도 존재한다. 또, 개인의 능력과 경험에 따라 업무처리 능력은 확연하게 달라질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업무량 컨설팅을 해도 오히려 업무량이 없는 부서가 업무량이 더 많게 나오는 경우도 있다. 업무량이 없는 부서는 그럴듯한 논리로 업무량을 부풀리고 있고 컨설팅 업체는 전문성이 없어서 제대로 검증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도 공무원 초임 시절 장비 재물조사를 문서를 받았는데 방법과 절차를 몰라 한 달을 쩔쩔매야 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계장님은 그것을 30분 만에 해결했다. 그분은 그 많은 시험장비와 계측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또,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에 대해 다년간 경험 축적을 통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는 그 계장님이 눈물겹도록 고마웠고 공무원의 또 다른 세계를 보는 것 같았다.
실례로 몇 년 전 카이스트 공익요원 하나가 담당 공무원이 6개월 걸리는 업무량을 30분 만에 처리해서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공익요원은 노동청 안동지청에 근무하면서 업무지시로 1년 치 우편물을 일일이 주민등록 조회해서 캡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 공익요원은 코딩을 활용해서 업무 자동화를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공무원이 하루에 8시간씩 6개월치 업무를 단 30분 만에 끝낸 것이다. 이것은 공직사회에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마지막은 직장 상관의 갑질이다. 얼마 전 농림수산부 팀장의 갑질을 견디지 못한 팀원 중 2명이 직장을 그만두었다. 사실 지능적인 갑질을 부리는 관리자 앞에서 부하직원들은 고양이 앞에 쥐인 셈이다. 경험이 없거나 계급이 낮은 공무원은 관리자가 우월적 권위를 이용해서 지능적으로 괴롭힐 때면 정작 탈영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다면 인사교류하는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자. 가장 많이 하는 방법이 나라일터를 통해 인사교류하는 방법이다. 나라일터는 인사혁신처가 운영하는 사이트로서 국가직과 지방직 공무원을 총망라하여 상호 교인사교류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다. 통상 1대 1 인사교류가 가능성이 높고 3자 교류는 가능성이 높지 않다.
그다음은 일방전입으로 기관을 옮기는 방식이다. 나라일터 사이트에 들어가면 일방전입을 모집하는 기관을 다수 발견할 수 있다. 지원 조건을 분석 후 자기소개서, 인사기록카드 등 관련 자료를 제출하고 최종 면접을 통해 합격여부가 결정된다. 하지만 일방전입 합격을 했다고 하더라도 근무하는 기관에서 동의하지 않으면 인사교류는 물 건너 간다는 것을 명심하자.
내가 알고 있던 직원은 일방전입에 성공했다. 6급 직원이었는데 일방전입으로 원자력안전위원회로 기관을 옮겼다. 그 직원은 서기관 단 지가 벌써 몇 년이 지났다. 아마 그 직원이 일방전입을 가지 않았다면 승진 자리가 없어서 아직도 6급을 달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공무원은 관운이라고 말을 한다.
내가 인사교류를 신청한 것은 2012년 사무관 4년 차 때였다. 인사교류를 신청하게 된 배경은 가족이 있는 대전으로 가겠다는 이유를 댔지만 그것은 구구한 설명 따위를 늘어놓기 싫어서 에둘러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사실은 무한 책임을 강요하는 원가회계에 대한 회의감이었다. 억 단위도 아니고 조 단위의 원가를 개인 혼자 산정하라고 했을 때 더 이상 그 조직에 대한 미련이 없었다.
원가 조직이 개편되면서 내게 주어진 업무량은 살인적이었다. 4명이 근무하던 사무실에 나 혼자 덩그마니 남았다. 그런데 업무량은 두배로 늘어났다. 오죽했으면 업무가 과다하다는 첩보가 수사기관까지 들어갔겠는가. 수사기관에서 내 사무실을 급습했다. 서기관이었던 수사관은 과다한 업무량으로 주말도 없이 일만 한다는 첩보를 들었다면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나왔다고 했다.
수사관이 왔을 때 전화기 두 대에서는 호떡집에서 불이 나 있었다. 나는 금년도에 정산할 금액이 3조가 넘는다며 원가 서류를 내밀고 원가산정 절차를 설명했더니 수사관은 혀를 내 둘렀다. 수사관은 책임지고 우리 기관에 수사결과를 제출해 인력 보강을 해주겠다고 약속을 하면서 나갔다. 하지만 어떠한 연유였는지 꿩 궈먹은 소식이었다. 그리고 그해 나는 원가를 책임지는 고위공무원에게 찾아가 3명의 인력 보강을 요구했으나 보기 좋게 거절당하고 경험이 없는 원가 직원 한 명을 지원받는데 그쳤다.
사실 내가 근무했던 기관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몇 개월 전, 원가 직원이 뇌물 1억 6천을 받고 지능범죄수사대에 체포된 사건이 9시 뉴스에 메인으로 보도되었다. 기관에서는 업체와의 음성적 결탁을 차단하기 위해 원가 부서 대부분의 직원을 인사이동시켰다. 전문성보다는 투명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런데 나는 동일한 원가 부서임에도 팀의 명칭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9년째 원가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원가는 전문성이 강한 업무분야다. 회계사가 원가 업무를 맡는다고 하더라도 2년 정도는 업무를 수행해야 업체 의존적인 원가에서 벗어나 독자적 원가를 주도적으로 산정할 수 있다. 기관 입장에서 보면 원가 경험이 풍부한 나야말로 일당백을 처리할 수 있는 적임자였고 베테랑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혼자서 몇 조가 넘는 원가를 산정한다면 그 후에 폭풍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평생 감사, 수사, 조사에 시달릴 생각을 하니 아찔할 정도로 끔찍했다. 억 대도 아니고 조 단위의 원가는 기초자료까지 포함하면 트럭 한 대의 분량이다. 이 많은 회계자료를 어떻게 다 분석하겠는가. 만일에 하나 실수라도 한다면 그 무한책임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인사교류는 엉킨 실타래처럼 쉽게 풀리지 않았다. 먼저 운영지원과에서 제동을 걸었다. 우리 기관에 오겠다는 직원이 나이가 오십이 넘었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 인사담당은 3개 부서만 돌면 10년이고 정년인데 얼마나 조직에 도움이 되겠냐며 나이 많은 직원을 결코 받을 수없다며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단순한 나이로 공무원의 업무 역량을 평가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오히려 그간 그 직원이 타기관에서 쌓아 올린 경력이 우리 기관 조직 발전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인사담당은 그 직원을 받지 않겠다는 요지부동을 끝까지 입가에 바르고 있었다. 나는 일단 인사교류를 신청할 것이고 내가 면접에서 떨어지거나 그 직원이 우리 기관 면접에서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기 때문에 그때는 모든 것을 수긍하겠다고 했다. 운영지원과에서는 인사교류 신청하는 것까지 말릴 수 없으니 알아서 하라며 자못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인사혁신처 나라일터를 통해 인사교류를 신청했다. 소방방재청 직원이 면접을 보기 위해 우리 기관에 왔다. 면접 보러 들어가기 전까지 인사담당은 인사교류하면 지방에 가야 하고 업무 강도가 세서 분명히 후회할 것이니 인사교류를 취소하라며 끝까지 그 직원을 회유했다고 한다.
면접이 끝나갈 무렵 나도 서서히 긴장이 되었다. 그 직원이 면접에서 떨어지면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또 인사담당이 인사교류에 부정적인 복안을 갖고 있었으므로 면접에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게 행운이 찾아왔다. 면접위원 세 분 중에 한 분이 나와 함께 감사관실에서 근무했던 모 서기관이셨다. 면접이 끝나자 마다 그분한테 전화가 왔다.
- 김 사무관 다른 데로 간다며?
- 아니 어떻게 아셨습니까?
- 내가 지금 면접하고 왔거든, 인사교류 대상자를 보니까 김 사무관이더라고. 면접 합격했어. 축하해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8부 능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복병은 또 다른 데 있었다. 운영지원과 인사담당한테 걸려온 전화는 충분히 을씨년스러웠다. '사무관님, 팀장님하고 단장님 승인받고 인사교류 추진한 거 아니었습니까. 지금 팀장님이 운영지원과에 와서 보내주지 않겠다고, 보내준다고 한 적도 없다면서 난리가 났습니다.'
- 팀장님과 단장님께 인사교류한다고 분명히 말씀을 드렸고요. 팀장님은 본인이 정 인사교류를 원하면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분명히 하셨어요. 나도 지금 당혹스럽습니다.
인사담당은 팀장님 동의했다는 말을 믿고 면접을 추진했는데 우스운 꼴이 되었다면서 팀의 입장을 분명히 해달라면서 원성 어린 난색을 표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이번에는 면접위원이었던 서기관한테 전화가 왔다. 팀장이 사무실까지 찾아와서 왜 면접을 통과시켰냐면서 불평불만을 잔뜩 터뜨리고 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직원들한테 면접위원이었던 사실을 비밀로 해 줄 것을 당부했다.
팀장님과 통화를 했다. 30분간 확인한 것은 결국 이완된 거리였다. 연말에 가면 안 되겠느냐? 1조 7천억 사업 원가 정산은 누가 하느냐? 개인으로 봐서는 보내줘야겠지만 조직으로 봐서는 도저히 보내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조직에 대한 마음이 떠났다며, 마음이 떠난 사람은 보내줘야 한다고 했다. 팀장이 지금 협박하는 거냐는 말까지 나왔을 때에는 험악스러운 분위기로 변질되어 가고 있었다. 문득 경남 소도시에서의 업무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주말부부이면서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나와서 일을 한 적도 있고 심지어 여름휴가도 반납했고, 추석 연휴에도 혼자 국정감사 준비를 했던 기억이 나를 훑고 지나갔다. 대충 일을 할 것을 중뿔나게 일한 것이 결국 내 발목을 잡는구나 생각이 미쳤을 때는 자못 비감에 젖어야만 했다.
저녁 7시쯤 다시 팀장한테 전화가 왔다. 내년도에 대전으로 보내 줄 테니 인사교류를 취소해달라는 것이다. 나는 2008년 대전 근무지에서 사무관 승진을 하고, 가족과 함께 살겠다며 집이 있는 대전에서 팀원으로 근무를 하겠다고 했을 때 그때 정부 조직 직제에 의해 사무관을 팀원으로 둘 수 없다며 경남으로 보내지 않았냐고 했다.
지금 대전에 사무관 파트장이 있는데 그러면 그 직원은 쫓아낼 거냐고 되물었다. 또, 원가 근무 9년째로서, 설령 원가 부서에 근무를 하고 싶어도 내년도에는 지방이 아닌 결국 서울에서 근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일이 잡히지 않았다. 9명의 감사관은 내 사무실 옆에 감사장을 차려 놓고 감사를 하고 있었다. 요구한 자료가 109건이었다. 감사관은 9명인데 수감자는 나 하나였다. 요구하는 자료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감사반장은 안면이 있는 분이었다. 나는 그분한테 찾아가서 왜 원가만 감사하냐며 사업도 감사를 하라고 넌지시 떠봤다. 그 감사반장은 질펀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사업 감사는 국고 환수가 안 되잖아.
어느덧 아침이 밝았다. 업체를 모아놓고 회의를 진행하는데 팀장한테 전화가 왔다. 일단은 인사교류에 동의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다만 조건이 붙었다. 첫째는 행정안전부와 협의하여 규정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가장 늦게 인사교류를 추진하고, 둘째는 어느 누가 그 업무를 담당하더라도 바로 업무에 투입될 수 있도록 장편 소설 한 권 분량의 직무편람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인사교류는 늦어져봤자 두 달이고, 또 직무편람이야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만면에 웃음이 감돌자 업체 직원들은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빤히 쳐다봤다. 나는 업체한테 가족과 더불어 살기 위해 대전으로 전보 갈 것이라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
업체들이 발칵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담당 공무원이 바뀌면 업체는 또 한차례 커다란 태풍에 휩쓸려야 한다. 경험이 있는 원가담당이 오더라도 기업이나 사업에 대해 이해를 시켜야 하고 경험이 없는 원가담당이 오면 총체적 난관에 봉착한다. 원가를 아무리 설명해도 기본적인 원가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가 어렵다. 또, 원가 결재도 매끄럽게 받을 수 없고 예정 가격의 예가율도 제대로 받기 어렵다.
그다음 날 돌연 소방방재청에서도 전화가 왔다. 내게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였다. 그 기관은 과거부터 면접을 보지 않았다. 무언가 불길한 기운이 엄습해 왔다. 그것은 면접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면접날 정장을 차려입고 광화문 정부청사에 있는 기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면접관은 인사계장을 포함한 3명이었다. 면접은 처음부터 나를 당혹하게 만들었다. 내가 가족과 더불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소방방재청을 지원하게 되었다고 하자, 정권이 바뀌면 세종시로 내려가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때도 인사교류를 하겠냐고 저돌적으로 물었다.
그 밖의 면접 질문은 더 도발적이었다. 서울에 있는 소방방재청 본청에 인사발령을 내면 그때는 어떡하겠냐고 물었다. 나는 '대학원에 가서 학문의 깊이를 넓혀보고 싶습니다' 했고 면접관은 '소방방재청이 대학원이나 다닐 만큼 그렇게 한가한 부서라고 생각하십니까' 앙칼지게 되물었다.
면접은 합격시키기 위한 면접이 있고 떨어뜨리기 위한 면접이 있다. 지금의 면접관은 나를 떨어뜨리기 위한 면접으로 우회하고 있었다. 질문은 계속되었다. 소방방재청은 조기 출근과 늦은 야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래도 오시겠습니까. 소방방재청은 비상근무가 많이 있습니다. 새벽이면 휴일에도 근무를 해야 됩니다. 그래도 오시겠습니까. 또 제복을 입는 소방직 공무원과 함께 근무해야 합니다. 그런데 적응할 수 있겠습니까. 문학을 한다는 것이 공직에 어떤 도움이 될 것 같습니까.
면접은 신경전으로 변질되어 갔다. 고분고분해야 할 내 목소리도 커지기 시작했다. 주말부부는 계속해왔습니다. 야근하는데 이골이 났습니다. 현역 소령을 밑에 두고 일을 했습니다. 소방방재청이라고 승진이 안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하면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면접이 끝나고 나오는데 허탈감이 밀려들었다. 소방방재청의 인사교류 대상자와 통화를 하고서야 왜 그런 면접을 보았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다. 내가 나이가 많지 않고 사무관을 빨리 달았기 때문에 소방방재청으로 전입해 갈 경우 직원들이 6급으로 정년퇴직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직원들이 인사계로 몰려가서 젊은 사람 받지 말라고 항의를 하고 갔다고 했다.
공직사회에서 승진은 누구나 꿈꾸는 로망 아닌가. 그런데 나로 인하여 사무관을 달지 못하고 6급 주사로 정년퇴직을 해야 하는 직원들이 많으니 누가 나를 반기겠는가. 그저 면접 결과 처분만 기다리는 처량한 신세였다. 면접에 떨어지고 다시 근무할 생각을 하니 낯이 뜨거워졌다.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어떻게 직원들 얼굴을 본단 말인가.
그런데 뜻하지 않게 일주일이 지난 후 운영지원과에서 연락이 왔다. 인사교류가 승인 났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의외였다. 나는 그해 7월 9일부로 소방방재청 발령을 받았다. 소방방재청 업무는 쉽지 않았다. 그중에 가장 힘든 것이 민원이었다. 하지만 나는 악성 민원과 지능 민원들을 처리하면서 나를 더 연금시킬 수 있었고 그때마다 나는 더 거듭나고 있었다.
그리고 8년이 지난 2019년, 다시 인사교류를 신청했다. 인사교류를 신청하게 된 배경은 첫 번째가 소방청에 승진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소방청은 다수의 소방직에 소수의 일반직이 근무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국민안전처에서 소방청으로 독립되면서 내가 승진할 서기관 승진 티오가 없어졌다. 사무관으로 20년 연금을 채우고 퇴직해야 할 판이다.
승진 자리가 없다는 것보다도 내가 데리고 있었던 직원들이 과장 보직을 받고 있고, 나와 같이 근무했던 직원들이 고위직으로 승진을 하고 있었다. 소방 공무원은 소방령부터 승진이 빨랐고, 나는 승진한 직원들을 볼 때마다 나 자신이 자꾸 짜부라져 보이고 작아져 갔다.
두 번째는 소방 공무원은 제복을 입는 공무원으로서 국민의 생명을 다루다 보니까 일반직보다 권위적이고 계급적이었다. 일제시대 군대 유물의 획일화된 문화가 아직도 잔재하고 있었다. 또, 눈에 보이는 상관의 갑질이 싫었고 내가 거기에서 더 이상 존재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인사교류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면접도 형식적으로 차 한잔 마시면서 시작되었다. 인사교류하는 이 곳도 본부의 직속기관이어서 승진 자리가 없었다. 이제 나는 승진을 내려놓기로 했다. 어느 기관에서 사무관 12년 차인 퇴물을 받아주겠는가. 나는 그저 전남의 작은 바닷가에서 살아가면서 마지막 업무적 열정을 불태우며 틈틈이 글을 써서 나를 조형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인사교류 사례를 통해 알아봤다. 그러면 인사교류에 중에 봉착할 수 있는 난관이 무엇이고 그에 따른 해결책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첫 번째가 교류대상자를 먼저 찾아야 한다. 교류대상자도 찾지 않고 운영지원과에 가서 인사교류하겠다고 의사 표현하는 것은 절차상 하자다. 인사교류대상자를 찾는 방법은 인사혁신처 나라일터나 공무원까페를 통해 찾을 수 있다.
상대가 인사교류를 희망한다고 해서 인사교류가 되는 것이 아니다. 최소 조건으로 직렬, 직급, 나이, 성별, 경력을 맞춰놓아야 한다. 나이도 몇 살 정도 차이 나는 것은 괜찮지만 다섯 살 넘어가는 것은 고려해야 한다. 직렬을 맞추되 직류까지 맞출 필요는 없다. 그리고 내가 인사교류 갈려고 하는 기관의 인사교류 실태에 대해서도 파악을 해 볼 필요가 있다.
두 번째가 인사담당을 설득해야 한다. 인사 담당은 직렬과 직급 나이, 성별을 맞춰가도 어떤 트집을 잡든지 대부분 반대의사를 표명할 것이다. 인시교류 신청 시 인사담당의 업무가 추가로 발생하기도 하고 인사담당도 사람인지라 변화를 싫어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인사통들은 인사교류를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인사담당과 저녁 한 끼 하면서 차분히 고충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도 인사담당이 자꾸 딴지를 걸어 인사교류가 성사되지 않을 경우 일방전입을 고려해보자. 타기관 일방전입에 합격을 했다면 인사담당도 만류하기 힘들다. 기껏해야 인사교류 대상자를 직접 찾아서 심어놓고 가라는 정도로 이야기할 것이다.
세 번째가 면접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 면접 질문의 유형은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인사교류를 신청한 사유, 가고자 하는 기관의 업무적 특성, 근무인원, 기타 기관의 중요 데이터 수치 같은 것들은 암기하는 것이 좋다.
인사교류는 경우의 수가 참 다양하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인사교류의 실태를 파악하고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면 결코 못할 것은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