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판도르프 아웃렛과 버거킹에서 비엔나 체험을

비엔나에서 드로잉 배우며 두 달 살기

by 여백

날씨는 우중충하고, 집은 낮에도 빛이 안 들어 어둡고, 보일러에서는 여전히 소리가 났다. 몸은 처지고 기분도 가라앉았다.

그래도 비엔나 생활에 점점 익숙해졌다. 자주 이용하는 슈퍼에서 눈에 들어오는 물건이 점점 많아졌다. 냉동고에 있는, 유명한 카페 '자허'에서 먹어봤던 '자허 도르테'가 눈에 뜨였다. 장바구니에 담았다. 자허 카페는 아니지만 집에서 내린 커피와 함께 단 것을 먹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비엔나에서 지내면 카페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는 거의 가지 않았다. 우리가 빌린 아파트에 커피 내리는 도구가 있어 서울에서처럼 남편은 커피 가루와 필터를 사서 매일 커피를 내렸다.

몇 년 전 비엔나를 여행할 때만 해도 시내의 유명하다는 카페에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가서 볼 때마다 줄이 길고 몹시 붐볐다. 그런 북새통 카페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일주일에 세 번 가는 드로잉 수업은 각 수업마다 강사의 수업 방식이 확연히 달랐다. 두 수업은 사람을 그렸고 한 수업은 식물을 그렸다. 늘 긴장되면서도 재밌었다. 특히 누드 드로잉 수업에서는 내가 그린 사람의 머리 비율이 적당하지 않아 계속 지적과 지도를 받았다. 그림을 제대로 그리려면 보는 눈부터 길러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숙하게 그렸을 때 바로바로 개별지도 해주는 수업 방식은 큰 도움이 되었다.



검색을 하다 비엔나 근교에 판도르프 아웃렛이 유명하다는 정보를 얻었다. 시내에서 판도르프 아웃렛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도 있다고 했다. 특별히 특별히 살 게 있는 건 아니지만 한 번쯤 구경해보고 싶었다. 남편에게 이야기하자마자 바로 홈페이지에 들어가 미술 수업이 없는 날로 왕복 셔틀버스를 예약했다. 왕복 24 유로였다. 대중 교통을 검색해도 큰 차이는 없고 오히려 갈아타는 번거로움이 없어 셔틀 버스를 타는게 유리하다. 커다란 대형 버스에 사람들이 꽉 찼다.


도착하니 깔끔한 건물과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 아웃렛과 마찬가지로 판도르프도 규모가 커서 한 번에 다 돌아볼 수는 없고 관심 있는 매장을 미리 정해야 했다.

블랙프라이데이 세일이 있어 브랜드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20~30% 정도 할인하고 각 매장마다 어떤 제품은 50% 이상 할인하고 있었다.

운동화와 등산복 매장 위주로 둘러보았다. 나는 패딩, 운동화, 모자, 남편은 티, 장갑, 바지를 샀다. 저렴한 물건들이 많아 더 사고 싶었지만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올 때 짐 무게 제한을 생각하며 더 이상의 욕심은 내려놓았다.

점심은 버거킹 매장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일반 식당에 비해 음식값이 저렴하고, 양도 푸짐하고, 음식도 빨리 나와서 그런지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유럽 비엔나에 와서 미국식 아웃렛 매장에서 쇼핑하고 미국식 햄버거를 먹는 모습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쇼핑이 끝나면 세금까지 바로 돌려받을 수 있는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어 관광객에게는 유혹적인 장소였다.

쇼핑을 마치고 예약한 셔틀버스를 타고 비엔나 시내까지 편하게 돌아왔다. 어두운 버스 창밖을 바라보며, 독어 한 마디도 못하면서 그럭저럭 살아가는 우리를 보면 사람이 산다는 것은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이곳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면 서울에서와 마찬가지로 치열한 삶이 전개되겠지만... 이렇게 비엔나에서의 또 다른 한 장의 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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