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카 배운 지 4개월짜리가 무대에 서다

하모니카 도전기

by 몽돌돌



하모니카 강습을 받은 지 석 달이 되어 갈 때였다. 그 무렵 나는 대전에 있는 어느 문학회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 문학회에서는 매년 5월에 갈마도서관을 대관하여 문학축제를 열었다. 나는 그 축제에 자진해서 하모니카 공연을 하겠다고 했다.


학창 시절에 나는 하모니카를 즐겨 불렀다. 게다가 대학 때 작은 무대에서 하모니카를 연주했던 기억도 있었다. 지난할 여정이지만 한 달 동안 충분히 나를 경도 높게 연금시킨다면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하다고 생각을 했다. 다행히 문학축제 운영진에서도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문제는 하모니카 배운 지 3개월밖에 안 되는 일천한 경력을 가지고 무대에 선다는 것이었다. 여차하면 문학 축제의 격조를 저하시킬 수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히 결전의 날까지는 내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나의 그 치열한 하모니카와의 사투는 시작되었다. 먼저 하모니카 강사님께 한 달 후 하모니카로 무대에 선다는 것을 진지하게 알리면서 공연 예정인 동요 '나뭇잎배'와 가요 '해변의 여인'에 대해 속성으로 사사해줄 것을 부탁하는데 자못 비장한 표정까지 지었다.


하모니카 수업을 받은 날은 인사동 눌눌한 여관에 들어가 밤 12시 넘도록 피나는 연습을 했다. 사실 대전이 집이었고 근무지가 서울이었기에 집에 갈 수 있는 시간적 환경도 아니었다. 직장에서는 게눈 감추듯 점심을 먹고 청계천 발원지 빌딩 아래로 쏜살같이 달려가서 하모니카 연습을 했다. 지나가는 행인들은 원숭이 구경하듯이 흘깃흘깃 나를 쳐다봤지만 신경 쓸 게재가 아니었다.


사실 주위의 시선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내리쬐는 한낮의 뜨거운 햇볕이었다. 찌는 햇볕은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배어나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장소를 물색하다가 파라솔이 있는 커피숍을 발견했다. 바로 광화문 이순신장군 동상과 인접한 야외 커피숍 광장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 야외 커피숍으로 달려가 아메리카노를 한잔 사 들고 파라솔 테이블에 앉아 하모니카 연습을 했다.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어느 노신사는 일부러 내 옆 테이블에 와서 귀를 쫑긋 세워 하모니카 연주를 감상하기도 했다. 빈말이지만 하모니카를 잘 분다는 공수표를 날려 주기도 했다. 그런 접대용 멘트라도 내게는 힘이 되었다ㅏ.


연습이 계속되자 입술이 붓기 시작했다. 분산화음은 혀를 한쪽으로 틀고 약간의 입술이 돌아가야 하는데 엷은 물집이 잡히기 시작한 것이다. 부르튼 입술은 중간중간에 연습을 방해했다. 그때마다 다 글러먹었다는 생각이 고개를 쳐들었다. 하지만 내친김이었다. 포기할 수 없는 한판이었다.


단체 공연 사진.png


마침내 공연하는 날, 신새벽부터 마지막 연습을 조율했다. 집을 나올 때는 바람 한 점 없이 하늘이 맑았다. 봄날의 햇볕이 엄처 푸지게 쏟아졌다. 축제공연의 식순은 휘황찬란했다. 전문 시 낭송가의 시낭송부터 색소폰 연주, 달구벌입춤한국무용, 이십여 명의 오카리나 합주도 있었다.


시나브로 관중이 모이기 시작했다. 공연은 2시 정각에 맞추어 전문 시낭송가의 오프닝 시낭송으로 시작되었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가 관중들의 마음을 적셨다. 그 시는 고교시절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낭송이기도 하다. 아니 나뿐만이 아니라 '그리운 바다 성산포' 시낭송을 싫어하는 이가 있을까.


공연이 한 시간쯤 흘러갔을 때였다. 갑자기 사회자가 곧이어 하모니카 공연이 이어지겠다고 안내했다. 식순에는 제일 마지막이 하모니카 공연이었는데 말이다. 아마도 계속된 시낭송으로 분위기가 가라앉자 다시 분위기를 고무시키려는 사회자의 자구책 같았다.


나는 하모니카를 들고 무대에 올라갔다. 마이크를 잡고 앞으로 당겨 강사가 되기 위해 하모니카 강습을 받고 있다고 이야기할 때는 관중들은 '와'하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하모니카 강습을 받은 경력이 세 달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을 할 때는 손으로 무릎을 치면서 콩깍지 터지듯이 박장대소했다.


연주의 출발은 좋았다. 분산화음과 베이스가 제대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역시 무대 체질이야 하면서 신명 나게 '나뭇잎배'를 연주했다. 그런데 두 번째 곡인 '해변의 여인'을 연주할 때였다. 긴장한 탓일까. 자꾸 입술이 말라갔다. 불길한 양상은 늘 빗나가지 않는다. 아직 아물지 않은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가자 숫제 베이스 넣는 것조차 버거웠다.


마른 입술이 따가웠고 그러면 그럴수록 호흡이 가빠졌다. 그리고 마지막에서는 통기타 현 끊어지는 파열음을 내고 말았다. 손에는 땀이 배어났다. 그럴수록 호흡도 가빠졌다. 가빠진 호흡만큼 경미한 이탈음이 나왔다.


어떻게 연주가 끝났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관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지금까지 공연 중 가장 큰 박수였다. 그 박수가 가요 '해변의 여인'이 몰고 온 환희의 기쁨이었는지 아니면 음이탈에서 말미암은 위로의 박수였는지 모를 기묘한 기류가 흘렀다.


공연이 끝난 다과회에어 어느 시인은 내게 하모니카 연주를 잘 들었다면서 하모니카를 배우고 싶다며 명함을 달라고 했다. 나는 아직 하모니카 강사가 아니라면서 시인 명함을 건넸다. 공연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우습고 또 그 머쓱한 웃음 속에는 부끄러움도 동반되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의 미완성 공연이 앞으로 나를 더 크게 조형시킬 것이며 그래서 다음 공연에는 더 멋진 모습으로 무대에 설 수 있는 시금석으로 자리할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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