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서유럽서 느낀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들의 수집기 (두번째)
이제 여행에서 공간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시간으로 환원되어간다. 이번 여행에서 느낀건 구글맵이라는 도구로 인하여 타지에서 낯선 타인과의 대화가 단절되었다는 것이다. 굳이 그 지역의 길을 묻거나 관광지, 식당 등에 대한 정보를 낯선 그 지역의 사람들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다. 우리의 전능하신 구글이 다 친절하게 수치화하여 상세하게 알려준다. 아 구글의 세상이여!!
전날과 마찬가지로 여기 시간으로 새벽에 눈이 떠진다. 자.. 오늘은 유럽의 지붕인 융프라우를 보는 날이다. 얼마나 멋질까.. 보다는 개미떼 같은 관광객들의 행렬이 걱정된다. 경이로운 현상을 체험할 때 나는 한적한 분위기 - 혼자여도 좋다 - 에서 더 감동을 느낀다. 북적거림이 나에게 좋진 않다. 나는 느슨한 연대가 더 좋다.
우리 집에서 융프라우를 향해 나선다. Speiz역 까지 가야하는데 마땅한 교통편이 없어 우버 택시를 부르기도 어중간해서 걸어 내려간다. 3.1km의 거리였는데 아침에는 호기롭게 걸어갔지만 저녁 귀가길에는 방전된 체력으로 도전해야할 끔찍한 오르막길이 될지는 충분하게 상상하지 못했다. 역까지 가는 길의 다양하고 아기자기한 주택들은 저마다 개성 있는 스위시한 집들이었다.
Speiz역에 도착하니 고즈넉하고 한가로운 모습이 좋았다. 특이하게도 이 역의 플랫폼에 설치된 강구조물의 도장은 일반 페인트가 아닌 아연도금이었다. 일반 우레탄 도장들과 비교하여 처리과정이 훨씬 복잡하고 어렵긴 하지만 방식(Anti-Corrosion)에 있어서는 너무나 우수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방식(Type)이 아연도금이다. 글쎄다. 이 지역이 습기가 많은 지역인가 아니면 장기간 유지보수가 필요 없는 구조물로 설계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암튼 반짝거리는 아연도금 마무리는 스위스의 수려한 풍경과 어울려 보기에 좋았다.
우리 열차는 그린델발트 터미널에서 멈추고 우린 여기서 케이블카를 타고 20여분간 융프라우를 향해 산 높은 곳을 향해 꾸역꾸역 올라간다. 글쎄.. 융프라우가 주는 영감이나 감동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아름다운 설산이라고? 아.. 여기가 유럽의 지붕이라고 하더라구... 그정도 였다. 뭐 사람마다 감정의 자극 포인트가 다른거라서 그럴거라고 생각해보지만 여긴 많은 사람들의 Must go 임과 동시에 머나먼 거리를 비행기, 자동차, 열차의 수고를 들여서 힘들게 온 곳 아닌가? 최대한 눈에 담고 코로 냄새를 들이마시고 귀로 바람소리를 듣고 공기를 만져보려고 많이 애썼다.
융프라우에서 내려오는 열차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아름답다. 소들이 산비탈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듬성듬성 자리잡은 집들, 구불구불한 길들, 그리고 이러한 풍경을 품고 있는 몇 폭의 그림같은 산과 산맥들! 언어로 표현하긴 좀 힘들다.
열차 창 너머로 계속 폰의 카메라로 이런 모습들을 담으려 하지만 잘 안 나온다. 여행가서 느낀건데 바로 그 시간 그 자리에서 완전히 몰입을 한다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 사진? 그따위 것... 개나 줘버리라고 해.. 그냥 오감을 동원해서 몰입하는 것 바로 그것이 여행의 묘미다.
우린 어느새 Wengen Station에 도착했다. 이 곳도 멋지긴 마찬가지다. 한 건 없어도 점심 시간이 훌쩍 넘어 배가 고팠다. 우린 구글 검색의 도움을 받아 퐁듀 맛집으로 가서 이것저것 - 내 기억으로 퐁듀, 생선필렛, 뢰스티 - 정도였다 주문해서 맥주와 함께 허겁지겁 먹었다. 드디어 나는 스위스의 식당에서 스위스 퐁듀를 먹었다는 것에 만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이맛이지!! 정도는 아니었어도 치즈의 맛이 짤 정도로 강하게 느껴지는 뜨거운 퐁듀의 풍미는 알프스 산맥에서 내려오는 신선한 가운과 어울려져 꽤 괜찮았다. 지금 그때를 돌이켜보면 너무 좋았었다라고 하는게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퐁듀와 맥주와 함께한 멋진 점심을 저 뒤편 식당에 남겨두고 터덜터덜 다시 Wengen Station을 향하여 걸어가면서 멋진 묘지공원을 만나게 된다. 나중에 파리에서도 느꼈지만 유럽의 묘지공원은.. 참 멋지다! 국내 추모공원은 그동안 많이 봐서 그런지 몰라도 여기는 그것보다는 훨씬 개방적이면서도 죽음을 더 편안하게 음미할 수 있는 그런 편안한 공원이었다. 다시 한 번 “메멘토모리”를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나는 근처 벤치에 드러누워 몇 잔 맥주의 술기운을 저 옆 알프스 산맥으로 불어내고 있었다.
그리고는 여기 스위스에서 남동쪽 어디 아래 있을 크레타섬 니코스 카자찬키스의 묘비에 쓰여있다는 문장이 또 생각난다. “I hope for nothing, I fear nothing, I am free"
돌아오는 길은 얼마나 지치던지.. 선선한 스위스라지만 그래도 날씨는 7월 한가운데를 지나는 여름이다. 우리 에어비앤비 숙소는 Speiz 역에서 3.1km의 거리다. 아침에 숙소에서 출발해 역으로 갈땐 내리막이라 몰랐다. 우리 집으로 가는 오르막길! 얼마나 가파르고 땀이 나던지.. 이렇게 스위스의 마지막 저녁이 지나간다. 내일은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 밀라노로 간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찻길로 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있었다. 이래서 인생과 여행은 모르는거지...
아무튼 나는 집 앞 마당에서 그림보다 더 그림같은 노을을 보며 감상에 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