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바닷가에 살면 좋은 점이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슴이 탁 트이는 광활한 바다를 원 없이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해안가에 앉아 해 뜨는 일출과 해 지는 일몰을 무연히 바라볼 때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음은 물론 상서로운 기운이 사위를 감싸고는 한다.
하지만 그저 바다는 바다일 뿐이었다. 첫날밤을 치르고 다음날 화장을 지운 신부의 민낯을 보는 것처럼 바다의 환상이 깨지는 데는 고작 1 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바다 특유의 갯비린내와 가습기를 틀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눅진한 습기와 조우할 뿐이었다.
어느덧 바닷가에서 산 지가 벌써 4년이 되어 간다. 그래도 바닷가에 살면 여러 가지 좋은 점이 많이 있다. 그중의 하나가 신선한 해산물을 실컷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서울에서 살 때면 회 한사라 뜨기 위해 노량진 수산물 시장을 자주 찾고는 했었다.
주차할 공간도 마땅히 없었고 잡어 같은 자연산은 찾기 힘들었다 게다가 상도를 넘은 장사꾼의 호객행위는 넌덜머리가 났다. 그리고 수족관에서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물고기는 살아 있어도 살아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사는 이곳은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 녹동항이 이웃하고 있다. 녹동항에는 뜨내기를 상대하는 약간의 호객행위는 있으나 애교로 넘어갈 수준이다. 그리고 서울에서 맛볼 수 없는 여러 가지 신선한 해산물을 저렴하게 직접 살 수가 있다. 소라도 일반 소라가 아니라 단맛이 미혹적인 뿔소라를 구입할 수 있고 생선도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샛서방이라는 금풍생이를 살 수가 있다.
주꾸미 치어인 호래기를 사서 회로 먹을 수도 있고 자연산 보리새우나 호랑이 무늬가 그어진 오도리보다 훨씬 큰 자연산 대하를 만날 수 도 있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청게라는 바닷게를 살 수도 있다. 이 게는 랍스터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내가 어시장 경매사에게 청게를 살 수 있냐고 묻자 지역주민도 모르는 청게를 어떻게 아냐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청게가 아주 고급한 해산물이어서 잘 잡히지도 않고 비싸게 거래된다고 했다. 하지만 한 번 맛을 보면 찾는 고객이 많이 있다고 했다.
경매사는 이미 몇 군데 청게를 주문받아 놓았다고 했다. 주문한 분 중에는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서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데 마지막으로 꼭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 바로 청게라며 우선 구입해 줄 것을 신신당부하는 이도 있었다고 했다.
사실 청게는 2년 전 바다에 해루질 나가 직접 잡았었다. 뻘밭에 반쯤 들어간 청게는 집게를 추켜들고 나를 위협했다. 우스꽝스러웠다. 박하지도 아니고 꽃게도 아니고 참 묘하게 생겨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집이 컸고 집게는 흡사 랍스터 같았다. 잡아온 청게를 놓고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게가 독이 있을까?' 생각하며 용기를 내서 먹기로 했다. 청게를 쪄서 맛을 보니 우와 신이 내린 맛이었다.
바닷가에 살면 무엇이 좋을까. 나는 직접 해산물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녹동 사람들은 지나가는 강아지도 감생이를 물고 다닌다고 한다. 그만큼 이곳에서 낚시로 감성돔을 잡는 일은 흔한 일이다. 주변에서도 감성돔 낚시로 조과통을 하나 가득 채우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친한 형님은 조과통 가득 줄돔이라는 흑돔을 잡아왔다. 그날 그 비싼 흑돔을 질리도록 회 떠먹고 구워 먹었다.
나는 낚시보다 해루질을 좋아한다. 해루질은 밤에 횃불을 들고 해산물을 잡는 우리나라 전통의 어로방식이다. 해루질의 장점은 무한하다. 첫 번째가 해루질은 바닷속의 신비로운 세상을 밤에 홀로 나가 고요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바닷속은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질리지가 않았다. 서치로 바닷속을 훤히 밝히면 세세한 물결무늬 개펄 위로 꽃게나 박하지가 기어 다니고 졸복이나 감성돔, 농어, 장어, 학꽁치가 유영하는 장면은 다채롭게 펼쳐지는 별세계였다.
두 번째 해루질은 신선한 해산물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색만 나와주면 허탕 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박하지 몇 마리라도 잡아왔다. 제일 많이 잡는 것이 낙지이고 꽃게, 박하지, 감성돔, 볼락, 서대, 양태, 숭어, 방어, 새우, 학꽁치... 종류도 다양했다.
세 번째, 해루질은 유산소 운동이다. 바닷속을 헤집고 다니다 보면 어느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배어나면서 온몸이 흥건한 물주머니가 된다. 해루질을 나가면 늘 건강한 운동이 따라 들어왔다. 집에서 근력 운동을 할 때면 사실 지루했다. 고통의 시간을 인내하면서 시계만 쳐다보며 그저 빨리 시간이 흘러가기를 바랄 뿐이었었다.
하지만 해루질은 달랐다. 서치를 들고 바다를 들쑤시고 다니면 바닷속 안에는 싱싱한 생명의 파노라마가 경이롭게 펼쳐지는 그야말로 신비로운 세계였다. 결결이 반짝이는 물결 속에 형형색색의 생명체들이 춤을 추었다. 해루질을 나가면 언제나 시간은 나를 앞질러 갔고 시실리마을처럼 시간을 잃게 했다. 두 시간 동안 바닷속을 들쑤시고 다녀도 바닷속은 끊임없이 나를 들뜨게 했다.
해루질은 몸에 무리도 가지 않고 흥미롭게 할 수 있는 최고의 하체 근력운동이었다. 게다가 밤에 즐기다 보니까 살이 탈 이유도 없었다. 여름에는 바닷속에서 시원하게 피서할 수 있는 최고의 운동이 바로 해루질 운동이 아닐까 생각한다.
해루질을 나가기 위해서는 장비부터 챙겨야 한다. 배터리가 완충되었는지 확인하고 가슴장화를 입는다. 배터리를 서치에 연결해서 짊어매고 조과통이 빠지지 않도록 가슴장화의 멜빵과 연결한다. 그리고 수경과 뜰채를 들고 장갑을 끼면 준비 끝이다.
우리 집에서 해수욕장까지의 거리는 채 100미터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집에서부터 장비를 갖추고 바닷가로 걸어 나간다. 어제는 해루질 가서 제법 큰 광어를 잡았다. 바닷가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서치를 비추자 바닷속에는 광어 무늬의 음영이 모래처럼 엷게 퍼져 있었다.
처음에는 도다리인지 알았다. 광어보다 길쭉해 보였다. 뜰채를 살며시 광어 머리 쪽에 갖다 댔다. 그리고 팔뚝으로 날렵하게 낚아챘다. 광어는 뜰채 안에서 몇 번이나 파닥거렸다. 조과통 입구가 작아 들어가지 않았다. 통째로 뜰채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싱크대 안에 놓았더니 파닥거릴 때마다 쿵쿵 소리가 났다. 싱크대가 위태위태했다. 줄자로 재어보니 60센티 조금 넘었다. 회로 떠질 때까지 광어의 위용이 도도했다. 회는 4인 정도 실컷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직접 잡은 광어여서 색다른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