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비엔나 오래된 아파트의 보일러가 난감하다

비엔나에서 드로잉 배우며 두 달 살기

by 여백

비엔나는 연일 흐리고 스모그도 심했다.

집주인이 알려준 대로 보일러 작동 버튼과 온도 조절 장치를 반복해서 조작했지만 라디에이터는 따뜻해지지 않았다. 집안의 냉기는 여전했다. 옷을 껴입고 지내니 불편하고 기분까지 가라앉았다.


우리가 얻었던 아파트는 비엔나에서 흔히 보이는 오래된 건물이다. 방이 두 개로 그렇게 작은 아파트는 아니었다. 그러나 베란다 같은 공간이 없어 보일러는 부엌 싱크대 옆 벽에 매달려 있어 방과 거실에서 바로 보였다. 가스 누출도 불안하고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도 거슬렸다.


남편은 주인에게 문자와 메일로 보일러 상황을 설명했다. 소피아와 소피아 아버지까지 우리 아파트에 와서 보일러를 살펴보고 주인과 통화하며 보일러를 작동시켰지만 소용없었다.

며칠 후 소피아가 주인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더니 주인은 기술자를 보내 점검하겠다고 했다. 기술자가 왔다간 후 집안은 따뜻해졌다. 바쁜데도 적극적으로 신경 써준 소피아가 고마웠다.


집이 따뜻해졌다고 좋아하기 무섭게 보일러가 또 속을 썼였다. 보일러에서 큰 소리의 알람이 자꾸 울렸다. 처음에는 가스 유출인가 싶어 놀랐는데 그건 아니었다. 시도 때도 없고 밤에도 울리는 보일러 알람에 잠이 깨면 다시 잠들기 어려웠다. 잠을 제대로 못 자니 하루 종일 피곤했다.


가만히 지켜보니 보일러의 온도가 조금 높아지면 알람이 울리는 거였다. 온도를 내리면 집은 바로 추워지고 온도가 올라가면 알람이 울렸다. 바로 옆에서 울리니 깜짝 놀랄 만큼 소리가 컸다. 보일러가 멈추면 샤워도 못할 텐데 갑자기 멈추거나 폭발하는 건 아닐까 불안했다.


주말에 보일러의 소음을 확인하겠다며 아들이 왔다. 소음을 듣고 이리저리 확인하던 아들은 말했다.

“소리가 생각보다 크지만 보일러의 정상적인 작동 소리 같은데요. 그런데 왜 덥게 지내요? 여기서는 아무도 이렇게 덥게 지내지 않아요. 한국과 유럽의 문화 차이예요."

아들은 마치 집주인이 할듯한 말을 하며 추운 아파트에 적응하라고 했다. 우리는 졸지에 비상식적인 오스트리아 이방인이 되었다. 서운한 감정이 올라왔다.


“우린 그라츠 아파트에서도 따뜻하게 지냈고, 잘츠부르크 너희 집도 따뜻하고, 소피아 네도 따뜻한데… 온도를 못 올리도록 설정되어 있는 아파트를 잘못 얻은 것 같아. “

남편도 한마디 했다.

“주인은 시간 끌고 이리저리 말을 돌리는 것 같더니 이제는 문자와 메일에 답장도 안 하네”


“정 불편하면 이 아파트를 예약한 **닷컴에 항의하세요.”

아들은 한마디 덧붙였다.


아들에 대한 야속함과 안쓰러움이 교차했다. 십 년을 외국에서 살며 마주했을 어려운 상황마다 혼자 대처하며 얼마나 고군분투했을까 생각하니 아들의 냉정함이 이해되었다. 그래도 마음 따뜻하고 똑 부러진 소피아가 아들의 여자 친구라 다행이다.


밤에 설정 온도를 낮추고 알람이 안 울리는 밤을 보내기로 했다. 추위 때문인지 보일러 소음보다 더 시끄러운 마음속 소리 때문인지 자다가 또 깼다. 남은 한 달 반이 길게 느껴졌다.



다음 날 오토 바그너의 건축물을 보러 갔다. 외관이 아주 특이했다. 밖에서는 100년 넘은 건물이라는 느낌이 나지 않지만, 실내의 오래되고 육중한 나무로 만든 장식을 보니 세월이 느껴졌다. 건축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는 비엔나에서 꼭 봐야 하는 건물이라고 한다.

갈 때는 운동 삼아 초겨울의 정취를 느끼며 걸어갔다. 올 때는 5km 정도를 또다시 걸을 엄두가 않나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역 입구에는 허물다만 옛날 성벽이 남아 있었다. 생각지 않게 비엔나 근대 역사의 한 장면을 마주했다.


주요 관광지 어지간한 곳은 몇 년 전 여행할 때 비엔나 패스를 사서 구경했다. 이번에는 여행객이 아니라 생활인이다. 한국에서 생각 없이 신청했던 드로잉 강좌들이 비엔나에서 두 달간 살아야 할 이유가 되었다. 일주일에 세 번 수업 가고, 매일 한 두장 그림 그리고, 하루 한 군데 정도 산책하거나 구경하고, 여러 군데 있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 다녀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보일러 때문에 속상하고, 날씨와 공기도 나쁘지만 비엔나 생활을 즐겨보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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