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에서 드로잉 배우며 두 달 살기
11월 비엔나의 날씨는 흐리고 비도 자주 내렸다. 바람도 많이 불어 음산하고 오후 4시면 해가 저물어 어두웠다. 두 달 사는 동안 해가 비치는 파란 하늘은 몇 번 보지 못했다.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예약했던 아파트는 창문을 열면 다른 건물 벽이 시야를 막아 답답했다. 보일러도 소리만 요란하고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추웠다. (나중에는 보일러를 고치고 따뜻하게 지냈지만) 기분은 처지고 우울했다.
잘츠부르크에 사는 아들이 주말이라 여자 친구 소피아와 함께 방문했다. 아파트가 춥다고 하니 아들은 유럽 집은 다 추운 거라며 엄마가 유난스럽다고 했다. 한국에서 너무 덥게 살았던 거라는 말에 서운함이 울컥 올라왔다.
눈치 빠른 소피아는 라디에이터가 전혀 따뜻하지 않은 걸 보면 보일러에 문제가 있다며 내게 힘을 실어주었다. 그리고 주인에게 전화해 보일러에 대해 이야기했다. 주인이 말하는 대로 보일러를 다시 작동시켜 보았지만 라디에이터 온도는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일단 지켜보기로 했지만 심란했다.
"점점 더 추워질 텐데 여기서 어떻게 두 달을 지내나...."
"그러게요. 두 달, 너무 길게 잡은 거 아니에요?"
"네가 비엔나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멋지다고 했잖아. 꼭 보고 싶었거든. 네 졸업식 보러 오는 김에 크리스마스 마켓도 보자고 아빠한테 말했지. 그래서 아파트 빌린 거고."
"크리스마스 마켓? 크리스마스 마켓은 11월 중순에 열리고 크리스마스 때는 문을 닫아요."
"뭐라고? 크리스마스 마켓인데 크리스마스에 문을 닫아? 난 그거 보려고, 무리해서 계획을 세운 건데..."
소피아가 휴대폰의 검색한 화면을 보여주었다. 비엔나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장소와 개장 날짜 및 설명이 빼곡히 나와있었다. 모두 크리스마스 전에 폐장이었다. 심지어 숙소 근처 쉔부른 궁전은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한 군데가 아니고 이렇게 많다고? 정작 크리스마스에는 문을 닫고? 그러면... 비엔나에서 두 달이나 머물 필요가 없었네."
"그렇죠. 크리스마스에 특별한 무언가를 할 계획이 있다면 모르지만요."
갑자기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당혹스러워 마른침을 삼켰다.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지. 크리스마스 마켓이니까 당연히 크리스마스에 열리는 줄 알았지. 미리 이야기 좀 해주지 그랬니."
"엄마, 언제 나한테 그런 거 물어봤어요?"
"응? 그렇구나... 내가 안 물어봤구나... 알아야 물어보지..."
대화는 그렇게 끝났고 어쨌든 두 달간의 비엔나 살이는 시작되었다.
남편과 쉔부른 궁전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하러 나갔다. 바람이 많이 불어 쌀쌀했다.
입구의 커다란 크리스마스 상징 조형물과 안쪽에 있는 커다란 나무의 크리스마스 장식은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어두운 저녁이 되면 더 아름다울 것 같았다.
똑같이 만들어진 작은 상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크리스마스 장식품, 그릇, 모자, 인형, 기념품, 그림 등 온갖 다양한 물건과 먹거리를 팔았다. 한편에는 관람차도 돌아가고, 작은 스케이트장도 있어 아이들은 스케이트를 탔다. 우울했던 기분은 사라지고 분위기에 취해 상점들에 놓여 있는 아기자기하고 예쁜 물건들을 구경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손에 예쁜 컵을 들고 있었다. 가만히 지켜보니 따뜻한 포도주였다. 따뜻한 포도주는 크리스마스 마켓의 상징인 듯했다. 우리도 오렌지를 넣고 끓인 따뜻한 포도주와 소시지 넣은 빵을 샀다. 달착지근하고 따뜻한 포도주를 마시니 몸이 따뜻해졌다.
따뜻한 포도주 값은 컵 보증금까지 포함되어 있어 비쌌다. 컵이 예뻐서 기념품으로 집까지 가져갈까 고민하다 컵을 반납하고 5유로 보증금을 돌려받았다. 도자기 컵이 무겁고 깨지기 쉬워 집으로 가져가는 대신 사진만 남겼다.
쉔부른 궁전에서 나와 비엔나 중심가로 향했다. 거리에 사람들이 많아 활기찼다. 작업차량까지 동원해서 골목 높이 크리스마스 장식을 설치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해가 지자 웅장하고 화려한 스테판 성당은 조명을 받아 빛났다. 환상적이고 아름다웠다.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스테판 성당 앞에도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렸고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들뜬 거리 분위기에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마음은 높이 날아오르고 몸에서는 에너지가 솟았다. 매일매일 장소를 바꿔가며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하다 보면 두 달도 금방 갈 거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