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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돌 Jul 14. 2023

김훈 장편소설 <하얼빈> 그 얼얼한 문장의 호흡

하얼빈





1. 들어가면서 


김훈의 장편소설 <하얼빈>은 2022년 출간 즉시 주요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 많은 화제를 불러 모았다. 


김훈 작가는 과거부터 안중근 일대기를 소설로 쓰는 것이 고단한 청춘의 소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안중근의 짧은 생애가 뿜어내는 거대한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해 미루었을 뿐 게으름을 부린 것이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단다. 다행히 몸이 회복되어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절박감에 탈고한 것을 위안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김훈은 '04년도 화장(火葬)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화장이라는 작품 속에서는 아내의 화장과 젊은 여인의 은근한 사랑을 절묘한 표현기법으로 심리묘사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감동 깊게 읽었다. 


김훈은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최초의 장편소설은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이다. 처음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밀도 있는 특이한 문체로 오히려 거부반응 일으킨다는 논쟁도 있었지만 그의 단문단문 연결시킨 4.4조 운율의 문장은 호흡이 짧고 간결하여 명징한 이미지를 독자한테 전달시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도마 안중근 의사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고 피력한 바 있다. 훌륭한 양서는 그 사람의 사상 내지는 철학마저 바꾸어 놓을 수 있으니 어찌 책의 소중함을 필설로 설명할 수 있으랴. 



2. 전체 줄거리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상해와 블라디보스토크 그리고 하얼빈이다. 상해는 돈을 가진 자는 있었으나 뜻을 가진자는 없었다. 그래서 힘 있는 한인들을 규합해서 국권회복의 주춧돌로 삼으려고 했으나 좌절되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안중근은 의병활동을 했다. 교전 중 도망치는 일본군 포로를 잡았다. 포로들은 어쩔 수 없이 전장에 나왔다며 울먹였다. 포로는 소총이 없으면 사살된다고 하자 소총까지 주어 돌려보냈다. 하지만 이 일본군 포로가 부대의 위치와 병력 규모를 밀고해 안중근의 부하들이 죽임을 당했다. 


하얼빈은 안중근이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한 곳이다. 그가 이토를 지우기로 결의를 다진 것은 만월대 앞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그 사진에서 만월대는 오백여 년 전 홍건적이 부수고 간 폐허로 남아 있었다. 이토는 허물어져 가는 돌계단 앞에 서서 순종을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옆에 칼을 찬 일본군이 직각보행자세로 따르고 있었다. 멸망해 가는 조선이 그 사진 한 장에 명료한 이미지로 담겨 있었다. 


안중근은 오래전에 세례를 받던 때의 때의 기억이 눈에 밟혔다. 천주교 신자가 계율을 어기면서 살인을 해야 하는가. 소설은 기독교인 안중근이 이토를 지우지 않고서는 조선의 평화가 없다고 번민하는 고뇌의 과정을 담담히, 그러나 제대로 그려내고 있었다. 

 

안중근은 독립운동가였다. 가산을 털어 학교를 지었고 뮈텔 주교에게 대학교 건립을 청원했지만 거절당했다. 용감한 장정들은 산에서 들에서 저항하다 쓰러졌고 힘이 약한 민초들은 도성 근처에서 이토가 싫어하는 똥을 길가에 뿌리며 저항했다. 


청일전쟁에 패한 청은 대련을 떼어내서 일본에게 넘겼고 전쟁배상금을 물었다. 그때 청은 조선에 대한 수백 년 종주권을 포기하고 조선의 독립을 약속했다. 독립은 조선문제에 청이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안중근은 새벽에 떠났다. 짐은 겨울옷 한 벌에 책 몇 권뿐이었다. 천주교 기도서도 보따리에 넣었다. 갈 길이 멀수록 남편의 짐은 단출하다는 것을 김아려는 알았다. 김아려는 멀어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서 남편이 결코 풀려나지 못하리라는 예감에 눈물을 흘렸다. 


안중근은 러시아 병사 뒤쪽에서 이토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키 큰 러시아인들 틈에 키가 작고 턱수염이 하연 노인이 서 있었다. 저것이 이토로구나... 저 작고 괴죄죄한 늙은이가... 저 오종종한 것이... 


안중근은 이토를 조준선 위에 올려놓았다. 오른손 검지손가락 둘째 마디가 방아쇠를 직후방으로 당겼다.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였다. 총의 반동을 손아귀로 제어하면서 다시 쏘고, 또 쏠 때, 안중근은 이토의 몸에 확실히 박히는 실탄의 추진력을 느꼈다. 러시아 헌병들이 안중근을 몸으로 덮쳤다. 안중근은 외쳤다. 


- 코레아 후라(만세)


안중근 취조실에서 미조부치와 마주 앉았다. 어디를 겨누었는가? 심장을 겨누었다. 도주할 계획은 세웠는가? 아니다. 나쁜 일을 한 것이 아니므로 도주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한국 독립전쟁의 의병 참모자격으로 하얼빈에서 이토를 죽였다. 그러므로 이 법정에 끌려 나온 것은 전쟁에서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객으로 신문을 받을 이유가 없다. 


질문이 답변을 누르지 못했다. 질문과 답변이 부딪쳐서 부서졌다. 사건의 내용을 일정한 방향으로 엮어나가지 못했다. 답변이 질문 위에 올라탈 기세였다. 진술은 유불리를 떠나 있었다.  


사형을 선고받고 안중근은 항소를 포기했다. 재판과정에서 검찰관의 논고와 변호사의 변론을 들으면서 항소는 쓸데없는 짓임을 알게 되었다. 빌렘이 마지막으로 다녀간 뒤 나흘 만에 안중근은 <안흥칠 역사>를 탈고했다. 탈고한 지 열 하루 뒤에 안중근은 집행되었다. 



3. 감상평


김훈의 장편소설을 읽고 나면 가슴에 응어리지는 아픔이 만져지는 것 같다. 그의 저서 '흑산'에서는 정약전이 천주교에 연루되어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형벌을 받고 흑산에 유배되어 다시는 육지로 나가지 못할 것임을 감지한 인간의 내밀한 고뇌가 그랬다. 


'남한산성'에서는 국란의 사면초가 속에서도 당쟁에 빠진 사대부의 안타까움이 가슴을 저미게 하고 결국 전쟁에서 패한 후 청의 칸에게 무릎을 꿇어 신하의 예로서 구배(九拜)를 올리는 치욕적인 역사적 굴레에 아픔이 도사리고 있다. 


'칼의 노래'에서도 정유년 초봄 조정을 능멸하고 임금을 기만했다는 모함으로 한산 통제영에서 체포되어 안타까움 속에서도 구국을 위해 애쓰는 이순신의 처절한 모습이 눈물겨웠다. 명의 수군함대 진린이 주색과 풍류의 뒷바라지를 요구하고 결국 고니시와 내통하여 왜군의 퇴로를 열어주려고 할 때 그의 칼은 고뇌에 몸부림쳤다. 


이 책 <하얼빈>은 무능한 왕권과 한일합방 문서에 도장을 찍어 나라를 팔아먹은 대신들에 맞서 힘없고 나약한 안중근이 홀로 이토히로부미를 저격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은 아내 김아려의 애틋함이 묻어난다. 김아려는 안중근이 이토를 사살한 경위로 심문을 받으면서 끝까지 자신이 정대호의 누나라고 들이댔다. 미조부치가 문명한 나라의 법률은 범죄자의 혈족이라 하더라도 범행과 직접 관련이 없으면 처벌하지 않으므로, 안심하고 사실을 진술하라고 회유했지만 끝내 굴하지 않았다.


또한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종교단체도 어떨 수 없는 이익집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아시아 평화라는 허울 좋은 미명 아래 패권주의를 지향하는 일본이 조선의 백성을 죽이고 전쟁터로 끌고 가는 전범 앞에서 천주교는 시종 모르쇠로 일관했다. 


하지만 안중근이 이토를 죽인 것에 대해서는 '살인하지 말라'는 천주교의 계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안중근의 세례를 박탈하고 제명을 했다. 일본이 조선인을 죽이는 것은 정당한가. 동아시아를 지킨다고 숱한 조선인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박애주의일까.


안중근의 거사 이후 팔십 년 동안 한국 천주교회는 공식적으로 그의 행위를 역사 속에서 정당화하지 않았고 교리상으로 용납하지 않았다. 안중근은 1910년 뮈텔 주교의 교리에 따라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범한 죄인으로 남아 있었다.



4. 밑줄 친 부분


지엄한 법도와 위엄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신하들의 중론이었을 것으로 메이지는 생각했다. 

꽃잎처럼 떨어진 충혼들을 진무(鎭撫 진압해서 어루만짐)했다.

황태자 이은은 인천에서 기선을 타고 바다를 건넜다. 

조선 폭민의 소요사태는 소규모 다발성입니다. 

이토는 조선 사대부들의 자결이 아닌 무지렁이 백성들의 저항에 경악했다. 조선의 면면촌촌에서 백성들을 일어서고 또 일어섰다. 

조선이 문명개화되면 이 거친 백성들의 들뜸(비정상적인 흥분상태)은 스스로 잦아들어 제국에 동화될 테지만

수백 년 동안의 수탈과 억압으로 검불처럼 무기력해 보이던 조선 백성들이 무너진 왕조의 부흥을 외치며 그토록 가열하게 봉기하는 사태가 이토는 두려웠다.

상해는 아비규환 속에서도 한가한 동네였다.

저물어서 돌아온 돛배들이 물고기 몇 마리를 내렸고

바람에 가랑잎이 쓸려갔고 사람 사는 집에서 저녁연기가 올랐다. 

초상은 걸게 벌어져서 먼 부락 촌민들과 떠돌이 거지들까지 모여들어서 세끼를 먹었다. 

기울어가는 국운을 개탄하고 난세를 성토했다.

적의에 찬 시간 앞에 홀로 서 있음을 느꼈다. 

취기는 깊고 혼곤했다.

네가 스스로 알게 될 때는 이미 너무 늦을 터이므로 나는 그것을 염려한다.

사물을 외면하고 인간이 성리를 갑론을박하면서 음풍농월과 공리공론으로 허송세월해온 무리이다. 

가늠쇠 너머에서,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이토의 모습이 꿈속처럼 보였다. 하얼빈역은 적막했다. 

소문은 소리 없이 퍼져나가서 적막 속에서 술렁거렸다. 

나는 헛된 일을 좋아해서 이토를 죽인 것이 아니다. 나는 이토를  죽이는 이유를 세계에 발표하려는 수단으로 이토를 죽였다. 

사람의 생명의 빼앗는 죄를 수수방관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다.

뮈텔은 천둥벌거숭이의 몽매함에 한숨 쉬었고 순수한 신앙의 열정에 목이 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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