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둥글게둥글게 Oct 27. 2022

대기만성

아들은 말문이 늦게 트였다. 

행동은 또랑또랑했지만, 36개월까지 음식도 말도 오물오물거렸다. 

또렷하게 말할 수 있는 단어는 엄마 아빠 단 두 개. 

나머지는 자신만의 모음 집합인 '으유어아우'를 때에 따라 선율처럼 읊조렸다. 

문장은 전혀 만들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들만의 언어를 엄마의 촉으로 

‘알아서 알아듣는 게’ 의사소통에 전부였다. 

영 안 통할 때는 <가족 오락관>의 게임인 고요 속의 외침을 하는 것 같았다. 

서로 딴 말을 하는 불통의 대환장 파티. 

그래도 스스로를 다그치진 않았다. 어차피 나중에 말하게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세 번째 생일이 가까워질수록 걱정의 파도가 모질게 밀려왔다. 

지저귀면 그만인 새도 아닌데 멜로디로만 대화할 순 없었다. 

우유를 끊임없이 아유라고 말하는 아들이 모습도 답답해졌다. 

'아유'가 엄마의 '아휴'로 변할 무렵, 결국 언어치료 기관의 문턱을 넘었다. 

한 시간 정도 상담을 받고 나오자마자 옅은 한숨이 계속 흘러나왔다.

기관에 있는 내내 기분이 별로였다

우선 아들의 작은 몸짓 하나까지 알 수 없는 글씨로 체크되는 게 너무 초조했다. 

공연히 상담사의 눈치를 보는 내 모습도 싫었다. 

이 생소한 공간에 아들을 데려온 게 그저 미안했다.      


번잡한 마음을 다잡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불현듯 떠오른 말이 있다. 

36개월까지는 기다려 보라는 것. 

이 말을 간절히 믿으며 그러기로 했다. 

대신 책을 더 열심히 읽어줬다. 

클래식 음악 대신 라디오를 듣고, 영상을 하루에 3개씩 보여줬다. 

말의 억양과 리듬을 살려 또박또박 말하려고도 노력했다.

이런 정성이 통했는지 아들은 달라졌다. 정확히 세 번째 생일 보름 후부터. 

입에 머물고 있던 말을 나름대로 오밀조밀 만들어서 

하나씩 입 밖으로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말하는 단어나 문장이 대충 버무린 무침 같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하나하나 정성 들여 만든 코스 요리처럼 말을 줄줄 내놓았다.

그리고 52개월인 지금. 아들은 말의 맛을 아는 이야기꾼이 됐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