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엔 나이도 직업도 없는 게 좋다.

바이올린 외에 배우는 것들

by 이오월


국경 없는(?) 악기 학원

지난번 연습 때 우연히 다른 수강생 분과 같이 들어간 적이 있다. 그 층에는 수학학원과 병원(?) 그리고 바이올린 학원 밖에 없는데 어떤 중년 남성 분이 같이 내려서 설마 했다. 아니나 다를까 같은 학원을 다니는 분이었고 친절하게 문까지 열어주셨다.


내가 다니는 바이올린 학원 수강생들은 연령대도 직업도 모두 다양하다. 상담 때 말씀해 주셨는데 정말 다양한 나이와 직업을 갖고 계셨고 한 남성 분은 특수 직업군에 몸이 굳어서 진도가 더디지만 꾸준히 다닌다고 하셨다. 밖에서 들리던 피아노 소리는 중년 여성이라고 하셨고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신다고 했다. 이야기들은 흥미로웠고 학원에 더 등록하고 싶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무언가를 입문할 때 허들이 낮다는 것. 그건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발판이다.


그때 그냥 듣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는데 직접 어떤 아저씨가 같은 학원으로 들어가는 걸 보니 더 색달랐다. 그리고 이상하게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좋아하는 것에 기준이 어딨어

나는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이다. 최근 들어 유명해진 HSP라는 단어가 나한테 해당되는 점이 많은데 거기엔 남들의 눈치를 본다는 큰 단점도 포함이다.


그래서 첫 포스팅에서도 얘기했다시피 학원에 등록하는 것부터가 큰 결심이었다. 아무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데 괜히 주눅이 들었다.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와서 갑자기 바이올린을 배운다고 하면 비웃을 거 같았다. 실제로 비웃는 사람이 없어도 그런 느낌을 떨치는 건 쉽지 않아서 스스로 최면을 걸며 학원 상담을 갔던 것이다.


그랬기에 상담 때 그 이야기는 매우 위안이 되었고 용기가 되었다. 그리고 실제 학원에 들어가는 그 아저씨를 봤을 땐 괜히 뭉클했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즐기는 데엔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상관없구나 싶어서.



하나씩 알아가는 거지 뭐

한국 사회는 정형화된 틀이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꽤나 견고하다. 초중고 12년이란 기간동안 학교에 다니면 당연히 대학에 진학해야 하고, 대학을 졸업하면 당연히 취업해야 하며, 취업하고 자리를 잡으면 당연히 결혼을 해야 한다. 무슨 수학 공식같다. 세상에 당연한 게 어디있지?


나 역시나 이 공식에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다. 나는 현재 진로 고민을 다시 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이 시기에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저 공식대로 살다가 어느 순간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뭘 좋아하는지 찾게 되는 게 아닐까 한다.


그러다가 용기를 낸 게 바이올린 학원이었다. 사실 난 음악을 정말 정말 좋아한다. 어릴 땐 가수가 꿈이었고 콘서트를 보러가면 그곳에서 살아있음을 느꼈다. 오그라들지 모르겠지만 이 문장 외엔 표현할 길이 없다. 그만큼 음악을 좋아했다. 그건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흔히 그렇듯 현실적인 문제로 전공을 삼지 못했다. 그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도 미련이 남는 걸 보면 실패하더라도 도전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뭐라도 해봤으면 미련이 덜 남았을까? 그런데 또 오히려 전공을 못했기 때문에 바이올린 학원을 등록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어 아이러니함도 있는 것 같다.


어찌됐든 난 현실에 살고 있으니까 현재 내가 무얼 원하는지 아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아가는 과정 자체도 쉽지 않을 수 있겠지만 해보겠노라 용기를 내는 건 더 어려운 일 같다. 고작 학원 등록하는 것도 망설여졌는데 진로 결정은 오죽할까.


그랬기에 뭉클했던 것 같다. 아직 어리다고 한다면 어린 나이에도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는데 그분들은 진작부터 자신이 원하는 걸 알고 학원에서 배우고 있었다 생각하니 그 용기에 감동을 받은 것 같다. 동시에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로는 여전히 미스테리이고, 어떤 선택이 옳은지는 알 수 없고, 음악을 전공하지 못했다는 후회는 여전히 남지만 그래도 용기 있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덩달아 용기를 얻어 간다. 실패한 삶은 없으니까. 느리고 더디더라도 하나하나 알아가면 되지 뭐.


분명 어딘가에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만의 해결법을 찾아가고 있을 것이다.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인데 무언가를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가 많다는 건 오히려 그만큼 하고 싶은 이유가 많다는 거 아닐까?


뭐가 됐든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고 우리 학원 수강생들처럼 용기 있는 분들도 많으니 함께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그 안에는 나도 포함이다. 언젠가는 내가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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