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라도를 여행하기로 했다. 첫배가 9시 40분이었다. 아침에 모슬포항 드라이브를 나섰다. 그런데 대정오일장 시장이 집어등처럼 불을 밝히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오늘이 장날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인 셈이다.
놀란 점은 장이 의외로 컸고 물건의 가격이 참으로 겸손했다는 것이다. 은빛 비늘이 살아 있는 갈치도 7마리에 만원이면 살 수 있고 비록 못난이 귤이지만 만원에 한 망을 살 수 있엇다. 깨끗한 기름을 쓴 튀김도 하나에 천 원씩 했다. 잡채를 안에 넣은 오이튀김 한 개와 내가 좋아하는 야채튀김 한 개를 샀다.
국밥집도 몇 군데 얼기설기 있었다. 뼈다귀해장국이 8천 원이었고 부추전 한 장에 만원에 팔았다. 저녁이었으면 아무 선술집에 들어가 부추전에 막걸리를 자배기에 따라놓고 지나가는 행인과 식당에 앉은 손님들의 술추렴을 들으면서 나도 불콰하게 취해지도록 시간을 낚았을 것이다.
마라도는 모슬포에 이웃한 운진항에서 출발한다. 주차장은 광활했고 대합실은 협소했다. 마라도의 요금은 19,000원이었다. 30 여분 만에 도착하는 것을 감안했을 때 제법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게 일물일가(一物一價·하나의 물건은 하나의 가격)’의 원칙을 고집할 힘이 없었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국내여행 1001에 포함된 마라도. 마라도에는 등대도 있고 성당과 교회, 심지어 기원정사라라는 절도 있었다. 예전에 오탁번 소설가의 농담을 들은 적이 있다. 오탁번 소설가가 스님들이 좋아하는 절이 있는데 무슨 절이냐고 물었다. 주변에도 정답을 이야기하지 못하자 혼외정사라고 했다. 오탁번 소설가가 쓴 '달맟이꽃' 단편소설은 내 스스로 한국소설 오십 편 안에 꼽는 불후의 아름다운 명작이다.
섬 속의 섬인 마라도, 행인들은 우르르 하선하더니 약간의 경사로를 올라 에움길로 접어들었다. 나도 짐짓 그 뒤를 따라 여행의 묘미를 즐기기 시작했다. 쪽빛 하늘이 눈이 시리게 투명하다. 햇살이 송곳처럼 바닥에 꽂히고 있다. 나에게는 우산이 준비되어 걱정할 게재가 아니었다.
약간의 언덕을 오르자 평지가 펼쳐졌다. 아래의 두 행락객은 마치 고독한 수행자처럼 자박자박 걷고 있다. 나도 그 뒤를 따라 고행자처럼 걸었다. 원래 이곳은 울울창창한 숲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화전민들이 밭을 개간하기 위하여 불을 놓았고 그 후 민둥숲이 되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약 130여 명(2015년 기준)되는 주로 어업을 하나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식당과 카페, 민박을 겸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한다.
마라도에는 어디에서나 배달된다는 해물짜장면집이 많이 있다. '짜장면 시키신 분'도 있었고 '철가방을 든 해녀'도 있었다. 만화가 허영만이 요트를 타고 이곳에 들렀을 때는 짜장면집이 딱 한 곳이었다고 한다. 해산물이 가득 든 짜장면을 시켜 먹은 후 입소문을 타면서 우후죽순처럼 짜장면집이 생겼다. 지금은 짜장면 거리 수준이다. 마라도의 짜장면은 어떤 맛일까.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에서도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식당 주인이 직화로 만든 맛있는 짬뽕이라며 유인하고 있었고 나는 수이 결정을 하지 못했다. 이럴 때는 내게도 선택 장애가 온다. 하지만 해결책이 있다. 몇 군데 둘러보고 그중에 가장 많은 손님이 있는 곳으로 결정을 하는 것이다.
가장 많은 손님이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이른 점심이어서 손님들은 듬성듬성 앉아 있었다. 짜장면은 8,000원, 짬뽕은 13,000이었다. 짜장면과 짬뽕을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이럴 때도 해결책이 있다. 졸창간 사위를 둘려 본다. 대부분 짬뽕을 먹고 있었다. 게다가 멀찍이 보이는 테이블에는 짬뽕국물하나 없이 비워놓고 손님이 떠난 자리에는 내가 무엇을 취사선택해야 하는지 가이드하는 것 같았다.
짬뽕을 시켰다. 그런데 벽에 걸린 메뉴판을 보니가 마라도방풍막걸리도 팔고 있는 것이 아닌가. 주민이라고 100여 명밖에 안 되는 마라도에도 막걸리를 빚고 있다는 것은 신기했다. 그렇다면 막걸리를 안 마실 수가 없었다. 주문했다. 짬뽕은 해산물이 풍부했고 국물맛이 시원했다. 내 입을 사로잡는 맛이었다. 막걸리는 탄산기 전혀 없이 약간 텁텁한 맛이었다.
마라도 최남단 비석이다. 뒤로는 한점 장애물이 없이 광활한 바다가 펼쳐져 있다. 역광으로 사진이 흐리게 나왔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대한민국최남단'라고 적혀 있다.
등대는 마라도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위용도 도도하다. 마라도의 등대는 전 세계해도에 꼭 기재되는 중요한 등대로서 국내 선박뿐만이 아니라 많은 국제 선박에게도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
푸르른 초원이 망망대해처럼 펼쳐져 있다. 울창한 숲이 없어도 풍광은 훌륭하다. 한 발 한 발 옮길수록 기암절벽 쪽으로 바다가 채우는 시야각이 넓어져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바다가 빚어낸 자연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면서 마침내 바다와 나는 물아일체가 된다.
마라도는 경사가 가파르지 않고 한 시간이면 다 돌 수 있는 섬이기에 누구나 부담 없이 여행할 수 있다. 마라도 옆에는 가파도가 있다. 우수개소리로 어느 빚쟁이가 이곳으로 도망쳐와 '여기에 오면 빚을 가파도 좋고 마라도 좋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빚쟁이들이 좋아할 만한 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