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에서 드로잉 배우며 두 달 살기
비엔나에 도착한 둘째 날부터 드로잉 수업이 잡혀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했지만 긴장돼서 가슴이 답답하고 떨렸다. 여행을 계획할 당시 너무 흥분해서 터무니없는 용기가 났던 걸까? 이 나이에 어쩌자고. 아무튼 수업 비용을 한국에서 다 지불했으니 무조건 참석해야만 했다.
집에서 쉬다가 점심을 먹고 스케치북과 연필을 챙겨 남편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 드로잉 수업을 받을 Die Kunst VHS 교육기관의 위치와 수업받을 교실을 미리 찾아보기로 했다. VHS는 공공 평생교육기관으로 다양한 강좌가 있고 각종 시험이나 행사가 열리는 듯했다. 또 여러 지역에 분점처럼 VHS가 있다. 아들의 여자 친구 소피아는 VHS에서 독일어 능력 시험을 봤다고 했다.
구글 지도를 보고 학교는 쉽게 찾았지만 건물이 크고 복잡해서 수업받을 교실 찾기는 쉽지 않았다. 게시판의 빼곡한 종이 중 교실 안내문도 있었겠지만 독일어로 쓰여있어서 읽을 수 없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가며 강좌를 담당하는 사무실을 겨우 찾아 교실을 안내받았다.
수업 시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학교 밖으로 나왔다. 동네를 구경하며 걷다 보니 맥도널드가 보였다. 햄버거류를 파는 식당과 커피와 음료를 파는 카페로 분리되어 있었다. 메장 안에는 사람이 많았다. 유럽식이 아닌 미국식 햄버거 매장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우리는 카페에서 커피를 샀다.
수업 시간이 되어 떨리는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섰다. 이젤이 둥그렇게 놓여 있고 몇 명 안 되는 수강생의 연령은 다양했다. 모델이 이젤들 가운데에 포즈를 취하고 앉았다. 담당 강사는 인사하고 출석을 불렀다. 첫날이라 그런지 강사의 이야기는 끝없이 계속되었다.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곤혹스럽지만 그래도 미소 짓고 앉아있는데 강사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인 듯했다.
사람들이 진지한 자세로 이젤에 종이를 올리고 모델을 보며 그리기 시작했다. 나도 눈치껏 그렸다. 모델은 10분마다 동작을 바꾸었다. 몇 동작 후에는 시간이 점점 늘었고 모델을 자세히 묘사해야 했다. 강사는 전체를 향해 설명하고 가끔씩 가까이 와서 내 그림의 어색한 부분을 지적하며 지도해 주었다. 집중해서 그리다 보니 어느덧 두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첫 수업을 무사히 마쳤다. 긴장했던 탓인지 수업이 끝나자 피곤이 몰려왔다.
교실에서 나오니 남편이 보였다. 근처 식당에 예약했다고 해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슈니첼, 파스타, 샐러드에 와인까지 주문했다. 옆 자리에는 어린아이부터 할머니와 할아버지까지 있는 대가족이 화목하게 식사하고 있었다. 잠시 후 중년 부부가 들어왔다. 따뜻하고 가족적인 식당 분위기에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풀리며 느긋해졌다.
다음날은 토요일이지만 아침 일찍 또 다른 미술 수업을 받으러 집을 나섰다. 두 달간 비엔나에 살기로 결정했을 때 미술 강좌를 4개나 신청했다. 당시 무언가에 홀렸던 게 분명하다. 다행히 이날 강좌는 특강으로 진행되는 원데이 클래스였다. 그래도 4시간짜리 강좌라서 만만치 않았다.
수업은 전날과 다른 지역에 있는 VHS Meidling에서 진행되었다. 다행히 건물이 크지 않아 교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유럽 장식에 쓰이는 식물 그리고 패턴 만드는 법' 대충 이런 주제의 수업이었다. 식물을 관찰하고 특징을 그린 다음 패턴으로 만들기 위해 복사하고 자르고 돌려 붙이는 과정을 배웠다. 강사는 나를 위해 독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설명했다. 수강생은 나를 포함해서 5명이었는데 모두 나보다 영어 실력이 좋았다.
완성된 내 작품을 보고 강사는 색감이 좋다고 했다. 칭찬에 기분이 좋고 수업도 재미있었지만, 수업을 따라 가느라 4시간을 계속 집중했더니 지쳐서 파김치가 되었다.
아파트로 돌아왔다. 날씨가 흐리고 보일러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집안은 냉기가 돌았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코까지 끌어 덮어도 뼈까지 시린 느낌이었다. 비엔나에서 두 달간 살기로 결정했을 때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다. 두 달이 아득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