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카 도전기
10년 전의 일이다. 우연히 EBS에서 방송한 장수 프로그램을 보는데 하모니카 연주하는 할머니가 방송에 출연했다. '장미언니'라는 닉네임을 가진 86세의 건강한 할머니였다. 동우회 회원들과 길거리에서 호떡을 사서 먹고, 또 집에 와서 하모니카를 연습하는 할머니의 잔잔한 일상은 경이로웠다.
할머니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피부가 고왔다. 특히 공원 언덕길을 휘적휘적 걸어내려 가는데 곧추세워진 허리는 아가씨의 뒤태를 방불케 했다. 그 할머니의 모습을 보는 순간, 하모니카를 배워야 한다는 당위성을 얻고 있었다.
*EBS 장수프로그램에 나온 장미언니
할머니의 건강 비결은 바로 하모니카였다. 20년 이상 하모니카를 즐겨 불었더니 자연스레 건강이 뒤따라왔다고 증언했다. 그 연세에 하모니카를 어찌나 잘 부는지 듣는 순간 새로운 감동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나는 그 방송을 보면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체감했다.
그날 방송에 나온 병원의 의사는 관악기 중에 날숨과 들숨에 의해 연주할 수 있는 유일한 악기가 하모니카라고 했다. 하모니카는 폐활량을 키우기 때문에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의학적 설명도 덧붙였다. 언젠가 병원에서 큰 수술을 하면 밥을 주는 조건이 두 가지의 경우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첫 번째가 방귀가 나올 때이고 두 번째가 폐활량 측정기를 불어서 피리같은 소리가 날 때라고 했다. 하모니카는 폐활량을 키우는데 적격이었다. 나는 노후를 하모니카와 함께 보내기로 마음을 굳게 마음을 다잡았따.
그날 바로 사단법인 대한하모니카협회와 코리아 하모니카필드 카페에 가입했다. 카페 게시판 내용 중에는 하모니카 연주는 우울증과 치매, 심장병을 추방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것은 결코 근거 없는 낭설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현학적이지도 않았다.
고교시절부터 사실 나는 하모니카를 즐겨 불렀었다. 원두막에 앉아, 혹은 둥구나무 위에 올라가서 하모니카를 불 때면 내게 근접해 있는 외로움이 하모니카 소리에 촘촘히 배합되어 좋았다. 그럴 때면 얽히고 설킨 감정들이 쉬이 중화되고는 했었다.
아직도 대학축제의 공연은 내 의식에 뜨락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그 대학축제에서 나는 무대에 섰었다. 하모니카와 팬플루트 연주였다. 그날 공연장 입구는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공연장 안은 북새통을 이루었다.
시낭송이 끝나고 2부 시작하기 전에 나는 연주를 하기 위해 무대에 올라갔다. 긴장은 되지 않았다. 먼저 '애니로우리'와 '솔밭사이로 강물은 흐르고'를 하모니카로 연주했다. 사실 돌이켜 보면 무 캐다 들킨 소년처럼 부끄러워지고 만다. 그 당시 나는 하모니카의 주법의 꽃인 분산화음과 베이스조차 모르고 있었다
팬플루트도 마찬가지였다. 혼자 독학으로배운 악기였기에 깊이가 없었다. 팬플루트로는 '고독한 양치기'를 연주했다. 하지만 관중들은 열광했다. 아마 대학 축제라는 특수성과 그 당시 낯선 악기였던 팬플루트가 가져온 호기심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불현듯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팬플루트에 대한 단상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원하는 대학에 합격을 하고 나른한 오후에 라디오를 들으면서 즐기고 있었다. 우연히 라디오 채널을 돌리는데 숨을 확 멎게 하는 환상의 연주가 흘러나왔다. 바로 팬플루트 연주였다. '고독한 양치기'와 '산과 계곡을 넘어', '철새는 날아가고', '여름비' 경음악을 듣는 순간 사실 내 심장은 멎어 버리고 말았다.
그 음악은 내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일순 팬플루트 악기에 그만 매료되고 말았다. 그 다음날 나는 고등학교 3년 동안 적금을 부은 통장 16만 원을 깨서 홀로 종로에 있는 악기상점인 낙원상가를 찾아갔다. 몇 군데를 돌아보고 그 당시 8만 원을 주고 팬플루트를 구매했다.
그 날, 적금을 깨서 무엇을 했는지 채근할 부모님의 화난 얼굴도 떠올랐지만 혼나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이미 팬플루트의 악기가 자아낸 환상의 설레임이 내 의식의 뜨락에 닻을 내린 후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부모님은 음악을 하고 싶은 나를 이해해 주셨다.
어느덧 불혹의 나이인 지금, 하모니카에 대한 열정이 흡사 고 3때 아무 것도 모르는 철 모르는 학생이 팬플루트 사러 낙원상가에 가는 심정이다. 하모니카에 대한 의지가 샘솟고 있다. 오늘 밤은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 내일 하모니카 학원에 정식 등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