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까지, 잘 안 들렸던 삶에 대해

by 다니


“이 소리가 안 들려?”


어릴 때부터 엄마가 자주 했던 말. 엄마는 별명이 ‘소머즈’ 일 정도로 귀가 예민한 편이었다. 윗집 변기 내리는 물소리, 싸우는 소리가 다 들릴 정도. 듣고 싶지 않은 소리까지 너무 잘 들려서 매번 잠을 설쳤던 우리 엄마. 본인이 유독 잘 듣는 건 알고 계셨으나, 바깥 빗소리와 나지막하게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잘 들려야 되는데, 하나뿐인 딸내미가 자꾸 못 듣고 딴청을 하기에 불러 놓고 테스트하는 것이었다.




어릴 때, 그러니까 아기인 시절에, 다른 아기들이 기어 다닐 동안 나는 한쪽 다리를 끌고 다녔다는 엄마의 이야기. 어디 모자란 것 아닌지 걱정했지만, 곧 두 다리로 잘 기어 다녔다고. 초등학교 입학해선 시력 검사를 했는데 시력이 너무 낮아 병원 검사 권유. 엄마 아빠는 연락받고 너무 놀라, 그날 저녁 내 앞에 앉아 동화책을 펼쳐놓고 보이냐고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해맑게 하나도 안 보인다고 대답한 나. 엄마는 다음날 회사 연차를 내고 바로 대구에 큰 안과병원을 데리고 갔다. 난시가 심하다는 판정. 여태 애가 어지럼증을 많이 호소했을 텐데, 그런 경우 없었냐고 되묻는 의사. 엄마는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본다. 바로 시력 교정을 위해 안경을 권유받았다. 그러나 엄마는, 어릴 때 시력으로 인해 꽤 고생했던 경험이 있으셨기에, 일단 집에 가서 나를 앉혀 놓고 물어본다.


“안경 쓰고 싶어?”

“음…. 아니!”

“그럼, 안경 쓰지 말고 엄마랑 눈 낫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할까?”

“웅!”


독실한 믿음이 있으셨던 엄마는, 어린 딸내미지만 당장 안경에 의지하는 것보단 회복하는 길이 더 낫지 않을까 희망을 품으셨다. 그렇게 안경을 쓰지 않고 자연스레 시력이 회복하여 지금은 양쪽 시력이 1.0이다. 이 밖에도, 새로 난 앞니가 벌어져서 치과에선 치아교정을 권유했는데 엄마가 손가락으로 매일 모아보자고 해서 모으다 보니 정말 모인 경험, 목에 생선 가시가 걸려 자칫하면 수술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기적과 같이 가시가 빠진 경험…. 이런 과정들은, 엄마의 믿음을 더욱 단단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내가 잘 못 듣는구나, 청력이 약하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한 건 중학생 나이쯤일 것이다. 순간순간 있었던 일들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반 친구들이 불러도 못 듣거나 집에서 일어나는 소음들을 못 알아챌 때부터 ‘무엇엔가에 집중하면 잘 못 듣는다.’로 얘기하곤 했다. 그런 생활 소리가 그냥도 들리는 수준인 줄은 알게 된 건 최근에 보청기를 끼고 나고부터이다.


그러다 점점 1대 1로 대화할 땐 상대방의 입 모양에 집중하고, 주제가 크게 벗어나지 않으니까 대화하는 데 문제없었는데, 단체로 무언갈 안내받을 때나 여럿이 다 같이 얘기할 때 집중력이 흐려지면서 잘못 알아듣는 경우도 발생했다. 그러나 학교생활은 단체생활로 크게 벗어나는 것 없으므로, 반 친구들이 하는 것 따라가면 되었고, 교과서에 적힌 내용과 같이 읽으며 수업 듣기에 공부하는 데에도 안 들려서 힘든 경우는 거의 없었다. 정말 다만, 귀가 ‘둔감’할 뿐이었다. 엄마는 이걸 믿음으로 고칠 수 있다고 또 그렇게 믿는 것이었다. 매번 같이 있을 때 조금이라도 작은 소리가 나면 들리냐고 물어보고 들어보려고 노력하라고 훈련시켰다. 그리고 괜히 같이 대화할 때도 속삭이듯이 작은 소리로 얘기하셨다. 단순히 ‘둔감’ 한 것이기에 ‘집중’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귀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고 병원에 가게 된 첫 계기는 ‘이명’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어쩌다 가끔 이명이 있었는데, 고3 때는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시기여서 그런지, 자습 시간에 공부에 집중 못 할 정도로 이명 소리가 너무 크고 시끄러워서 이비인후과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때 청력검사를 처음 받았는데, 실제로도 청력이 좀 안 좋은 편이니 약 먹고도 이명이 계속 지속되면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라고 권유받았다. 그날, 같이 병원에 갔던 아빠는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내 귀 컨디션, 즉 이명이 요즘도 들리는지 체크해 오셨다. 그땐 정말 이명이 더 큰 방해 요소였기에, 약을 먹고 이명이 좀 잠잠해진 뒤론 귀 검사를 따로 받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정말 안 들려서 스트레스받은 경험은 대학교 때부터였다. 단체생활이라지만, 수강 시간표도 각자 짜는 것이고 대학 생활은 내가 꾸려나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눈치껏 따라가는 상황은 점점 사라졌다. 우리 과 조교 선생님이 젊은 여자분이었는데, 유독 목소리를 속삭이면서 말하는 분이었다. 학과 생활 관련해서 문의하러 갈 때마다 스트레스받을 만큼 나는 알아듣기 너무 힘들었고, 그 조교 선생님은 내가 못 알아듣는 것에 대해 굉장히 불편함을 팍팍 티를 내는 타입이었다. 정말 별것 아닐 수도 있는데, 내가 잘 못 알아듣는 걸로 너무 속상해서 그때 처음 운 것 같다. 혼자 카페를 가도 식당에 가도 속삭이듯이 작게 말하는 직원들을 마주칠 때면 두세 번 물어보기가 굉장히 눈치 보였고 어려웠다. 그러다가 졸업을 앞둔 대학교 4학년 때 코로나가 터지면서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썼다. 그때부턴 모든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 매 순간 어렵고 힘든 일이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준비 시기에, 나는 면접을 앞둘 때마다 가장 걱정했던 건 마스크를 필수 착용해야 한다면 면접관과 거리가 너무 멀 때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나, 면접관이 유독 또 속삭이는 스타일이면 어떡하나, 내가 너무 못 알아들어서 재질문을 너무 많이 하면 어떡하나 등 면접을 잘 못 보면 어쩌지 보다, 못 알아들으면 어찌할지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프다. 진작에 못 알아듣는 심각성을 깨달았어야 했는데, 어릴 때부터 점차 안 좋았던 청력이라 그런지 어찌 ‘내가 더 노력해야겠다.’ 이 생각만 한 것 같다. 엄마의 믿음 타령도 큰 영향이 되었다.


그래도 면접을 봤고, 그래도 사회생활을 해왔다.

그런데 어쩌다가 갑자기 ‘청력 장애’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걸까.

나의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