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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돌 Apr 03. 2021

검찰 수사, 어떻게 받아야 하나요?

너희가 공무원을 아느냐



공무원 10년 차인 K 씨, 코로나 진단키트 선정 관련해서 중앙지검 출석 명령을 받았다. 업체한테 금품을 받은 적도 없고 사업 선정도 공정하게 했지만 막상 중앙지검에 출석하려고 하니까 두렵기만 하다. 수사를 받기 전에 준비할 것과 수사받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자. 



공무원과 감사는 불가분의 관계다. 공무원은 누구나 감사원의 감사, 중앙지검의 수사, 특별조사단의 조사를 받을 수 있다. 나 역시도 많은 감사와 몇 번의 수사를 받았었다. 


아이러니하게 공직에 있으면서 느낀 점은 일을 많이 하는 직원은 감사와 수사도 많이 받는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는 직원은 감사와 수사를 거의 받지 않는다. 감사나 수사를 받다보면 특별히 잘 못한 것이 없어도 깊은 수심에 옴짝달짝 못하도록 피감자를 가두어 놓고는 한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내가 중앙지검 수사받았던 사례를 살펴보고 수사를 어떻게 하면 잘 받을 수 있는지 그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자.  


몇 년 전, 내가 수사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은 수은주가 30도를 웃도는 어느 여름날이었다. 핸드폰에 모르는 낯선 전화번호가 떴다. 전화를 받자 상대의 목소리가 고막을 타고 내게 전이되어 왔다. 


- K 씨 맞으신가요? 저는 중앙지검 수사관 누구입니다.  Y 기업 분식회계 관련하여 수사할 것이 있는데 내일 중앙지검에 출석이 가능합니까?


출석이 가능하다며 전화를 끊었지만 어쩔 수 없는 피감자의 억눌린 기분이 공기의 밀도를 무겁게 했다. 문득 업체 선정할 때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당시 나는 고립무원의 지방의 소도시에서 혼자 내버려진 듯 일에 미쳐 살았다. 


그런데 나에게 찾아드는 것은 감사와 수사뿐이었다. 벌써 그 업무를 맡은 지 6년이 지났고 기관도 옮겼건만 작년에는 감사원 감사로 시달리게 하더니 이번에는 종잡을 수 없는 수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현듯 작년에 감사원 감사를 받으면서 문답서 백 장마다 엄지를 꾹꾹 눌러서 붉은 지장을 찍었던 의식이 표면으로 떠올라 나를 더 그늘지게 했다.


'이 놈들, 나를 털어봐라. 비듬밖에 더 떨어지나'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지만 마음의 평정은 쉽사리 찾아들지 않았다. 그런 와중 속에 비리부패방지가이드를 만들었던 과거가 기억의 골짜기로 달려갔다. 오래 전, 감사관실에 근무하면서 비리부패방지 가이드 보고서를 만든 적이 있었다. 그 보고서는 나중에 책으로 발간되어 국무조정실, 부패방지위원회까지 활용되었다고 한다.


나는 그 책을 만든 후 내 내 스스에게 엄정한 청렴의 잣대를 들이댔다. 적어도 업체로부터 금품과 향응에 대해서 멀찍이 비켜서 있었다. 그들이 내 계좌를 추적하고 핸드폰 통화내역을 분석한다고 해도 나는 정작 당당할 수 있었던 연역적인 연유였다. 


수사를 받으면서 준비할 것이 무엇일까. 먼저 과거 자료를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무엇인가 수사의 본질과 실제적 방향이 보인다면 그와 관련하여 법령, 판례, 문헌을 찾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출석하기 전에 몇 가지 준비할 것이 있다. 


먼저 옷차림은 깔끔한 정장이 좋다. 장소는 미리미리 살펴봐서 늦지 않도록 한다. 한 30분 전에는 미리 도착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약속 장소가 헷갈릴 수도 있고 또 약속시간에 늦을 수 있는 복병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사와 관련된 자료는 가져갈 필요가 없다. 수사관한테 굳이 먼저 자료를 제공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리고 내 경험으로 봐서 우황청심환을 먹고 수사를 받는 것이 좋다. 우황청심환을 먹어서 정서적 안정을 가져올 수 있고 그것을 먹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답변은 군더더기 없이 간단명료하게 진술하자. 그리고 검사나 수사관의 질문에만 답을 하자. 검사나 수사관이 질문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 이야기한 정보들이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수감자를 괴롭히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내가 중앙지검 사무실에 도착한 것은 약속시간보다 30분 빠른 시간이었다. 본관에 갔는데 별관으로 가라고 했고 별관에 갔지만 출입증이 없어서 들어갈 수 없었다. 중앙지검 자체가 보안구역이었다. 수사관이 직접 내려와서 출입문에 신분증을 들이대자 문이 열렸다. 


수사 사무실에 들어갔다. 정면에 보이는 창가에 검사가 앉아 있었고 왼쪽과 오른쪽에 수사관 3명씩 앉아 있었다. 일반 사무실과 조금 다른 점은 수사실 중앙이 휑뎅그렁하게 비어 있었는데 그 자리에 협의자 하나가 덩그마니 놓여 있었다. 


수사관은 나를 검사한테 안내했다. 검사는 초췌해 보였지만 전체적인 위용이 도도했다. 지금 어느 기관에서 어떤 일을 하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모 기관에서 시설 총괄을 하고 있고 청렴 및 청탁금지법을 강의하고 있다고 했다. 


검사는 회계 부서의 조직체계와 그 당시의 회계 산정 방법에 대해서 물었다. 나는 비목별로 재료비 산정 절차와 노무비 산정방법, 경비 산정 방법에 대해 생각나는 윤곽을 갸름하게 설명했다. 점심시간이 잇대 오자 검사는 점심을 먹고 1시까지 다시 오라고 했다.  


점심을 먹고 다시 수사를 받았다. 그런데 수사를 하는 검사의 질문은 의외였다. 검사는 회계 비리를 수사하느라 한 달째 두 시간 이상 잠을 잔 적이 없다는, 수사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꺼내더니 돌연 비장한 어조로 내게 말했다.  


- 사무관님, 저희가 사무관님을 보호해드리겠습니다. 사무관님은 Y 기업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을 겁니다. 저희를 도와주세요.


- 검사님, 저는 보호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매일 같이 일기를 씁니다. Y 기업에 근무하면서 매일 같이 일기를 썼습니다. 


검사의 직선적인 물음은 덤덤하게 이어졌다.   


- 사무관님, 사무관님께 검사의 지휘를 드리겠습니다. Y 기업의 회계 비리를 알려주세요. 


- 검사님, 제가 모 기관 감사관실에 근무를 했었습니다. 기업 비리가 있었다면 제가 감사관실에 근무했었을 때 잡았을 것입니다. 


수사를 받고 나온 다음 날이었다. 다시 중앙지검 수사관한테 연락이 왔다. Y 기업에 근무할 당시에 썼던 일기를 들고 또다시 수사받으러 오라는 것이었다. 일기장을 정리해 보았다. 세세하게도 많이도 썼다. 출력을 하자 10포인트 글자 크기로 300페이지가 넘어갔다. 그 속에는 수줍은 부끄러움이 웅숭깊게 고여 있었다. 


다음날 수사기관에 가서 검사한테 일기장을 보여줬다. 검사는 일기장을 세세하게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수사관은 나를 부르더니 A4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수사관은 내게 첫 번째 가로 안에 '예'를 쓰고, 두 번째 가로 안에는 '아니오', 세 번째 가로 안에는 '아니오'를 쓰라고 했다. 


내용을 읽어 보니까 첫 번째가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습니까? 두 번째가 묵비권을 행사하시겠습니까? 세 번째가 변호사를 선임하시겠습니까?'였다. 두 번째 수사를 받으면서 어느새 나는 참고인 신분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실 참고인 신분이든 피의자 신분이든 수사를 받을 때 묵비권을 행사하거나 변호사를 선임할 필요도 없다. 그것 자체가  향후 재판을 받을 때 양형 판단의 가중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점심은 중앙지검 구내식당에서 먹었다. 식사를 하면서도 수사관은 자꾸 수사 관련 질문을 던졌다. 점심을 먹고 검사한테 일기를 다 봤냐고 물었다. 검사는 '그냥 수필이네요.'하고 답을 했다. 나는 일기장을 돌려달라고 했고 검사는 '이거 저 줄려고 가져온 것 아니었어요?'하고 되물었다. 나는 부끄러움이 동반되는 일기장이라며 지금 다시 책을 발간할 계획을 갖고 있는데 그때 책이 나오면 검사님께 한 권 보내드리겠다고 했다. 


회의실에서 검사와 둘이 많은 얘기를 나눴다. 나는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Y 기업의 분식회계는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내가 Y 기업에서 6년 동안 회계업무를 담당했지만 분식회계는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기업은 공기업 수준이기 때문에 분식회계를 해도 얻을 것이 없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지 않아 언론에는 Y 기업이 분식회계를 조작한 것으로 대서특필했다. Y기업 주식도 6만 원짜리가 2만 7천 원까지 곤두박질쳤다. 후에 Y 기업은 분식회계에 대한 이의 제기를 했고 최종 회계 심사에서 결국 Y 기업이 분식회계가 없었던 것으로 판정이 났다. 주가의 위치도 제자리를 되찾았다. 


그 후에도 수사관한테 몇 번의 전화가 왔었다. 회계 산정의 근거에 대한 전화였다. 나는 아는 것은 설명을 해주고 모르는 것은  5년이나 지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했다. 


사실 수사를 받다 보면 이유없이 송연해지고는 한다. 하지만 진실성과 성실성을 담보해서 당당하게 수사를 받아야 한다. 뭇거리며 대답하는 것은 좋지 않다. 아는 것은 바로 즉답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그리고 공무원은 기록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다. 그런 기록물들이 나중에 감사와 수사, 조사를 받을 때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고급한 증거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록들이 본인의 존재 자체를 조금씩 연금시켜 갈 것이다.  


검사한테 제출한 내 일기장에는 명절 선물로 받은 한우 갈비세트의 이야기가 있다. 그날 업체에서 택배로 받은 갈비세트를 누구한테, 몇 시에, 어디에서 어떻게 돌려주었는지 상세하게 적혀 있다. 그 검사는 한우 갈비세트의 글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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