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청력이 약한 편이었기에, 특히나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정도라기보단, 세심한 작은 소리를 못 알아듣는 경우였기에, 병원에 가서 검사받기란 실천으로 옮기기가 보다 무척 어려웠다.
왜 그런 걸까? 남이 아프다면, 병원 꼭 가보라고 그렇게 쉽게 권유하면서. 왜 내 몸을 검사하는 일엔 그토록 고민이 되고 번거롭게 느껴지고 굳이 싶은 걸까.
건강의 이상은 내 불안한 미래를 일찍 마주하고 확정 짓는 것이기에, 그래서 본인도 모르게 ‘괜찮을 거야. 병원 갈 정도는 아닐 거야. 내가 노력하면 이겨낼 수 있을 거야.’ 이렇게 현실을 부정하게 된다. 그 두려움은, 보는 것보다 당사자가 됐을 때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나의 몸 또한 제대로 확인하고 마주한다는 것에 큰 용기가 필요함을 나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처음엔 내가 청력이 정말 안 좋다는 걸 확인하고 확정 짓는다는 게 싫었다. 어차피 안 좋은 거, 약하게 태어난 거, 딱히 치료 방법도 없는 청력에 대해 그렇게 전문적으로 검사하고 확인하는 게 나한테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다. 내 마음에 상처와 짐만 더 생기는 일 같았다. 그냥 이대로 조금만 더 노력하고, 속상하지만 그 부분을 감내하면서 살면 되지 않나 싶었다. 여태 잘 지내왔는데 그 상처를 굳이 드러내야 하나 싶었던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그렇게 생각했었던 과거의 내가 너무 안쓰럽고 눈물이 난다.
전혀 부끄러워할 것도 아니고, 숨길 것도 아니며, 일단 방법을 찾아보고 그만두어도 되는데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나.
그냥 눈치 보며 살기를 익숙해졌던, 죄지은 것도 없는데 잘 못 듣는 게 죄인 것처럼, 그렇게 살았던 내가,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후부터
그때부터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그렇다. 나 자신을 사랑한다면, 정말로 사랑한다면 내 몸을 누구보다 잘 챙겨야 하는 것이다. 내가 매일 씻고, 화장하고, 옷을 단정하게 입는 건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함보단, 사랑스러운 나 자신을 더 사랑해서이고. 내가 운동을 하고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는 것 또한 내가 아프지 말고 행복하길 바라는 바람 때문이며. 마찬가지로, 내가 불편함을 겪는 걸 그냥 묻고 따지지 말고 견디라는 건 나 자신을 방치하는 것과 다름없음을.
‘이 정도 불편함이면, 청력 장애일 수도 있지 않을까? 장애 판정을 받으면 또 복지혜택도 받을 수 있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거야. 겁먹지 말고 장애정도 인지만 검사받으러 가보자.’
장애 판정을 받을 정도인지가 첫 번째 궁금증이었고, 목표가 생겼기에 병원에 가는 게 훨씬 수월해졌다.
이비인후과 중 청력 장애 검사까지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아 방문했다. 여러 가지 귀 검사하는데 3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검사표를 보자마자 의사 선생님께서 평소에 매우 힘드셨겠다고 위로부터 해 주셨다. 확인해 보니, 청각장애 진단을 받을 수 있는 기준 바로 전 단계인 ‘중도난청’이었다. 양쪽 귀가 55dBHL 정도였는데, 60dBHL을 넘어가면 장애였다. 정말, 정말 약간의 차이인 것이다.
보청기를 바로 권유하셨다. 그래서 나는 바로 보청기를 하려 온건 아니라고, 청각장애 정도인지만 보려고 온 거라고 말씀드렸다. 웬만해선 보청기를 하는 걸 고려하길 다시 권유하셨다. 장애 지원은 못 받지만, 어쩌면, 그 정도로 안 좋은 게 아니라 다행인 걸지 모른다면서 말이다. ‘그래, 어쩌면 다행일지 모르겠다.’라고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위로받고 있었다. 젊은 사람이 이 정도로 귀가 안좋을 경우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있으니, 대학병원에 정밀검사를 위해 진단서를 써주셨다.
내가 어느 정도로 불편하고 힘들었는지를 알아주는 건 다름 아닌 병원이었다. 물론 좋은 의료진분들을 만난 덕도 있을 것이다. 잠깐 만나는 환자인 나를 진심을 다해 진료해 주셨으니까 말이다. 여태 왜 혼자 끙끙 앓았을까? 눈물이 났다. 마음이 울컥했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닌데, 왜 나는 나를 스스로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살아왔을까. 그냥 아픈 건데.
삶에는 여러 전문가가 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무기력하게 회사에 다닐 때, 심리 상담을 시작하게 된 건 회사 복지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였다. 주변 직원분들의 권유로 상담을 받게 된 것이, 나중엔 나에게 필수적인 시간이 되었다.
나 혼자만 있을 땐 내가 힘든 건지, 힘들어도 되는 건지, 이 괴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고, 방황할 때 심리 상담 선생님께서 길잡이가 되어주셨다.
‘충분히 힘들 만한 상황이에요. 참지 말아요. 여태까지 견뎌오느라 애썼어요.’
내가 약한 걸까, 의지 부족일까, 마음이 좁은 걸까 하며 내 탓을 해오느라 스스로 숨이 막혔던 나는, 점점 숨통이 트였다. 나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해 주는 것. 그게 치료에 시작인 것을 나 혼자서는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보청기를 착용하는 삶은 아직 상상되지 않았다. 그렇게 두 번째 목표가 생겼다.
‘원인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셨어. 정밀검사를 먼저 받아보자.’
그렇게 나의 귀는, 대학병원을 앞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