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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 Jul 17. 2024

나의 어린 시절 간병 이야기

영케어러(Young Carer)

영케어러(Young Carer)는 자신의 미래를 포기한 채 아픈 가족을 간병하는 청소년이나 청년을 뜻 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학원 갔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어머니께서 바닥에 쓰러져 계셨습니다. 어머니를 불러도 대답이 없으셨고 이상하다고 느끼기는 했지만 위급한 상황이라 인지를 못했습니다. 엉뚱하게 의식 없으신 어머니께 이불을 덮어 드렸습니다. 나머지 가족들이 하필이면 늦게 귀가하였고 결국 골든타임을 놓쳐버렸습니다.

저는 평생 이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어머니께서 의식 없는 위급한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까. 그래서 저는 꼭 가정에서 위급한 상황을 가정하고 온 가족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실제처럼 행동으로 자주 연습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께서 뇌출혈 상태셨고 큰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골든타임을 놓쳐서 후유증이 크게 남았습니다. 편마비에 대화도 어려워지셨습니다. 나쁜 일은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이 맞는 건지. IMF 사태에 저희 집 경제사정이 좋지 못했습니다. 수술비, 입원비, 간병비 등등 계속 들어가는 큰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알 수 있었습니다. 경제사정이 좋지 못하여 어머니께 좋은 재활치료와 환경을 제공해 드리지 못하는 것을요. 예전의 건강하신 어머니의 모습으로 돌려드리고 싶은데 저는 그럴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계속 죄책감과 무력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래도 요양원이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아니었으면 더 열악한 상황에서 어머니 간병을 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어머니께서는 오랜 시간 병원 침대에 누워 계시면서 근육이 점점 빠지시고 굳고 엉덩이에 욕창이 생기고 식사도 어려워지시는 과정을 거치셨습니다. 근육이 굳지 않게 주물러드리고 움직여 드리고 기저귀 갈아드리고 씻겨드리고.. 힘이 들지만 환자인 어머니께서 제일 큰 고생이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예전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제가 어머니의 장애를 대신해서 짊어지고 싶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서 바로 잡을 수만 있다면 그럴 기회만 있다면 어머니께 더 잘해드리고 건강검진 해야 한다고 알려드리고 골든타임이 지나기 전 병원에 가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불가능한 다짐을 계속 반복했습니다. 결국 현실은 어머니께서 나아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족들은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가족에게 말하지 못했지만 당시 비관적인 생각으로 잠식되어 있었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시는 날 나도 죽어야지. 그날까지는 어머니를 위해 살아야 해.'라는 마음으로 버티기도 했었습니다. 친한 친구에게 또 담임선생님께 위로와 격려를 많이 받으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견디기가 힘이 듭니다. 어머니께 죄송하지만 애써 어머니를 떠올리지 않으려 했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한동안 지하철 타다가도 눈물이 나고 세수하다가도 눈물이 나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복잡한 심정이었습니다. 차라리 나은 거라고 생각하며 버텼습니다. 어머니께서 얼마나 요양원에서 답답하셨을까 하늘을 휠휠 날으셨으면 좋겠다. 그 어떤 장애물도 없이 자유로워지셨으면 좋겠다. 다음생이 있다면 나 같은 딸 말고 더 멋진 인생 사셨으면 좋겠다.. 보고 싶지만 자유로운 어머니가 행복하실 것 같아서 자유로운 어머니로 기억하고 싶어서 애써 아프셨던 어머니를 기억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머니 다음생은 꼭 원하는 바 이루시고 행복하세요 꼭이요!! 어머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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