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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포트킨 Dec 20. 2023

나의 첫 서유럽여행기

2023년 7월 서유럽서 느낀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들의 수집기 (세번째)

난... 이번 여행을 가기 전에 이 책은 꼭 여행에 가져가서도 읽겠다고 다짐했다.

바로 "철학자의 여행법"이다. 원제는 Theorie du voyage", 지은 사람은 미셀 옹프레였다.

그 책 75페이지에 "가장 위험한 여행 중 하나는 우리가 평소에 한 나라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생각이 실제와 얼마나 일치하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 떠나는 여행이다" 이 구절에 난 밑줄을 치면서까지 공감했다. 이번 여행은 편견, 선입견이 없는 그대로 느끼는 여행이 될거야...


스위스에서 만나는 두 번째 아침. 어제 저녁 융프라우 구경이 힘들었나 보다. 스위스의 아름다운 저녁을 만끽하지 못하고 바로 잠들었다. 오늘도 눈이 떠지는 건 새벽 5시 30분이다. 한국은 폭우로 4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는 뉴스를 CBS레인보우를 통해 들었다. 오송역 어디 근처라는데...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오늘 아침에는 이탈리아 밀라노를 향해 출발한다. 예상거리는 295km, 소요예상시간은 4시간 15분. 뭐.. 이 정도는 운전할만한 거리지.. 괜찮아 보였다.. 과연??     


알프스산맥을 넘어가는 거창한 계획을 앞두고 우리는 장시간 여행을 위한 간이식량을 차에 비치해야했다. Speiz역 옆 Migros 마트로 가서 간단한 장을 보기로 했다. Migros도 협동조합이지만 유럽엔 COOP이 참 많이 보인다. 협동조합의 힘이 느껴졌다. 대기업이 아닌 조합원 결사체가 이런 경제활동을 한다는 것이 국가독점자본주의 - 이 단어가 지금의 우리 사회에 적합할지는 정치경제학에 맡기고 - 대한민국에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 스페인 협동조합  몬드라곤에 대한 열풍이 몇 년 전 우리나라에 불기도 해 나도 책을 사서 읽어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예전보다 줄어든 나에겐 이런 경제 활동체가 너무나 이상적이고 멀어 보인다. Migros 마트 내의 빵들과 커피들이 예쁘고 맛스러워 보여 사진 몇 장을 담았다.

Migros 협동조합 마트 내 맛깔스러워 보이는 빵들

주유소에서 충전을 한 후 구글지도에서 보이는 그림에 따라 나는 알프스 산맥을 넘으면 바로 이탈리아의 그 밀라노에 도착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멋진 스위스 풍경들이 렌트카 속도만큼이나 휙휙 뒤로 사라져가는 것이 아쉬웠다. 지금 눈에 많이 담아야지. 지금 바로 이 순간이 최선이라구! 여기선 “카르페디엠” 아니던가? 

한 시간쯤 갔을 거다. 갑자기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여긴 한가롭고 교통체증과는 거리가 먼 알프스 산들 어디쯤 그 스위스의 도로 아니던가? 어디 우회로도 없었다. 우리는 하릴없이 마냥 차 안에 대기할 수 밖에 없었다. 한참을 대기하는데 저기 멀리 차량들이 조금씩 앞으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우리 차는 조금씩 전진했지만 얼마 안가 다시 하염없이 대기해야 되는 신세였다.. 이게 뭐지??


나중에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알프스 산맥 보호를 위해 자동차가 산을 넘어 통행하지 못하게 도로를 차단한 것이다. 그렇다면 산을 넘어 목적지에 가기 위해서는 비행기 아니면 기차 정도가 아닐까? 우린 산을 넘어가는 기차에 우리 차를 싣기 위해 장시간을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참... 나도 우리도 모두 대책은 없었다. 이런 줄도 모르고 당황했더라는.. 하지만 내가 직접 운전해서 열차 - 알프스 산맥을 관통하는 - 에 차를 싣고 열차 화물칸에서 알프스 산맥의 다양한 모습을 본다는 건 색다르고 이국적인 경험이었다. 이게 바로 현장에서 부딪히는 여행의 또 다른 재미가 아니었나 싶다.

Kandersteg 역에서 기차에 적재를 기다리는 차량행렬들
스위스 Kandersteg에서 goppenstein으로 가는 기차안

30분정도 달린 후 기차는 Goppenstein역에 정차하고 차들이 하나둘씩 빠진다. 젠장.. 난 구글맵이 알려주는 대로 밀라노를 향해 갈 수밖에 없다고.. 어디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평화로운 스위스의 여러 마을들을 지나다보니 또 다른 차량적재 열차역에 도착한다. 여긴 Brig 이라는 곳인데 여기서도 한참을 대기한다. 구매한 열차표를 보니 도착지는 Iselle다. 거긴 자그마치.. 드디어 이탈리아다! 가슴이 설렌다. 

저 멀리 보이는 Iselle역! 드디어 이탈리아에 입성하는가?

두 번의 열차운임은 각각 27CHF, 26CHF다. 싸진 않다.. 30분간의 국경을 넘는 차량적재 열차여행 후 우린 Iselle역에 도착한다. 여기가 이탈리아야?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국경검문도 없다. 얼마나 리버럴한 유럽인가! 오~ 솔레미오! 여기 Iselle는 스위스와는 다른 거친 느낌을 주었다. 공간의 단절이라고 해야 하나.. 국경은 없지만 분명히 두 나라 사이 풍경에서의 차이점이 마치 단절된 공간처럼 국가간 경계성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내 인생에 있어 이탈리아는 처음이라 차 안에서 정신없이 Iselle 주변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눈으로 보는 것과 사진으로 나타나는 것은 너무나 다르다. 난 밀라노를 향해 차를 몬다. 차들도 드문드문 얼마 없다. 역시 과속카메라는 없었고 차를 때려 밟는 성향은 서유럽 어디나 비슷하다.  


벨기에, 네덜란드에 있는 회사들과 일을 할 때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정규 근무시간이라는 개념이 유럽에 비해서는 아직도 약하다. 그러나 일반적인 유럽인들은 기다리는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느긋한 속도로 딱 그 Working Time 만큼 일한다는 것을 느꼈다. 야근은 기대하기 힘든 것이 유럽의 일하는 스타일이지만 드라이빙에 있어서는 조급함 그리고 속도부심이 유럽인들에겐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우리 차는 어느새 밀라노로 진입했다. 처음 와본 밀라노를 렌트카로 입성하는 느낌은.. 마치 꿈속을 걷는 것 같았다. 물론 이 여행 전 검색 등을 하며 이 밀라노 거리를 예습하긴 했지만 프랑크푸르트에서처럼 난 짜릿한 일말의 기시감도 없는 신세계를 경험한다. 

드디어 난 밀라노 시내에 진입하여 복잡치 않은 길들을 유유히 지나친다

COOP 마트 지하에 대충 주차를 하고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우리 집으로 갔다. 가격은 어마어마하지만 내부 면적은 애개개다.. 뭐 유럽이야 그런다 치고, 열고 들어가기 너무도 힘든 입구문도 그렇다 치더라도, 엘리베이터의 기막히게 좁은 공간은 참 힘들었다. 2명 이상은 캐리어를 지니고 타기 힘들어 우리 가족 3명은 졸지에 이산가족이 되어 두 번 나누어 탔다. 엘리베이터 정격용량은 325kg이고 인원은 4 person이란다.. 

밀라노 우리 숙소가 있는 건물 내 아담한 엘리베이터

참 내.. 건물들이 오래되어 그런다고 하지만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사는 그네들의 생활방식도 이해해야지.. 이런게 여행이지... 싶더라도 한 여름에.. 에어컨도 설치 안 된 그런 엘리베이터를 전혀 모르는 사람 넷이 탄다는 가정을 하면 짜증이 스멀스멀 기어오르지 않겠는가... 아니 지금의 나처럼 캐리어를 7월의 여름 쨍볕에 10분 이상을 끌고 와서는 힘들게 건물 출입문 암호를 해독하듯 열고 좁디좁은 엘리베이터를 한 번에 타지도 못하고 먼저 두 사람을 보내고 나 혼자와 캐리어 1개와 함께 타도 좁은 이 엘리베이터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도 따뜻한 감정은 생기지 않는다. 스위스 Hondrich에서 여기 밀라노 숙소까지 거리는300km가 조금은 안되지만 7시간 이상 걸렸다. 아침 10시에 출발해 지금 캐리어 풀고 숙소에서 잠깐 늘어진 이 시간이 오후 5시다. 


숙소에서 3km 떨어진 두오모 대성당으로 가기 위해 난 유럽에서는 처음으로 우버앱을 써본다. 거리는 3km인데 17유로란다. 확실히 비싸네.. 그래도 국경을 넘어온 여독이 남아있어 도보나 버스보다는 편한 우버택시를 타기로 했다. 몇 분 후 쨔잔하고 앞에 펼쳐진 두오모 대성당 앞 광장은 눈부신 7월 여름 저녁의 햇살을 가득 받아내고 있었다. 여기는 관광지고 인종 전시장이다.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저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이 시간들을 즐기고 있었다. 아찔할 정도로 화려하고 들떴다. 그런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두오모 대성당은 우람하고 정교하다. 

우람하고 정교한 두오모 대성당

어둑어둑해지는 광장 한편에서는 늙은 가수의 버스킹이 있다. 난 가만히 한켠에 서서 그의 곡을 들었다. “Stairway to heaven"과 ”Hotel California"를 거친 목소리로 기타와 함께 힘겹게 뽑아내는데 쇠잔하면서도 아련한 느낌이 들었다. 화려한 두오모 대성당의 거리와 대조되는 쓸쓸한 모습이다. 이 것도 밀라노의 모습이려니...      

저녁은 대성당 뒤편 어디서 해결했다. 와인과 햄슬라이스, 파스타 정도를 시켜 먹었는데 주문하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소리질러 부를 수도 없어 테이블에 앉아 우리의 주문을 받아줄 식당 직원들의 눈 마주침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는데... 주문하기도 어려웠고 주문한 음식을 받는데도 꽤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난 지금 내 인생 처음으로 이탈리아에 왔고 그 중 제일 아름다운 밀라노에 있지 않은가? 그게 좋은거지..

두오모 대성당 앞 어둑해진 거리에서 더 빛나는 멋진 건물

우리는 밀라노의 마지막 밤을 밋밋하게 보내기 아까웠다. 여기 두오모 대성당에서 우리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21시가 넘어서야 해가 지는 여기 밀라노의 밤거리는 아름다웠지만 7월 여름의 더위와 습함은 여기도 편하지 않았다. 집까지 걸어오며 밀라노의 얼굴들, 건물들, 가게들, 트램들, 버스들 거리들 그리고 뜬금 없는 레닌 벽화를  내 폰에 내 머릿속에 그리고 내 마음속에 열심히 담았다.. 지금 여기 밀라노를 기억하는 이 순간은 영원히 나에게 내재되어 있을거다.  

밀라노 밤거리를 휘도는 트램
밀라노 우리 집 근처 레닌 벽화... 좀 뜬금 없어 놀랐다

난 내일 아침엔 로마를 향해 떠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몇 시간 밖에 만나지 못한 밀라노가 너무나 아련하고 그립고 사랑스럽다. 생전 처음 와 본 밀라노를 채 하루도 못보내고 떠나야한다니. 이런 간절한 감정은 대상과의 접촉시간이 짧을수록 더 강렬해진다. 몇 일 뒤 만나게 될 제노바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껴야했다. 


내 이야기는 계속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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