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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돌 Jul 13. 2023

마흔, 그 쓸쓸한 자화상

비망록


얼마 전 비망록을 추스르다가 우연히 15년 전에 쓴 글에 눈길이 가 닿았다. '마흔, 그 쓸쓸한 자화상'이라는 일기글이었다. 내가 써놓은 글을 내가 읽는데도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그 글 마지막에는 먼 훗날 뒤돌아 보았을 때 후회 없이 살았다고, 아름답게 살았다고 술회했으면 좋겠다고 쓰여 있었다. 


어느덧 나는 오십 대 중반의 나이로 접어들었다. 마흔의 길목에서  내 스스로 맹세했던 그 약속으로부터 나는 정작 얼마나 당당하게 살아왔을까. 정말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선문답에 고개가 숙여지고 사위에는 어느새 숙연한 고요만이 감돌고 있다. 


어느덧 세월은 켜켜하게 쌓여갔고 손바닥을 펼쳐보면 허무만이 휘감겨 있다. 사십 대를 보내고 오십의 중반이라는 시간 동안 사실 나는 내 인생을 짊어지고 나갈 제대로 된 반석하나 만들지를 못했다. 좀 더 나를 이끌었더라면, 좀 더 진취적으로 살았더라면 아쉬움을 자책해 봐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신들메를 고쳐 매기에는 가시덤불을 껴안는 아픔을 감내해야 하는 오십의 이 나이. 그렇다고 하나뿐인 내 인생 방관할 수도 없는 나이. 다시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칠십의 나이가 되었을 때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또 얼마나 절망하며 무너져 내릴까. 




                       마흔.  그 쓸쓸한 자화상



문득 마흔이라는 나이에 대해 사려했다. 불혹의 나이 마흔, 외로움을 많이 탔던 그 누구는 시간이 흘러 그저 마흔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고 한다. 사는 것이 너무나 외롭고 허무했기에 마흔이라는 그 중년에 들어서면 더 이상 외롭지는 않을 거라는 추측에서였다. 


하지만 마흔은 외로움의 끝이 아니고 시작이라는 것을 비로소 마흔이 되었을 때 알 수 있었다고 한다. 마흔이라는 나이는 억장이 무너지는 외로움이 뼛속 깊이 스며들어 펑펑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흔은 외로움에서 벗어 나는 나이가 아니라 그 처절한 외로움에 잘 참고 견디라고 해서 불혹(不惑)의 나이라는 것이다.

마흔은 내게 말더듬이처럼 찾아왔다.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무방비 상태에 마음의 빗장을 열고 성큼 들어와서 어느새 내 아랫목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마흔이 외로움의 정표로만으로 다가오지 않았던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아니 차라리 무미건조한 삶보다는 눈이 빠지도록 외로웠으면 좋겠고 가슴이 녹도록 그리웠으면 좋겠다. 


요즘 낯설고 물선 경남 사천이라는 이방의 땅에서 지방근무를 하고 있지만 외로움이 사무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혼자서 아침을 먹고, 저녁이면 사무실에서 늦게까지 남아서 잔무를 처리하고 또 혼자서 집에 들어가서 잠을 자는 것도 어느새 능숙해져 가고 있다. 아니 오히려 주말에 집에 갔을 때 내가 있을 자리가 없다는 것이 나를 애잔하게 만든다.


그럴 때면 아내의 남편으로서, 아이의 아빠로서 얼마나 온전히 이끌어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혹시 그저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하지 않을까. 단지 아이들이 서울에서 적응을 잘하고 있다는 담보로 혼자 지방근무를 한다는 것은 정작 가장으로서 책무를 유기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별생각이 꼬리를 문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나는 어떤 아빠일까. 가끔 책상 위에 앉아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고는 한다. 내가 아이들이라면 아빠에게 몇 점을 줄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게 선문답을 해봐도 좋은 점수를 기대하지 못해 을씨년스러움이 사위를 감싸고 만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가정의 생계를 위해 객지에서 고생을 하는 가장의 노력은 중요하지가 않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아이가 아플 때 옆에 있어주는 것이고, 시험 잘 봤을 때 등 한번 두들겨 주는 것이고, 또 여행을 갈 때 잘 갔다 오라며 조용히 손에 용돈 몇 푼  쥐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혼자 지방에서 살아가는 나는 그 모든 것들이 그렇게 녹록하지가 않다. 

하지만 정작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좋은 아빠가 될 수 없다는 자괴감이 아니다. 주말이라도 집에 가서 아이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아이들과 공존한다면 좋은 아빠는 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못된 아빠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내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이다. 내가 만약 40대의 나이를 물거품처럼 허송세월 보낸다면 나는 담벼락처럼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마흔이라는 나이는 정작 내게 중년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고 내가 이 사회에 설 수 있는 마지막 GOP근무로 다가온다.

마흔은 인생의 절정기다. 사십 대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기반을 다질 수 있는 나이다. 그 근간이 되는 나이에 무언가 이루지 못한다면 오십 대의 인생역전을 담보할 수 없다. 사십 대의 현재 진행형 없이는 오십 대는 퇴역의 나이이기 때문에 긍정을 오류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중년의 나이에는 노랗게 물든 은행잎만 바라보아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 한켠이 싸하니 내려앉는 것이다. 저 은행잎마저 황혼으로 쇠락해 가는데 해 놓은 것은 하나도 없고 이제 나는 어이하나 하는 절망감에서 밀려드는 고뇌의 서글픈 자화상인 것이다.

학창 시절 나와 함께 강가의 백사장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다가 마시다 남은 소주를 모래펄에 묻으며 먼 훗날 이다음에 다시 이곳에서 만나자던 선배는 기약 없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선배가 화장된 강가에 가서 혼자 소주병을 따르며 나는 끝없는 비감에 젖어야만 했다.  


얼마 전 장진영도 37세의 미완의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민초희였나?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라는 책이 학창 시절에 한창 유행했었다. 골수암으로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민초희의 글을 접하면서 꼭 내 이야기를 소설의 파노라마에 담아 놓은 듯 가슴이 아려왔었다.

마흔이라는 나이, 내 삶을 나 스스로 책임졌으면 좋겠다. 숱한 유혹이 방정식으로 접근해 온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동요동화 하지 않으며 앞만 보며 걸어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먼 훗날 뒤돌아보았을 때, 후회 없었다고, 아름다웠다고, 멋지게 술회했으면 좋겠다. 먼 훗날... 

(2009. 10. 29.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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