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돌아가셨지만, 1년 전까지도 정정하신 편이었던 외할머니는, 항상 왼쪽 귀가 잘 안 들려 보청기를 하셨는데, 내가 직접 보청기를 한 사람을 본 건 그때뿐 이였다. 보청기 크기는 귓구멍을 덮을 만큼이어서 귀를 쳐다보면 보였고, 항상 착용하실 때마다 윙윙거리는 기계 소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셨다. 나에게 보청기에 대한 첫인상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대학병원 특성상, 예약이 항상 꽉 차 있어 빠른 진료 날짜를 잡아도 족히 3주는 기다려야 했다. 그동안 아빠에게, 남자친구에게, 일부 가족과 친구들에게 청력 검사를 받았던 이야기를 털어놨다. 다들 반응은 ‘네가? 그 정도라고?’와 같이 정말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그런 반응들에 나도 의아했다. ‘잘 못 듣는 경우가 많았을 터인데, 여태 사람들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건가?’ 어쩌면 그 정도의 친절을 베푸는 건 사람들에게 당연한데, 친절을 받는 내가 굉장히 눈치 보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대학병원을 예약했다고 얘기할 때마다, 굉장히 어디가 크게 아픈 사람인 것, 마냥 그렇게 분위기가 약간은 심각해지는 것이, 정밀검사를 받는 것뿐이라며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고 설명하는 내가, 아 이런 게 싫어서 여태 병원에 가기가 싫었구나. 이런 분위기가 싫어서. 우리 엄마도 본인이 아프다는 걸 알릴 때마다 이렇게 죽음을 앞둔 사람 마냥 안타까워하는 그 분위기를 견디기 힘드셨을까. 그래서 더 악착같이, 별것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신 걸까.
그래서 더 이상 얘기하지 않기로 했다. 나도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니, 일단 병원에 다녀오는 것만, 그것만 생각하자. 부풀려지는 걱정들이 나를 무겁게 하기에, 그냥 할 일을 체크하듯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반차를 빼서 예약된 시간에 갔는데, 귀 검사 대기시간만 30분 이상. 일반 이비인후과에서 받은 검사와 비슷하지만, 또 다른 정밀검사를 받고, ‘감으로 맞추는 것 같다’라는 코멘트가 달린 검사 결과지와 함께 교수님과 상담을 받았다. 교수님께 인사하자마자 첫마디가
“보청기 합시다.”
“아, 보청기가 너무 비싸서…. 국가 보조금도 못 받는 상태여서요.”
“병원 내 보청기 상담 받으실 수 있으니까, 바로 받아보시는 것 추천합니다. 제가 따로 얘기도 잘 해놓을게요.”
“네, 감사합니다.”
“정밀검사도 같이 예약하는 걸로 하죠.”
“정확한 원인을 안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요?”
“앞으로 귀 건강 관리를 위해서, 추후 경과도 지켜봐야 하니까요.”
그렇게 당일 시간이 나서, 피검사와 CT 검사를 미리 받고, MRI와 청성뇌간반응검사는 예약 일정을 잡았다. 그리고 바로 보청기 담당 선생님과 상담을 진행했다. 얘기 잘 전달 들었다면서, 젊은 사람들도 10대들도 보청기 많이 사용한다고 안심부터 시켜주셨다.
내 귀 검사 결과지 그래프를 보며, 사람마다 잘 못 듣는 건 같아도 이 그래프 모양은 다 다르다고, 내가 못 듣는 그 부분을 잘 듣게끔 보청기가 소리를 잡아주고 도와주는 거라고 간단하게 먼저 설명해 주셨다. 나 같은 경우, 낮고 작은 섬세한 소리를 잘 못 들어서 소리의 정확한 인지가 떨어지고, 그게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이어졌음을, 발음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 특징 때문임을 짚어주셨다.
사실 이비인후과에 처음 검사받고 보청기를 권유받았을 때, 보청기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아서 미리 검색을 해봤었다. 보청기의 역할은 생각보다 더 중요했다. 단순히 더 잘 듣게 해 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청력이 떨어지면 그만큼 뇌가 받아들이는 청각 자극량이 줄어들고, 시간이 지나면서 청각 관련 신경회로가 약화 된다고 한다. 뇌는 쓰지 않으면 약해지기 때문에, 뇌의 ‘소리 처리 기능’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잘 안 들리는 상태에서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려고’ 뇌가 계속 긴장한 상태에 놓여있으니, 집중력과 기억력이 떨어지고, 장기적으로 인지적 피로가 누적되면 치매 발병 위험도 커진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고 한다.
한마디로, 보청기를 함으로써 잘 들리고, 대화가 편해질 뿐 아니라, 두뇌 활동이 활발해져서인지 저하를 늦출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청각 보조기기’가 아니라 ‘뇌 건강을 지키는 장치’로도 보는 것이다.
이미 알아볼 때 어느 정도 마음먹었지만, 보청기 상담을 받으면서 확신했다. 보청기를 실제로 착용해 보니, 그 잠깐이었지만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상담 내내 선생님의 목소리가 잘 들리긴 했지만, 보청기를 끼고 나선 너무 잘 들려서 그만큼 힘을 덜 쓰는 게 순간 느껴졌다. 너무 편했다. 내가 원하는 건 바로 이런 삶이었다.
가격이 큰 편이라 한 번 더 고민하셔도 된다고 배려해 주셨지만, 난 더 이상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바로 보청기를 예약하고 수령 날짜를 잡았다.
그렇게, 내 삶에 ‘보청기’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