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남편이 만든 맛있는 짝퉁 굴라쉬와 타펠슈피츠

비엔나에서 드로잉 배우며 두 달 살기

by 여백

토요일에 아침을 먹은 후, 늘 이용하는 근처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비엔나도 일요일이면 슈퍼마켓이 문을 닫기 때문에 먹을 것을 미리 사야 했다.

슈퍼마켓 건너편 건물은 아랍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크고 유명한 재래시장이다. 토요일에는 그 앞에서 주말 장터가 열렸다. 물건도 많고, 채소는 싱싱하고, 가격도 싼 듯 보였다. 물건을 고르고 흥정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며 활기 넘쳤다.

한국에서도 재래시장을 거의 이용하지 않던, 독일어도 못하는 내가 물건을 고르고, 무게 달고, 흥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잠을 깊이 못 잔 날에는 피곤하고 의욕도 없어 손짓발짓해 가며 물건을 사는 게 귀찮게 느껴졌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는지 나보고 앞장서라고 했다. 주말 장터와 재래시장을 한 바퀴 돌며 구경만 하고 자연스레 길을 건너 늘 이용하던 슈퍼마켓으로 갔다. 아무 말 없이 필요한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고 계산대에 올렸다. 얼마를 내야 하는지 가격까지 숫자로 보여주고, 거스름돈 필요 없이 카드로 계산하는 슈퍼마켓이 새삼 편리한 시스템이란 생각이 들었다. 슈퍼마켓은 에너지가 많지 않은 내게 딱 맞는 스타일이다.


오는 길에 남편의 로션을 사러 화장품과 약을 파는 디엠에 들렀다. 디엠은 고급보다는 대중적인 중저가 제품을 파는 곳이다. 평상시에는 비싼 스킨 로션을 쓰면서 이번에는 이것저것 한참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너무 비싸다며 안 샀다. 어느 때는 비싼 것도 그냥 쓰고 어느 때는 적정한 가격도 비싸다고 벌벌 떠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이슬란드에서부터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인스브루크,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냐, 다시 그라츠를 거쳐 비엔나까지 남편과 거의 24시간 붙어 지냈다. 티격태격 거리며 서로 화내고 삐지기를 반복했지만 남편에게 고마움을 많이 느꼈다.


남편은 매 끼니 식사 준비를 비롯해 설거지까지 했다. 날마다 창의적인 음식을 만들어냈는데 맛과 모양도 점점 좋아졌다. 고기와 채소에 굴라쉬 소스를 넣어 굴라쉬를 만들었다. 카레 만드는 방법과 같아서 카레 가루 대신 굴라쉬 소스만 넣으면 된다. 빵을 찍어 먹거나 밥과 같이 먹었다.

어설프게 만들던 파스타는 점점 소스에 변화가 일더니 남편의 대표 음식이 되었다. 다양한 고명이 올라간 다채로운 파스타를 선보였다. 지금도 국수를 기가 막히게 잘 삶는다.

아들 졸업식 날 먹었던 타펠슈피츠와우리나라 소고기뭇국 중간 정도 되는 국도 끓였다. 기름을 걷어낸 국물은 고급 식당에서 먹었던 타펠슈피츠보다 맛있었다. 빵뿐 아니라 밥과 먹어도 훌륭했다. 오이와 고추 피클, 각종 채소나 올리브 절임, 정어리 절임 등은 식탁을 풍성하게 했다.


남편은 자기가 모든 살림을 하는 만큼 열심히 그림을 그리라며 한석봉 어머니를 자처했다. 남편의 배려로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만큼 일주일에 세 번 드로잉 수업받는 이외에 그림을 더 그려보려고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웠다. 다행히 방에 조금 큰 화장대가 있어 책상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파트는 낮에도 햇빛이 안 들어 어둡고 4시면 해가 져서 깜깜했다. 전등은 노란빛으로 어두워 불을 켜도 침침했다. 무엇보다 추웠다. 게으름을 합리화할 조건도 갖추어져 있었다.

글 못 쓰는 선비가 붓을 탓한다고 빈둥거리며 그림을 그리지 않은 날에는 유독 불평을 많이 했다. 잘 세팅된 일상을 벗어나니 포장했던 내 인격의 빈틈이 그대로 드러났다. 여행은 나를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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