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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포트킨 Dec 17. 2023

나의 첫 서유럽여행기

2023년 7월에 서유럽에서 느낀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들의 수집기 

나는 말이지... 이제 여행을 떠나려 한다.

여행은 정해진 일과와 일상성에 대한 하나의 반역이다.

또한, 나는 나만의 공간을 유지하며 유럽 각국을 여행할 것이다.

기차나 버스와 같은 한정된 공간에서 타인의 체온과 숨결을 느끼는 것이 아닌 나만의 자동차에 의한 자유여행!

어찌어찌 2주 동안의 휴가를 .. 눈치를 보며 다시는 이 사람들을 안볼 각오로, 하지만 의외로 쉽게 냈다.

이번 여행지 중의 하나인 프랑스와는 대조되는 대한민국의 월급노동자들에게 이러한 2주간의 장기휴가는 주위의 부러움을 사기도 하지만 우려와 어딘지 모르게 찜찜함을 남기는 그러한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여하튼 나는 첫번째 여행지인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독일에 도착해서 제일 처음 한 일은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공항 렌트카 업체에서 우리가 타고 다닐 차량을 수령하는 것이었다. 계약서 상 예정 렌트 차종은 폭스바겐 T-ROC이었으나 아우디 A3 해치백으로 변경되었다. 공항 주차장을 벗어나 시내로 접어드는 시간은 길지 않았고 처음 가본 곳을 운전하는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약간은 몽롱한 상태에서 흐릿한 물속을 유영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하여튼 나는 운전을 잘 해내고 있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렌트한 나의 유럽여행 동반자

프랑크푸르트 거리의 첫인상은 마치 태국 방콕의 도심을 지나는 느낌이라고 할까. 역시 콘크리트 구조물이 주는 기운은 비슷하다. 우리 가족 첫날 숙소는 프랑크푸르트 도심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성은 좋으나 주차장이 편하지 않았다. 호텔 직원에게 물어보니 금요일 저녁부터 주말까지는 길가 빈자리면 괜찮다고 하여 호텔 근처 빈 자리에 차를 주차한다. 마침 우리는 금요일 저녁이었다.


호텔에 짐을 간단히 풀어놓고 저녁을 먹을 겸 우리는 근처로 산책을 나간다. 독일에서의 일몰시간은 꽤 늦다. 9시 30분이 돼서야 해가 지다니.. 북반구의 고위도 지방은 낮이 참 길다. 근처에 마인강이 있었고 강변을 따라 걷고 있는 우리에게 보여지는 마인강의 모습들은 더없이 예뻐보였다. 나는 내 인생 중 처음으로 독일에 왔고 지금은 독일의 심장 프랑크푸르트 마인강의 석양을 보고 있다는 이 사실에 뭉클해졌다. 

해질녘 마인강의 고즈넉한 풍경

우리는 뢰머광장으로 가서 불그스름해진 건물들의 창들을 감상하며 그 곳에 있는 식당 중 한 곳에서 저녁을 주문했는데 슈니첼, 맥주, 감자튀김 정도를 먹은 것 같다. 장시간의 비행기 여행으로 인하여 혀가 깔깔했고 우리 가족 모두 쾡한 모습으로 프랑크푸르트의 깊어가는 저녁을 받아내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깨끗하게 정리된 프랑크푸르트의 거리, 트램 그리고 유로타워의 모습은 밤이었지만 분위기 있는 각각의 매력이 있었고 나는 이런 차분하고 한가하고 여유 있어 보이는 독일의 모습이 좋았다. 

둘째날 이었지..

7시간의 시차 탓일까? 새벽 5시30분에 눈이 절로 떠진다. 편안한 침대였지만 이제는 몸시계가 피곤을 상대로 정확한 리듬을 보여주며 판정승을 거둔다. 똑같은 7시간의 시차가 있는 몇년 전 크로아티아 여행 때는 이렇진 않았는데.. 확실히 나이 들어가며 이런 몸시계의 감각은 예민해진다. 와이프와 딸은 아직 곤히 잠들어있는데 이런 아침의 여유는 한국만이 아니라 프랑크푸르트에서도 동일하다. 인스턴트커피(Dallmayr Gold) 한 봉지를 머그컵에 담아 뜨거운 물을 붓는다. 연한 아메리카노 그 맛이다. 창 너머로 기지개를 펴는 프랑크푸르트의 아침을 - 처음 접하는 이 커피와 함께하는 이 기분.. 좋다. 나는 이런 분위기를 잘 탄다. 가족들이 조금 더 곤히 자기를. 좁은 호텔방이지만 이 공간 이 시간을 나는 100% 음미한다. 


오전 일정은 시내를 둘러보는 것이었다. 다시 마인 강변으로 나갔다. 어제와는 다른 화창한 모습으로 반겨주었는데 몽글몽글하고 상큼한 구름은 덤이었다.

마인강의 상큼한 오전자태와 몽글몽글한 구름들

강변을 따라 서쪽으로 걷다보니 그 유명한 아이젤너다리(Eiserner Steg)이 눈 앞에 고고한 모습을 드러낸다. 마인강 폭이 크지 않아 긴 다리는 아니지만 왠지 모를 중후함과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철교지만 용접구조물이 아닌 리벳접합 방식으로 조립되었고 도장상태도 상당히 양호해보였다. 독일의 설계, 제작, 설치 그리고 유지관리기술이 현현된 멋진 교량이다. 다리 안쪽 핸드레일은 수많은 자물쇠가 걸려있었는데 - 우리나라 남산타워 자물쇠장소(?) - 이러한 모습은 무척이나 낭만적이다. 수많은 자물쇠에는 그것들을 걸어 놓은 사람들의 사연이 있겠지. 여러 언어가 재잘재잘 그들의 희망으로 자물쇠 몸통 매끄러운 금속 표면에 새겨져있다. 이들의 소망을 모두모아 프랑크푸르트의 푸른 하늘에 높이 훨훨 날려 보내본다.

아이젤너다리의 정겨운 자물쇠들

괴테하우스! Frankfurter Goethe-Haus! 아마도 나는 프랑크푸르트에서 한 곳만 가야하는 상황이 된다면 여기를 선택할 것이다. 그만큼 가고 싶어했던 곳이고 괴테의 저작들 - 파우스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탈리아 여행기 및 괴테와의 대화 - 와 같은 책들을 읽었다. 이런 책들은 저자에 대한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실생활은 그렇지 않았더라도 작품을 통해 그 저자는 가공되고 고양되고 셀럽이 된다. 물론 작품들이 호평을 받고 문학적이나 학문적으로 가치가 있을 때 그렇다는 말이다. 괴테 역시 유한계급의 혜택을 받은 문학적인 DNA와 탁월한 통찰력을 보유한 선택된 인물이지 않았을까? 여하튼 나는 괴테의 작품 중 파우스트를 가장 깊고 자세하게 읽었다. 나보다 200년 전 사람인데 어떻게 이런 상상력을 발휘하여 시공간을 초월한 멋진 문학작품을 만들었는지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괴테 하우스를 방문하고 나오면서 방명록(Gastebuch)을 들여다 보았는데 세계 각지에서 여기를 방문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흥미로운 일이었다. “우리 가족, 유럽여행의 첫 목적지로 여기에 오다. 괴테의 전우주적 정신과 숭고한 이상을 오래오래 기억하겠습니다!” 라고 또렷하게 한글로 방명록 마지막장에 남겼다.

정겹고 온화해보이는 괴테 초상화와 약간은 어색한 의자

자! 이제 우리 가족은 우리의 숙소가 있는 스위스의 Hondrich로 떠나야 한다. 여기 프랑크푸르트의 호텔에서 스위스 에어비앤비 별장까지는 구글 지도에서 462km 거리에 4시간 39분으로 표시된다. 흠. 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독일의 고속도로를 운전할거고 게다가 국경을 넘어야 한다고.. 부담감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 가족들은 뭐 대수롭게 생각하지는 않아보였다. 운전하는 건 나라고! 허허허...


독일의 고속도로는 우리나라의 그것들과는 다른 사항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 과속측정 카메라가 없다는 것이다. 이건 다른 유럽의 국가도 마찬가지였다.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모두 다 정확히 한 군데도 없었다. 다만 고속도로의 1차선은 추월차선으로 지정되어 추월을 위한 고속차량만 운행하였고 나머지 차선들은 속도제한이 130km였다. 우리 나라에 비하면 꽤 빠른 속도인 편이다.

둘째, 차선 변경시 방향표시등을 작동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방향표시등을 차선 변경시 작동을 시키는 게 훨씬 안전확보에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이해가 안되었다. 암튼 고속도로에서 방향표시등을 작동하는 차는 오직 내가 운전하는 차였다. 

셋째, 독일의 고속도로에는 톨게이트가 없다. 이건 Vignette이라고 선불제 카드를 구매해야 하는 스위스를 제외하고는 이탈리아, 프랑스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탈리아, 프랑스는 통행료를 받는 톨게이트들이 촘촘하게 있다. 이 사실은 내가 독일을 좋아하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독일의 고속도로는 주말 오후인데도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았다. 스위스로 가는 길이라 그런지 캠핑카가 도로 중간 중간에 많이 보인다. 아마 주말을 스위스의 자연과 함께 하려는 사람들이려니.. 암튼 나는 생전처음 달려보는 독일의 고속도로를 편안하게 주변의 경치와 함께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고속도로처럼 앞에 보이는 차들이 없다고 하여 1차선을 주행하려면 최소 180km 이상의 분노의 질주를 각오해야한다. 그렇지 않다면 순식간에 차 뒤를 들이받을 정도로 달려오는 터프한 독일의 레이서들을 감당할 수 없을 거다. 여기는 바로 그 아우토반이다. 


몇 시간을 달렸나? 암튼 우리 차는 스위스 국경을 앞두고 있다. 경찰은 아닌 것 같고 몇 명의 국경수비대(?) 같은 사람들이 차선마다 각 차들 앞 유리창에 Vignette이 잘 부착되어있는지를 체크하고 있다. 그 중 한명의 국경수비대원이 우리 차를 세우더니 운전석 창문을 열어보라고 한 후 Vignette을 운전석 앞유리 오른쪽 위편에 붙여야한다고 친절하게 이야기 해준다. 여기 유럽은 - EU 가입국가에 한하겠지만 - 국경을 넘어갈 때 국경검문이 없다. 이번 여행기간 중 국경을 넘은 경우는 독일>스위스, 스위스>이탈리아, 이탈리아>프랑스, 프랑스>독일 총 네 번 이었는데 국경검문은 한 번도 없었다. 방금처럼 Vignette을 바른 위치에 부착하라고 차를 잠깐 세워 친절하게 안내해준 일 이외에는 국경통과는 프리패스다. 역시 유럽은 하나다.

내 이야기는 계속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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