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신선했던 비엔나 경영 대학원 졸업식

비엔나에서 드로잉 배우며 두 달 실기

by 여백

비엔나 생활 일주일 째 되던 날 처음으로 파란 하늘을 보았다. 오염 지수도 떨어졌다. 해를 보니 그냥 집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쉔부른 궁전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라 버스를 타지 않고 산책 삼아 걸었다.

쉔부른 궁전 입구에 세워진 크리스마스 마켓을 알리는 장식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음악, 줄지은 상점, 관람차, 와인 끓이는 냄새에 기분이 들썩이며 흥이 났다. 주중이고 낮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덜 혼잡했다.

앞마당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지나 건물 뒤 정원으로 갔다. 분수를 지나 언덕 위 건물까지 걸었다. 겨울이라 나뭇잎이 여름처럼 초록빛으로 풍성하지는 않지만 연륜을 느낄 수 있는 아름드리나무들이 잘 가꾸어져 보기 좋았다. 조형물들도 아름다웠다.


고즈넉하면서 넓고 아름다운 정원을 천천히 걸으며 남편과 이야기 나눴다. 그동안 살면서 나눴던 대화 주제는 여느 부부들처럼 아이들, 다양한 집안 문제 해결이었다. 우리 자신의 취향이나 관심사 등에 관한 대화는 나눌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쉔부른 정원에서는 '나'와 '너'에 대해 이야기했다. 큰 부딪침 살아온 우리가 신기할 정도로 식성, 취향, 성격에 공통점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떻게 삼십 년을 넘게 살아왔는지. 서로의 수고와 인내를 칭찬했다. 비엔나에 머무는 동안 쉔부룬 궁전을 자주 산책하기로 했다.


다음 날은 굿 데이. 아들의 졸업식이다. 설레었다.

아들은 비엔나 경영 대학원 한 학기를 마치고 군대를 갔다 왔고 졸업 전에 취직이 되었다. 회사 일이 바빠서 논문을 제때 마무리 못해 일 년 늦게 학위를 받았다. 나는 아들의 졸업이 마냥 기뻤지만 아들은 졸업식장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아쉬워했다.


아들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소피아와 소피아 부모님도 왔다. 시간이 되자 강당으로 안내되었다. 단상에는 학과장으로 보이는 교수 한 명이 독특한 모자를 쓰고 앉아있었다. 여러 명의 귀빈 소개와 그들의 지루한 인사말에 익숙했던 나는 가벼운 졸업식 무대가 낯설었다.

먼저 합창단이 들어와 자리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 식장의 분위기는 부드럽게 변했다. 합창단은 식 진행 사이사이에 일어나 노래를 불러 지루할 틈도 없고 감동적인 졸업식이 되었다.

식은 학과장과 보조하는 한 사람이 진행했다. 목에 하늘색 띠를 두른 졸업생들이 입장했다. 과별로 진행되는 졸업식이라 서른 명이 조금 안돼 보였다. 아들의 모습이 보이자 마음이 울컥했다. 씩씩하게 걸어 들어오는 모습은 멋지고 자랑스러웠다. 교수는 학생을 한 명씩 호명하고 학위를 수여하고 기념 시진을 찍었다.


음악회 같은 졸업식이 끝나고 졸업생들과 가족들은 자유롭게 기념사진을 찍었다. 졸업식이 있던 도서관 건물이 특이하고 멋져서 사진 찍기 좋았다. 장소를 옮갸가며 사진을 찍었다. 감동스러우면서도 신선한 졸업식이었다.

비엔나 경영 대학원의 졸업식은 과별로 진행되며 며칠에 걸린다고 한다. 우리가 학교를 벗어나는데 오후에 졸업식을 하는 학생과 학부모 등 축하객들이 밝은 표정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들이 식사를 대접하겠다며 예약한 식당으로 안내했다. '타펠스피츠'라는 오스트리아 전통 음식을 먹었다. 채소와 고기가 들어있는 국물 요리로 우리나라 소고기 뭇국과 맛이 비슷했다. 고기는 큰 덩어리로 되어있고 국물이 기름지다는 게 차이점이다. 각자 접시에 받은 고기를 칼로 잘라 여러 가지 소스에 찍어 먹었다. 우리나라에서 소고기 뭇국은 일반 가정에서 흔하게 먹는 국이지만 '타펠스피츠'는 오스트리아에서 일상요리가 아닌 고급 요리에 속한다고 한다. 고급 와인까지 곁들여 폼나게 먹었다.

좋은 식당이라 봉사료까지 나와 여섯 명의 식사 비용은 꽤 큰 금액이 나왔다. 남편은 아들 대신 결재하고 싶어 했지만 눈짓을 하고 식탁 밑으로 제지했다. 아들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고 예상했던 식사 비용을 넘지 않는다고 했다. 잘 먹었다며 고맙다고 하니 아들 어깨에 힘이 들어가며 입꼬리가 올라갔다.


저녁에는 소피아 가족과 우리 가족이 함께 소피아가 다니는 비엔나 대학교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보러 갔다. 동화 속 주인공을 전등으로 만들어 동화 속 세상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그곳은 주로 비엔나 대학교 학생과 교수 등 관계자들이 주로 모이는 크리스마스 마켓이라고 한다. 사람이 많지 않아 여유 있게 즐길 수 있을 거라는 소피아의 기대와 다르게 사람들로 북적이고 복잡했다. 오히려 사람이 많으니 흥이 나고 사람 구경도 재미있었다.

소피아가 따뜻한 와인을 샀다. 취향대로 와인을 골랐다. 따뜻한 알코올이 몸에 들어가니 추위도 덜 느껴지고 마음도 여유로워지며 세상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크리스마스 마켓의 상징이 왜 따뜻한 와인인지 알 것 같았다. 아들 졸업식 덕분에 멋진 추억을 쌓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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