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연습 기록 04
이제 점점 손가락이 아파지기 시작했다. 현을 잡으며 낼 수 있는 음이 하나씩 늘어가고 동시에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다 보니 손끝이 아프고 빨개진다. 당연한 일이지만 신기하다. 뭔가 진짜 몰입해서 하는 느낌?
그 외에도 최근에 새로운 걸 알게 됐다. 악기 연주가 정신 건강에 좋다는 점.
최근 며칠 건강 문제로 살짝 우울했다. 심각한 상황은 아니지만 난생 처음 수면 마취를 하고 수술을 받게 되었다. 평소에 병원 가기를 싫어해서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건강검진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래도 어려서 그런지 큰 문제는 없었고 평생 수술의 시옷 자랑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수술을 하게 됐다.
겁 많은 성격에 무섭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 수면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은 아니었지만 그냥 해본 적 없는 것에 대한 무서움과 어찌 됐든 수술이란 상황이 긴장과 불안을 일으키기엔 충분했다.
그래서 괜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누워만 있고 싶은데 바이올린 수업은 이미 정해진 스케줄이라 가야만 했다.
안 가도 되긴 하지만 수업료는 냈고, 일주일에 한 번 밖에 안 하는 수업을 빠지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 학원에 가 수업을 받고 연습도 조금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학원을 나올 때의 기분은 학원을 갈 때의 기분과 달랐다. 우울한 감정이 좀 가신 느낌?
물론 기분 탓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래서 그 뒤로 잊고 있었는데 며칠 뒤 연습을 하고 나왔을 때도 살짝 가라앉아 있던 기분이 나아진 게 느껴졌다. 그제서야 확실히 무슨 연관이 있나보구나 생각했다.
검색해 보니 관련 기사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악기 연주 정신 건강'이라고만 검색해도 인지기능 활성화, 노화 예방, 스트레스 완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효과가 있다는 기사들을 볼 수 있다. 즉,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악기 연주가 우리의 신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악기를 연주한다는 건 여러 부위를 동시에 사용해야 하는 분야라는 걸 알 수 있다. 당연히 악기를 연주하기 위해 몸을 움직여야 하고 악보를 읽어야 하고 음을 내야 한다. 바이올린 같은 경우는 제대로 된 음정을 내려면 정확한 곳에 현을 짚어야 하는 섬세함도 필요하다. 이를 동시에 하려다 보니 연주가 어렵고 능숙해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거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뇌의 여러 방면이 활성화 되는 건 당연한 일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연주를 할 때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이 악보대로 제대로 된 소리를 내는 게 가장 중요한 시간에 다른 고민, 걱정, 불안이 비집고 들어올 틈은 없다. 그리고 이 부분이 스트레스, 우울, 불안 등의 정신 건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하지 않나 싶다. 운동을 할 때, 운동하고 나서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것과 같은 것 같다.
나는 단순히 취미를 갖고 싶었고 어릴 때부터 해보고 싶었던 악기를 배우려고 했던 것 뿐인데 참 의외의 수확이었다. 연습할수록 나아지는 성취감과 스트레스, 불안 완화까지 된다면 아무래도 가장 좋은 취미가 아닐까?
실제로 내가 다니는 학원은 몇 년 동안 오래 하시는 분들이 많다. 나이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지만 그들이 악기를 배우며 느꼈던 것, 배웠던 것, 얻어간 것은 분명 긍정적인 요소들이 많았으리라 짐작한다. 그랬기에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같이 예민함이 높고 불안이 높은 사람이라면 악기 연주를 추천한다. 그동안 배워보고 싶었던 악기가 있다면 한번쯤은 도전해 볼만 하지 않을까? 만약 그게 오래 하는 취미가 되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악기 연주의 장점을 한번쯤 느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