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연습 기록 02
이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다.
이전 글에서 말했다시피 나는 취미로 피아노를 치던 사람이다. 실력이야 초보 수준이지만 악보를 보고 연습을 하다보면 쉬운 곡 전체를 칠 수 있는 수준은 된다. 그런데 바이올린은 전혀 달랐다.
알고 배우긴 했다. 진입장벽이 높고 입문 과정이 꽤 오래 걸린다는 걸. 그런데 역시 사람은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직접 체험하는 건 백 번 듣는 거랑은 전혀 다르다.
우선 자세를 잡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바이올린을 적절한 부분에 얹고 자세를 잡는 것, 활을 잡는 방법, 활을 긋는 방법 등 기초에서 터득해야 하는 기본 자세들이 많았다. 얼굴을 너무 당기지 않아야 되고, 팔을 너무 올리거나 내려서도 안 된다. 활을 잡는 손가락 모양도 둥글게 돼야 되고 현을 짚는 손이 너무 꺾여서도 안 됐다. 한 마디로 안 되는 게 참 많다. 평소 코어 근육이 없고 자세가 나쁜 나는 올바른 자세를 잡는 것도 버거웠다. 바이올린을 배우다 보면 거북목 치료는 거뜬히 될 것 같았다.
심지어 나중 가서는 더 어려워졌다. 현재는 두 번 수업을 들은 상태이고 처음으로 '시' 소리를 잡아봤는데 악보를 보고, 현을 누르고, 활을 긋는 세 가지 동작을 동시에 하는 게 생각보다 정말 난이도가 높았다.
특히 현을 누르고 활을 긋는 게 동시에 돼야 두 가지 음이 띠링- 하듯 연달아 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는데 말로는 알지 도대체 동시에 어떻게 되는 건지 시범 보여주는 선생님이 신기하기만 했다.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며 당연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나한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너무 어려웠다.
그래도 나름 소리는 난다.
다행인 건 소리는 얼추 난다는 것이다. 물론 힘을 잘못 줘서 끼익거리거나 덜덜 떨리거나 하는 현상은 여전히 있지만 듣기 괴로울 정도는 아니다. 내가 슬픈 건 자세의 감이 여전히 잡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활을 긋다보면 방향이 일직선으로 내려오지 않고 사선으로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 다른 분들도 같은 현상을 경험한다고 하는데 그게 되다가도 안 되면 정말 현타가 온다. '나는 분명 가르쳐주신 대로 하는데 왜 안 되는 거지?'란 생각밖에 안 든다.
그리고 첫 수업 이후엔 꽤 자주 갔다. 하다보면 감을 잡을 수 있겠지 싶었는데 웬걸. 두 번째 수업이 될 때까지도 그 감이란 건 잡히지 않았다.
물론 연습하다보면 이거구나! 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게 유지가 안 된다. 여전히 미스테리이다. 왤까? 두 번째 수업 때 내 자세의 잘못된 부분을 잡아주시면서 원인을 어렴풋 이해했지만 그게 익숙해지는 건 다른 문제였다. 선생님이 잡아주셔야 정상적으로 활을 긋고 나 혼자 하면 엉망이다.
다들 이렇대. 하다보면 늘겠지?
그래도 위안인 건 나만 이런 게 아니란 거다. 활 방향이 사선으로 되는 것도, 현을 짚는 손가락 모양이 어려운 것도 다들 그렇다고 했다. 성인이 돼서 배우다보니 몸이 굳어 있어 한 번에 되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수업할 때 그런 얘기를 해주시면 그래도 위안이 됐다.
왜냐면 다른 방에서 수업을 듣거나 연습하시는 분들은 다 음율을 연주하신다. 그분들도 이런 과정을 거쳤을테니 나도 꾸준히 연습하면 저렇게까진 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 할만 한 것 같았다. 물론 저렇게까지라도 하려면 얼마나 배워야 할까 하는 막막함도 동시에 들지만 말이다.
바이올린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무슨 일이든 다 똑같지 않을까.
나는 요행을 바라는 사람이다. 갑자기 무슨 얘기인가 하면 '초보자'의 상황을 못 견딘단 뜻이다.
나는 뭘 배워도 빨리 배우는 편이라 기초 부분을 스킵하고 싶은 욕심이 더 커지곤 한다. 왜냐면 기초는 재미가 없으니까. 난 재미와 흥미가 있어야 동기 부여가 되고 에너지가 생기는 편이라 더욱 그렇게 된다. 악기 연주를 예로 들면 활을 켜는 법을 알았으니 당장이라도 파가니니를 연주하고 싶은 마음? 말이 안 되는 거지.
지금은 그게 욕심이란 걸 잘 안다. 내가 뭐든 잘 할 수는 없는 거고, 사실 내가 빨리 배운다고 느낀 것도 보통에서 살짝 빠른 거지 진짜 똑똑한 사람들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잘 안다고 해도 마음이 쉽게 포기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러다보니 이 바이올린 배우는 게 나한테는 중요한 지점인 것 같다. 왜냐면 욕심인 걸 알아도 여전히 요행을 바라는 나한테 바이올린은 절대 그걸 가능케 하지 않는다. 고작 며칠밖에 안 했지만 벌써부터 느껴진다. 내가 마음을 급하게 먹어도 내 마음처럼 절대 되지 않는구나.
그런데 이상하게 포기하고 싶지가 않다. 난 초보자 기간을 못 참고 재미가 없으면 하기 싫어지는데 오기가 생긴다.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연습에 간다. 어쩌면 관성처럼 그렇게 된다. 나는 그 부분이 가장 신기하다.
그리고 이 부분을 내 삶에 적용시켜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무슨 일을 시작하든, 아니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든 삶에 요행을 바랄 수는 없다고. 차근차근 쌓아올려야 한다고. 그래야 견고한 진짜 내 실력이 되니까.
현재 말로는 이렇게 잘 알지만 실제로 적용하기까지엔 또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래도 이렇게 깨달은 게 어디인가. 한 곳에 머물러 있는 사람보다 낫지 않나?
그러니 바이올린 실력도, 내 삶의 실력도 하루하루 차근차근 쌓아나갔으면 좋겠다. 중간에 무너져도 쌓는 법을 알면 다시 쌓을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