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글을 쓴다. 사실 요즘 글쓰기가 너무 귀찮아서 안 했다. 근데 아마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걸 보면 굉장히 버거운 상황에 온 거다. 위기 상태일지도? 올해는 유독 뭔가 급한 마음이 크다. 무언가를 빠르게 만들어서 빠르게 보여야 하니까. (거기에 평가까지 곁들여지는) 그게 두려운 건 아니다. 몇 년간 쌓아온 내 실력에 의심은 하지 않는다. 단지 정신이 사납고 머릿속이 진짜 뒤죽박죽이다. 약간 비유를 하자면 방을 1/3만 치우다가 말다가 다시 어질러지면 또 1/3만 치우는 상황 같다. 결론적으로는 계속 더러운 상태.
사실 나는 성향상 급하게 무언가를 절대 하면 안 되는 성격이다. 느긋하게 주변을 살피고 관찰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질 좋은 창작물이 나온다. 특히 21년~23년에 좋은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다. 뇌가 차분하고 물파스 바른 것처럼 시원한 상태였다. (가끔은 좀 물을 많이 머금은 느낌이라 불쾌하기도 했지만) 그래서 흠.. 그때 왜 내가 그런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나 생각해 보면 진짜 많이 걸었던 것 같다. 사색의 시간을 정말 많이 가졌다.
나라는 인간을 잘 쓰려면 멍 때리고 유희를 위한 관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한마디로 쓸데없는 짓을 많이 해야 된다는 것. 아이디어는 물론이고 미친 상상력이 놀랄 만큼 잘 발휘돼서 내가 평소에 이런 아이디어까지 낸다고? 스스로의 능력이 과대평가될 정도니까. 근데 지금은 뇌가 바짝 마른 거 같다. 수분기 하나 없는 건조한 상태. 현실성이 짙은 목적에 의한 움직임은 오래가지 못했다. 역시 난 이상적인 사람이구나 다시 한번 체감한다. 그렇다고 ‘현실’을 좇지 않는 건 아니다. 근데 ‘이상’이 60% 이상이어야 한다. 그래야 현실이 따라온다. 또 한 번 아차 한다. 나도 그 누구보다 탐욕스러운 현실주의자가 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게 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뇌가 제대로 숨을 못 쉬는 것 같다. 오늘 어떤 도서관에 갈지 조차 정하지 못할 정도로 결정장애가 왔으니까. 상태가 최악인 것 같아서 그냥 동네 도서관에 갔다. 눈이 가는 대로 책을 골랐고 좋은 책들을 몇 권 발견했다. 지금 나의 상태와 정확히 일치하는 책도 찾았고, 책의 제목들로만으로도 말도 안 되는 괴상한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메모장에 기록도 했다. 확실히 도서관에 가길 잘한 것 같다. 느긋하게 책도 보고 딩굴댕굴 있었다.
그리고 걸었다. 평소에 내 걸음이 굉장히 빠른데 천천히 걸어봤다. 사실 빠르게 걷는 이유가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 위해, 그리고 건강을 위한 목적이었다. 오늘은 목적 같은 거 다 버리고 내 발걸음 하나하나를 느끼면서 걸었다. 주변을 살피고 사람을 살폈다. 특히 음악을 듣지 않으면서 걸으니 시간이 더 느리게 가는 것 같다. 오늘은 하루가 정말 느리게 갔다. 난 왜 맨날 시간이 없다며 온갖 신경질은 다 냈을까? 시간은 차분히 그대로인데
여유는 나를 숨 쉬게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