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같은 거 아님.
20대는 무엇을 '이루는' 시기가 아니라,
자신의 '오답'을 수집하는 시기이면 좋겠다.
20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준비'라는 답을 내놓았다. 좋은 직장, 안정된 미래, 남들보다 앞서가는 스펙. 이 시기를 미래를 위한 저축의 기간으로 상정하는 순간, 20대의 현재는 뭐가 되는 것일까. 과연 20대가 무언가를 완벽히 준비할 수 있는 시기일지 궁금하다. 사회적 기준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성실한 모방'이 20대라는 황금기를 설명하는 유일한 단어여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가 이 시기에 정작 놓치고 있는 것은 '성공의 기술'이 아니라 '실패의 감각'일지도.
흔히 20대에는 전문성이나 경제적 기반의 기초를 닦아야 한다고 말한다. 30대 이후의 삶이 결정되는 중요한 시기이기에,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념은 꽤 합리적으로 보인다. 이해는 된다. 노동 시장은 갈수록 좁아지고, 한 번의 이탈, 또는 실패가 왠지 영원한 낙오로 이어질 것 같은 공포가 지배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20대는 가성비를 따진다. 취미도 경력이 되어야 하고, 관계도 인맥이 되어야 한다.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시간이라고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시간을 무언가에 몰입하되 실패해도 괜찮은 곳에 쓰기보다는 실패하지 않을 곳에만 투여하려 애쓴다.
효율성이란 단어에 압도된 20대는 필연적으로 취약하다. 남이 정해준 정답을 맞히는 데만 익숙해진 사람은, 정작 인생의 여정에서 예상치 못한 폭풍을 만났을 때 스스로 키를 잡는 법을 모른다. 인생에서 가장 에너지가 넘치고 회복 탄력성이 높은 시기에, 왜 우리는 가장 보수적인 선택만을 강요받을까? 그렇게 20대에 시행착오를 겪지 않은 사람은 40대에 이르러 뒤늦은 사춘기를 겪으며 더 큰 대가를 치르곤 한다. 진짜 위험한 것은 20대에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20대에 단 한 번도 자기 식대로 시도했다가 망해본 경험이 없는 것이다. 실패의 데이터가 없는 ‘나’는 자신의 한계가 어디인지, 자신이 진정으로 견딜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즉, 자신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상태로 어른이 되는 것이다.
내 생각에, 20대에 중요한 것들 중 하나는 '나만의 오답 노트'를 완성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조금 더 멋있는 단어를 쓰고 싶은데, 이것 만한 단어가 없다. 세상이 말하는 정답을 따라가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것은 내 목소리가 아니다. 20대는 기꺼이 오답을 써 내려갈 용기가 허락된 유일한 시기다. 무엇을 해도 응원 받을 수 있는 시기. 내가 이 일을 정말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해보니 끔찍했다거나, 이 가치가 절대적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위선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환멸의 경험이야말로 20대가 획득해야 할 가장 귀한 자산이 아닐까. 어떤 환경에서 내가 비굴해지는지, 어떤 순간에 내가 비겁해지는지, 그리고 어떤 가치를 위해서라면 손해를 감수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은 귀하다. 이 오답들이 쌓여서 만드는 경계선이 곧 자기 자신이 된다. 정답을 맞히는 능력은 대체 가능하지만, 자신이 무엇에 오답을 내는지 아는 사람은 대체 불가능한 고유성을 갖는다. 20대의 방황은 길을 잃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지도를 그리기 위해 탐색하는 작업이어야 한다.
20대는 무언가를 증명하는 시기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가설을 검증하는 시기다. 성공적인 20대란 남들이 부러워하는 타이틀을 거머쥔 상태가 아니라, "나는 이런 상황에서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구나" 혹은 "나는 이런 종류의 고통은 기꺼이 감내할 수 있구나"라는 정직한 데이터를 구축한 상태다. 우리는 과연 지금 안전한 정답만을 베껴 쓰고 있는가, 아니면 훗날 내 삶을 지탱해 줄 귀중한 오답들을 수집하고 있는가. 20대의 가장 큰 낭비는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실험하지 않는 그 비겁함에 있다.
나는 비겁했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