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연습 기록 03
작고 소중한(?) 내 실력.
벌써 세 번째 수업을 받았다. 시간이 이렇게 빠른 것도 신기한데 더 신기한 건 배우면서 깨닫는 게 하나씩 생긴다는 것이다.
학습 기록을 두 개밖에 쓰지 않았지만 이제 더 쓸 게 있을까 싶었다. 일기 형식을 띄는 개인적인 기록일뿐만 아니라 아직 기초 중에 기초라 쓸 이야기가 없을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참 신기하지. 아무리 기초라 하더라도 하다보면 익숙해지고 더 나아지는 게 있는 것 같다. 그걸 오늘 처음 느껴봤다.
선생님도 잘한다고 칭찬해 주셨고 진도도 내 생각보다 많이 나갔다. 그렇다고 모든 게 완벽하고 이제 능숙한 그런 실력은 아니지만 계속 활을 일직선으로 긋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심각하게 사선이 되던 모양은 잡혔다는 걸 깨달았다. '어, 나 좀 늘었나?' 내 스스로도 놀라웠다.
연습을 갈 때마다 실력이 너무 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연습 때마다 거의 같은 것만 했는데도 매번 다시 도루묵 되고 그 감이라는 게 전혀 잡히질 않으니 갈길이 한참 멀었다고만 느꼈다.
그런데 오늘 연습할 때는 제자리걸음이라고 생각했던 게 아주 조금이나마 익숙해지고,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춰가고 있는 걸 발견했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매번 똑같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론 그게 아니구나. 아주아주 조금씩 실력이 쌓여가고 있었구나.
집에 오는 길엔 비가 왔다. 우산을 써도 바짓단이 축축하게 젖어가고 있는 게 느껴졌는데 더할나위 없이 발걸음이 가벼웠다.
바로 다음 수업의 수강생 분은 노래를 연주할 수 있는 분이었는데 지난번까지만 하더라도 난 언제쯤 저렇게 되려나 막막하던 게 집에 오는 길에 생각이 달라졌다. 나도 꾸준히 하다보면 저렇게 할 수 있겠구나. 왜 나는 이 기초 수준을 평생할 거라고 생각했지? 그건 굉장한 깨달음이었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하루.
어떤 강의에서 들은 이야기 중에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행복할 때 '이 행복이 영원할 거야'라고 생각한다고. 하지만 행복한 기분이 늘 똑같이 유지될 수는 없다. 언젠간 행복하지 않은 날이 오게 된다. 그게 꼭 나쁜 일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반대 상황인 우울할 때도 사람들은 같은 착각을 한다는 것이다. '이 우울이 영원할 거야.'라고 말이다. 그러나 행복한 시간이 언젠간 끝을 맺듯 우울한 시간도 끝이 있다는 걸 그 강의는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그 말이 참 좋다.
오늘은 그 강의 내용이 생각났다. 비슷한 맥락으로 난 이 초보 상태가 쭉 지속될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실력이 금방금방 늘지 않는 걸 인정했지만 인정함과 동시에 이 상태가 영원할 거라고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그런데 금방 늘지 않는다는 게 영원히 제자리 걸음이란 뜻은 아니었다. 꾸준히, 조금씩 하다보면 곡을 연주할 날이 오고 그보다 더 완성도를 높이려고 노력할 날이 분명 온다. 지금의 기초가 아주 쉽고, 당연하게 느껴질 날이 분명 온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그러니까 비가 오는 것도, 바지가 젖어가는 것도 하나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행복했다. 뭐든 하면 느는구나 싶어서.
행동하는 사람은 제자리가 아니다. 그동안은 그 말이 잘 이해가 되질 않았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하루가, 별 볼 일 없는 것 같은 내 일상이 쌓이고 쌓이다보면 적어도 한 뼘은 자라는구나 라는 걸 말이다.
앞으로도 이 감각을 잊지 않고 싶다. 바이올린의 감을 늘려가는 것처럼 인생의 감각을 늘려가는 것도 내게 아주 필요한 요소인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알아줬으면 좋겠다. 멀게 느껴지는 어느 날은 멀더라도 반드시 올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면 걷고 있는 그 길이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