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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돌 Aug 18. 2023

무작정 제주

제주를 읽다

삶이 피폐해지고 부대낄 때 그것을 위안해 주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돌파구가 필요하다. 나의 돌파구는 무작정 제주였다. 오늘 아침 7시 40분, 돌연 제주도 여행을 계획했다. 사실 제주는 '효리네 민박'으로 연예인의 삶이 재조명되고 '우리들의 블루스' 같은 제주도 드라마가 나오면서 인구에 회자되는 것 같다. 


제주를 가겠다는 어떤 기저도 내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제주항 여객선 출발시간 채 30분이 남지 않은 상태에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결정한 제주 여행이었다. 배편은 녹동항에서 9시에 있었다. 내게 주어진 준비 시간은 20여분, 나는 게눈 감추듯 여장을  꾸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여정이 없었기에 갖추어야 할 여장도 없었다. 몇 벌의 여벌, 그리고 노트북, 하모니카 6개가 전부였다. 하모니카에 대해서 이해 못 하면  왜 6개나 필요하나 의구심을 품겠지만 그것도 최소로 줄인 것이다. 하모니카는 단조와 장조, 음계별로 키가 다르기 때문이다. 


여장을 갈무리하는 데는 십 여분이면 충분했다. 시동을 켜고 녹동 여객선 터미널로 핸들을 틀었다. 차는 소록대교를 지나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머릿속에는 남실거리는 제주 앞바다가 살아서 심장처럼 태도였다. 바다가 부르고 있었다. 푸른 제주를 떠올리자 일순 세포가 화들짝 깨어났다.  


8시 10분에 녹동 여객선터미널에 도착했다. 제주행 표를 끊는 승객들이 긴 꼬리를 물고 있었다. 늦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표를 끊은 시간은 8시 26분, 매표원은 8시 30분까지 차량을 승선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30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승선이 취소된다는 것이다.  


달렸다. 내게는 4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다행히 차는 여객선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주차해 놓았다. 선착장에는 차량 승선을 마감하려고 문을 닫으려는 찰나, 나는 클락션을 울렸다. 1분의 여유를 두고 흡사 버라이어티쇼처럼 간신히 제주항에 승선할 수 있었다. 


제주도 배에 올랐을 때 안도의 한숨이 쉬어 나왔다. 매점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4천 원이었다.  커피는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와 여유로 먹는다는 것을 나는 지레 알고 있었다. 앞으로 열흘 정도 제주도에 홀로 머물 예정이다. 제주도는 어떤 향기로 내게 날릴까. 


선판 위에 올라갔다. 여객선은 거금대교를 지나고 있었다. 햇살이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바다에는 햇살의 조각들이 숭어의 비늘처럼 퍼덕거렸다. 그 누구는 매일같이 바다에 나가는 노인의 우직함을 닮고 싶다고 했다. 나는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올라 슬프고도 아름다운 별빛 사연을 가슴에 담는 어느 시인의 슬픈 눈매를 보고 싶다. 


해풍 날리는 바다 난간에 기대어 섰다. 뱃전에서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거품에 부서지고 있었다. 나는 제주를 여행하면서 원 없이 관광을 하고, 또 원 없이 사색을 하고, 또 사색한 결과를 원 없이 글로 남길 것이다. 


여객선은 정확이 12시 50분에 정박했다. 제주도는 내게 어떤 위로와 신비로움을 부여할 것인가. 벌써부터 가슴이 떨려온다. 차량이 꼬리를 물어 하선하는데 30여분이 소요되었지만 기다림은 지루하지 않았다. 나는 카카오내비에 모슬포항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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