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카 도전기
하모니카 카페를 서핑하다가 강사 자격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기로 마음을 다잡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벌써 내 마음에는 하모니카로 끝없는 해일이 일었고 내 모습은 벌써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하모니카 강의를 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쪽지가 와 있었다. 하모니카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싶다는 글을 읽고 보내온 쪽지였다. 나는 쪽지를 읽기도 전에 내 혈관이 팽창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보낸 이는 강사 자격증을 취득할 거라면 인지도가 있는 강사한테 배우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하모꿈동산 - 코리아 하모니카 필드 - 보람 원장님을 소개한다는 내용이었다.
드디어 하모니카 첫 수업하는 날, 아침부터 업무로 부산 피웠다. 사실 서울 정부청사의 과다한 업무는 진을 빼놓았다. 그래도 틈틈이 하모니카 수업을 생각했다. 퇴근시간이 기다려졌다. 일각이 여삼추였다. 저녁 6시를 알리자 하모니카를 배우기 위해 나는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쏜살같이 달려 종각역으로 갔다.
종각역은 대학 다닐 때 친구들과 기억이 아슴하게 스며있는 곳이다. 늘 만남은 종각에 이웃한 종로서적에서 이루어졌다. 친구들과 만나 항아리 수제비를 먹기도 했고 파전에 막걸리를 마시기도 했다. 내 여친과 데이트를 즐긴 곳도 그 종각이었다.
동묘역에 내렸다. 거리의 소음이 시끌시끌했다. 강습소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모니카 첫 수업... 문득 '첫'이라는 단어가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첫 입학, 첫사랑, 첫 만남, 첫 수업, 사실, 내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첫사랑이 이루 어지지 않는 이유는 첫사랑의 경험이 없기에 이별의 무지를 쉽게 저지른다는 이야기를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첫사랑을 생각할 때면 아직도 기억의 저편에서 설렘이 순정색으로 농후하다.
빼꼼히 문을 열고 하모니카 강습소로 주춤주춤 들어갔다. 지난주에 상담했던 총무가 살갑게 맞았다. 원장님이 홀 안에 있으니 바로 들어가면 된다고 했다. 첫 원장님과의 만남, 이웃집 아저씨 같았다. 크지 않은 체구, 세월이 켜켜하게 쌓여 있었지만 연세에 걸맞지 않게 유난히 피부가 고왔다.
말씀은 차분하면서도 겸허했다. 하모니카 강습소를 열게 된 배경은 일본의 모리모토 하모니스트가 연주한 클래식을 듣고 매료되어 본격적으로 하모니카 공부를 했다고 했다. 하모니카가 좋아 매일같이 양평에서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한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하모니카 수강료는 일주일에 한 시간씩 수업하는데 15만 원이었다.
수업을 받으면서 내가 얼마나 하모니카에 무지했는지에 대해 새삼 깨달았다. 지금까지의 내 하모니카 연주는 그저 파커주법 하나였다. 텅블럭 주법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몰랐다. 혀를 이용해 베이스와 분산화음을 넣을 수 있다는 것은 신기함을 넘어 심오하기까지 했다. 내게는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점이었다.
첫날 배운 것은 동요 '작은 별' 분산화음이었다. 분산화음은 미치도록 내 가슴을 두들겼다. 원장님은 내게 파커주법만을 연주해서 혀를 안 다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하모니카를 섣부르게 배운 수강생은 돌아간 혀를 바로 잡아야 하는데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하모니카는 어정쩡하게 배운 수강생보다는 차라리 처음 배우는 수강생이 훨씬 가르치기 편하다고 했다.
하모니카 수업이 끝났다. 오늘은 자주 가는 인사동 여관에서 자기로 했다. 집이 대전이어서 일주일에 한두 번은 여관살이를 하고 있었다. 집이 먼 것도 있었고 잔무가 많아 어쩔 수 없이 야근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서울 근무가 좋은 점도 있었다. 바로 하모니카 수업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살면서 나를 미치게 했던 것이 여럿 있었다. 내가 무엇인가 미쳤을 때의 그 기세는 그 누구도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어려서 전자오락이 그랬고, 문학과 한자가 그랬고, 마라톤과 배드민턴이 그랬다.
이제 나는 하모니카에 미치려고 한다. 하모니카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요양원이나 재활원에서 봉사할 것이다. 퇴직 후에도 봉사를 하거나 대학의 평생교육원이나 문화센터에서 하모니카 강의를 할 것이다. 그날까지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