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상 우리의 몸에는 늘 구체적인 타인이 깃든다. 이 힘이 그 어떤 규범적 논변이나 멋진 이념보다도 나를 인간의 평등에 관한 그럴듯한 믿음으로 이끈다. 이때 '힘은 '능력'과 달리 구체적인 개인의 한계와 가능성에 닫혀 있지 않다. 힘은 보편적이고, 개개인보다 더 크다.
힘은 능력의 외부에 머물며 능력의 전제가 되거나, 능력에 관한 세상의 척도를 전복하거나 재구성한다. 누군가의 능력 앞에서 우리는 종종 좌절하지만, 누군가의 힘을 목격하면 더 큰 세상에 접속하는 경이로운 체험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온전한 평등은 추상적 규범이나 이념으로서가 아니라 '능력의 측면에서 지극히 차별적인 관계에 놓인 존재들이 상대의 '힘'을 존중하고 신뢰할 때 달성된다. 당신이 나를 배려해 내 앞에서 발레를 추지 않는다 하여 우리가 온전히 평등해지는 것은 아니다.
발레를 잘 추는 '능력'으로 당신은 내가 모르는 세계에 접속하는 다양한 방법을 나에게 제안할 수 있다. 내게도 춤출 힘이 있음을 깨달은 지금 나는 발레를 추는 당신의 능력이 나보다 뛰어나다는 데 좌절하지 않는다.
물론 나에게도 당신보다 능력이 뛰어난 차원이 있을 테다. 그것은 발레와 다른 종류의 춤일 수도, 논픽션 글쓰기일 수도, 일반적으로는 매우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어떤 분야의 기술일 수도 있다. 그 능력이 무엇이든 나는 이 능력들로 당신과 차별적인 개인이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내가 잘하는 영역을 섬세하게 이해하면서. 한편으로는 당신의 힘을 믿으면서 나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할 방법을 고안할 수 있다. 그때 우리는 '법 앞의 평등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각각의 차별적인 능력을 지닌 개인들이 서로의 동등한 힘에 주의를 기울일 때. 우리는 고유한 개인이면서도 더 큰 세계의 일부가 된다.
김원영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
우리는 타인의 뛰어남 앞에서 자주 초라해진다. 누군가의 압도적인 성취나 재능을 목격할 때, 그것은 단순한 부러움을 넘어 나의 무능에 대한 증명서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 사회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이 불편함을 해소하려 한다. 하나는 무한 경쟁을 통해 나도 그 능력을 갖추려 발버둥 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누구나 각자의 꽃을 피운다"는 식의 말로 능력의 격차를 애써 흐리는 것이다. 위에서 발췌한 원문은 이 두 가지 태도 모두를 거부한다. 그는 능력의 차이를 긍정하되, 그것이 인간의 위계를 결정하지 않는 제3의 길을 묻는다.
우리가 흔히 믿는 '평등'은 배려라는 이름의 은폐에 가깝다. 휠체어를 탄 사람 앞에서 춤 이야기를 삼가거나, 가난한 친구 앞에서 돈 이야기를 숨기는 것이 예의라고 배운다. 이는 '능력의 차이'가 곧 '존엄의 차이'로 직결된다는 전제를 우리 스스로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처 주지 않기 위해 탁월함을 감추는 행위는 역설적으로 상대를 무능한 존재로 박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당신은 이것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오만함이 그 배려 밑에 깔려 있는 것이다.
김원영 작가는 여기서 '능력(Ability)'과 '힘(Power)'을 날카롭게 분리한다. 능력은 수직적이고 배타적이다. 발레를 잘하는 능력은 소수에게만 허락된다. 그러나 힘은 수평적이고 개방적이다. 힘은 그 발레를 보고 감동할 수 있는 생명력이며, 타인의 탁월함을 통해 나의 세계를 확장하려는 의지다. 저자는 "당신이 나를 배려해 내 앞에서 발레를 추지 않는다 하여 우리가 온전히 평등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진정한 균열은 여기서 발생하는 것일지도. 평등이란 격차를 없앨 때 오는 것이 아니라, 격차를 일종의 '초대의 도구'로 전환할 때 올 수 있다. 발레를 춤으로써 내가 모르는 춤의 세계를 보여줄 때, 당신의 능력은 나를 짓누르는 흉기가 아니라 나를 더 큰 세계로 이끄는 입구가 된다. 타인의 탁월함을 통해 세계를 확장하는 것이다.
능력의 불평등은 필연적이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그 차별적인 능력들 덕분에 서로를 필요로 한다. 만약 우리가 모든 면에서 똑같은 능력을 가졌다면 타인은 불필요한 복제품에 불과할 것이다. 나의 결핍은 당신의 탁월함이 들어올 자리가 되고, 나의 탁월함은 당신을 초대할 티켓이 된다. 내가 글을 쓰고 당신이 춤을 춘다면, 우리는 서로 다른 능력으로 서로를 구원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나도 너만큼 할 수 있다'는 정신승리가 아니라, '나에게는 당신의 능력을 감각하고 받아들일 힘이 있다'는 자각이다. 능력은 우리를 구별 짓지만(지극히 차별적인), 힘은 그 구별을 넘어 접속하게 한다(온전히 평등한). 우리가 굴복해야 할 것은 타인의 능력이 아니라, 그 능력이 만든 결과물 앞에서 느끼는 자신의 열등감이다.
그러니 타인의 뛰어남 앞에서 눈을 돌리거나 위축될 필요가 없다. 그 능력을 통해 그가 보여주는 세계를 향해 나의 '힘'을 작동시키면 된다. 우리는 능력에서 지극히 차별적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서로에게 보여줄 새로운 풍경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온전한 평등이란 서로가 서로에게 고유한 세계로 가는 문을 열어주는 상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